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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6. 2020

젖은 어둠은 마음으로 흐른다

단편소설

 오늘 밤에도 한 마리가 죽었다. 움직이지 않는 금붕어를 하수구에 버렸다. 사람이 죽어 버리면 주위의 사람들은 죽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홀가분해한다. 금붕어의 죽음은 좀 다르다. 다른 금붕어들이 죽은 금붕어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금붕어를 키우는 주인마저 그렇다. 매일 밤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금붕어도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항해를 할 뿐이지만 금붕어의 죽음은 사람의 죽음과 다르다. 사람이 죽고 나면,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이불을 꼭 덮어주고 싶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죽어버린 사람은 늘 추워 보인다. 금붕어는 죽으면 죽은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매일 시작하는 아침에 무의미하게 일어나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건조하게 보낸다고 하지만 죽고 나면 그런 것도 할 수 없다. 무미건조하게 지내도 죽지 않고 있기에 휴대전화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볼 수 있다.        

  

 남들이 시작하는 아침에 나는 잠이 든다. 그건 말하기 좀 창피한 일이지만 어둠이 껴 버린 부옇고 짙은 밤이 좋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다. 특히 밤하늘을 수놓는 청록색의 젖은 어둠을 볼 수 있다. 하루에 15분? 나는 젖은 어둠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밤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후우, 담배를 한 모금 빨아서 연기를 뱉어내면 내가 볼 수 있을 정도의 캔버스의 젖은 어둠에 연기가 그림을 그린다. 연기는 돼지 모양이었다가 금세 젖은 어둠에 녹아든다. 그 모습이 좋아서 매일 밤하늘 속으로 연기를 뱉어낸다. 15분 정도가 적당하다. 나는 적당한 게 좋다. 적당하다는 건 깊게 빠질 일도 없으며 사탕 하나 정도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사탕 하나 먹는다고 이 세계가 해서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죽음에는 ‘적당히’가 없다. 그래서 죽음이 싫으면서 피할 수 없으니 좋아해야 한다. 나는 ‘적당히‘가 좋은데 ‘적당히‘가 없는 죽음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얼마 전에 사는 곳 앞에 장례식장이 생겼다. 1년을 공사를 했다. 호텔처럼 보이는 곳이 들어서자마자 매일 그곳에 죽은 사람이 들어온다. 새로 생긴 장례식장 앞을 지나쳐야 일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매일 그곳에 잠시 들러 오늘은 누가 죽었나 본다. 57세인데 벌써 죽었다. 57세의 남자가 어젯밤에 죽었다. 죽을 나이가 아니지만 그 남자는 죽었다. 이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난다.       

  

 버스를 타면 맨 뒤에 가서 앉는다. 맨 뒤의 자리가 없으면 맨 뒤쪽에서 일어서서 간다. 모두가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도 폰을 보면서 걷고 있다. 폰 속에는 여러 가지 빛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빛은 사람들의 색과 비슷하다. 폰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니까 폰 밖의 사람들은 폰 속의 사람들과 살아있음을 공유한다.    

     

 어항 속의 금붕어들은 알아서 잠을 자야 한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잘 때, 밤을 수놓는 어둠 속에서 일을 하니 나는 내가 알아서 잠이 들어야 한다. 이 퇴색한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밤하늘에 별빛이 없다는 것이다. 별빛 대신 전등과 네온의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래서 밤하늘은 늘 청록색으로 보인다. 밤하늘은 사실 검은 적이 없다. 언제나 더한 청록색이거나 덜한 청록색일 뿐이다.    

      

 내가 사는 곳은 두 평 남짓한 고시원이다. 나는 이곳이 좋다. 딱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의 공간. 이 공간에 누워있으면 잠이 잘 온다. 공간이란 참 묘하다. 여기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니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는 곳이다. 이 속에는 모르는 이들의 공간이 있지만 나의 공간은 이 두 평 남짓한 방이다. 아늑하다. 이대로 누워서 깨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공간에 맞게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서 공간은 부지런하게 스쳐간 이들을 기억한다. 남들이 일어날 때 잠이 잘 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남들이 다 잘 때 잠이 들어봐야 나의 잠은 하찮은 모래 알갱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청록색의 밤이 걷힐 때 잠이 들면 특별한 기분이다.   


 고시원 앞에는 깨끗하지 않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과 고시원의 사이에는 도로가 하나 있고 하천 앞에는 벤치가 있다. 매일 그곳에 앉아서 요상한 말을 쏟아내는 남자가 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른 남자는 큰 소리로 원 투 뜨리, 갓차, 만옴, 무기이, 같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것이 그 남자가 유일하게 하루 종을 하는 일이다. 남자는 한 시간 정도 혼자서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낸 다음 옆의 벤치로 이동을 해서 다시 한 시간 정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뱉어냈다. 남자는 내가 지내는 고시원의 옆방에 산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도 용케도 생활을 하고 있다. 배가 고프면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같은 것을 사 먹는다고 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과 낮에는 잠이 들고 밤 동안 일을 하며 가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한 건물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이 도시다. 그리고 고시원 앞의 장례식장에서는 죽은 사람이 새로운 물건처럼 매일 들어온다. 죽은 것과 새로운 것이 어울리는 묘한 곳이 여기 이 도시인 것이다.     

    

 어느 날 유난히 젊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많이 찾아서 보니 23살의 여자가 어젯밤에 죽었다. 어제 낮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죽었을까. 나이로는 정말 죽을 나이가 아닌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병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는 죽어야 할 사람은 죽지 않고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는다. 그때 누군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남자였다. 옆에서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어제도 그제도 장례식장에 와서 죽은 사람의 이름이 붙은 곳을 기웃거렸다는 말을 했다. 멱살을 잡고 있는 남자는 나를 복도에 내팽개치며 죽음이 구경거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상복을 입은 남자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번쩍하는 순간이 지나갔다. 아프다기보다는 새로운 빛이 시야에 잠시 드러났음에 조금 놀랐다. 빛은 금방 사라졌다. 전혀 보지 못했던 빛이었다. 무지갯빛도 아니고 네온의 빛과도 달랐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황홀한 빛의 일종 같았다. 그 빛을, 순간의 아름다운 그 빛을 나는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 남자에게 한 번 더 때려 달라고 매달렸다. 미친 새끼, 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장례식장에서 쫓겨났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때려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맞은 곳은 금방 부었다. 왼쪽 얼굴이 보란 듯이 부어올랐다. 이런 얼굴로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편의점 사장의 말을 들었다. 저녁에는 붓기만 했던 얼굴이 초록색의 젖은 밤이 되니 멍까지 들었다. 저녁부터 새벽 1시까지는 바에서 잡일을 하고 이후에는 편의점에서 아침까지 일을 하는데 편의점 사장이 그날따라 편의점에 남아 있다가 나에게 말을 했다. 편의점에서 잘리면 내야 하는 각종 고지서를 해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이 도시의 줄을 타고 있는 것이니까 까닥 잘못하면 줄 밖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사장은 한 번은 봐준다고 했지만 새벽에 편의점을 봐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장은 근래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편의점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24시간 하는 편의점을 12시간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더불어 불안함이 하나 더 늘었다.   

      

 “이거 어때?”라며 자신의 글을 보여 준 사람은 리사다. 리사는 몇 살인지 모른다. 본명도 모른다. 본명 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엇인가로 불리면 그만이다. 이름이 있다고 해도,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실망하지 않고 누군가 이름을 물으면 가명을 말하는 것이 여기 이 도시의 여기 이 술집이다.       

   

 리사는 대략 스물다섯 살, 스물여섯 살 정도. 바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가발을 쓰고 화장이 진하다. 키가 크고 팔뚝 살이 없어서 무척 가냘프게 보인다. 리사는 손님이 없을 때 항상 노트에 글을 적고 있다. 글을 완성하여 신춘문예에 출품을 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적는 글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하루하루 일기 정도의 글이다. 폰으로 메모를 해도 될 텐데 꼭 공책에 볼펜으로 필기를 했다. 그래야 안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가 나에게 적은 글을 보여준 것은 내가 바의 달력에 의미 없이 ‘젖은 어둠은 매일 밤 마음으로 흐른다'라고 써놨기 때문이다.        


 바의 이름은 ‘거스턴’이다.


 “왜 거스턴이냐면, 사장님이 필립 거스턴을 좋아한데."


 거스턴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리사가 말했다. 그래서 처음 바에서 일을 하고 벽에 애매하고 비슷한 그림들이 많아서 한참 쳐다보았다. 거스턴에서 일을 하는 여자는 총 5명이고 리사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예쁘지는 않지만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아 지명이 잦았다. 인기란 그런 것이다. 인기는 사랑과 다르고 존경과 다르고 외모와 달랐다. 인기는 뭐랄까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에게 요만큼이나 아니면 이만큼 붙어서 같이 태어난다. 그렇지 않으면 뽕도 넣지 않고 마르고 썩 예쁘지도 않은 리사가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리가 없다.   


 리사가 보여주는 글에는 죽음에 관한 글이 많다. 그녀는 나에게 왜 이런 글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릴 때 벌레를 죽인 이야기라든가, 고양이가 죽어서 슬퍼한 이야기라든가,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사랑을 덜 줘서 일찍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것에 대한 후회 등 그런 이야기가 가득했다. 리사는 부은 내 얼굴을 보고 차가운 수건을 볼에 대어 주었다. 장례식장에서 맞은 얼굴이 욱신거렸다. 어쩌면 찜질 덕분에 편의점에서 잘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리사는 달력에 적어 놓은 낙서를 보고 내가 써 놓은 글이 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은 것이라 여겼는지 매일 글을 보여 달라고 했다. 있을 리가 없는 글을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리사 앞에서 말 수가 줄어들었다.         



 “고등학교 때 매일 구타를 당했는데 엄청 맞을 때 이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니까 그 뒤부터 나를 건들지 않았어"라고 고시원 옆방에 사는 녀석이 말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가 힘든 것이지 한 번 터득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든 흘러간다. 그 녀석은 대학교를 온전히 졸업하고 이 도시의 온전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취직을 하고 보니 그 녀석만 온전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처럼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그 녀석을 따돌렸다. 직장은 학교처럼 구타는 없었지만 사무실에서의 따돌림은 구타보다 심장에 더 상처를 주었다. 그 녀석 그 뒤로 사무실에서 중국어 같은 이상한 언어를 혼잣말로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꿈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어디에 있을 거라고 이 도시에 왔지만 그것은 사람을 망가트리는 약과 같다고 그 녀석이 말했다.       


 낮에 잠이 들기 시작한 건 낮에 잠을 자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얗고 멍한 어둠이 지속되다가 탁 끊어지면 밤이었다. 이전에는 꿈 때문에 밤은 지옥 같았다. 지옥에서는 동생이 늘 나타나서 나를 보며 울곤 했다. 여동생과 나는 두 살 차이가 났다. 고등학교 어느 날 집에 일찍 들어왔을 때 여동생이 방에서 울고 있었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손을 떨고 있었다. 여동생이 몸을 덜덜 뜨는데 안아주었다. 그런데 그 떨림이 마치 강도가 높은 지진 같아서 겁이 났다. 동생이 나를 보는 눈빛에 다른 건 소거되어 있었고 두려움과 분노 그것만 가득했다.    


 술이 들어가니 하기 싫은 말이라도 이렇게 짧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안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꼭 체한 것 같은데 참을 만한, 술이 깨지는 않지만 견딜 만한 정도였다. 구치소에 있다가 나왔을 때 여동생은 깨지 않는 잠이 들고 말았다.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 녀석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 녀석은 졸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둘은 좁은 고시원 방이라는 공간에 쪼그리고 잠이 들어야 했다. 불편한 자세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편하지 않은 편안 잠이었다.    


 그 녀석 맥주가 들어가니 멀쩡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 녀석은 이 도시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술을 마신 지금 이 순간은 나보다 더 멀쩡했다. 아니 누구보다 멀쩡한 인간이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어서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멀쩡해지기 위해서 도시의 사람들은 술을 왕창 마시는 것이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들어갈 때 유통기한이 세 시간이 지난 도시락과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을 가득 들고 오면서 다른 편의점에서 만 원에 맥주 4캔까지 샀다. 하천의 벤치에 앉아있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고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같이 먹자는 행동인데 그 녀석이 그러자고 했다. 그 녀석은 좁은 내 방에 4개의 도시락을 펼쳐 놓고 어디 회사의 도시락은 이게 문제며 어디 거는 나트륨이 과하다고 했고 어디 도시락은 돈가스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나는 맥주를 한 캔 그대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 나면 목이 조여 오면서 죽을 것 같은데 쾌감이 뒤따랐다. 그 녀석은 의외로 말을 잘했다. 꼭 글을 쓰는 사람이 내뱉는 언어 같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놀랐다. 하루 종일 고시원에만 있는데 여자는 언제 만나고 다니는 걸까. 하지만 도시의 생활은 복잡하게 흘러간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많은 곳이 이 도시다. 내가 일하는 젖은 어둠이 흐르는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은 좋은 건가.


 내 물음에 그 녀석은 도시락 두 개째를 먹고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냐고 물었다. 사랑을 해봤다면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녀석 평소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어서 무시했는데 이상한 녀석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지 2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밥을 해 먹는 것이 그립다거나 그런 밥이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나보다 조금 더 편의점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도시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것에 비해 나는 그저 먹는다. 뿐이었다. 도시락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매일 아침 그 녀석과 도시락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물론 유통기한이 3시간 내지는 4시간 지난 도시락으로. 그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서 왕왕 말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행복해 보였다.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 내 주위의 딱 두 사람이 있는데 그 녀석과 리사였다. 어떻게 봐도 폰이 없으면 안 될 사람들인데 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판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폰으로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녀석이 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녀석은 남아도는 자산 같은 시간을 들여 허공에 대고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을 뿐이었고 리사는 손님이 오면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손님이 없으면 공책에 글을 썼다. 그리고 가끔, 시간을 들여 나에게 쓴 글을 보여주고 어떤지 물었다.


 내가 쓴 글이 있다면 보여 달라고 보챘다. 리사를 매일 찾아오는 손님은 4팀이나 되었다. 시간은 다르지만 4팀은 매일 와서 리사를 찾았고 리사가 먼저 온 손님에게 있으면 레이가 리사를 대신해서 리사를 찾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했다. 레이는 22살로 인형 같은 얼굴을 지녔다. 레이는 아는 것도 많으면서 아는 것이 없는 척 말을 했다. 그런 쪽으로는 발달이 잘 된 여자였다. 레이는 잘생기고 멋진 손님과 데이트도 많이 했다. 포르셰라고 불리는 손님에게서는 에르메스 가죽 버킨 35까지 선물로 받았다. 모든 남자 손님들이 레이를 좋아해도 리사를 꼭 찾는 손님이 있는 곳이 이 도시다. 도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퍼즐로 이루어져 있다.  


 화분으로 머리를 내리쳤을 때 그 서늘한 기분을 나는 기억한다. 그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머리에서 피가 터졌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가 흐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작 머리를 작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동생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을 부탁한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암이라는 건 죽지 말아야 할 나이의 어머니를 데리고 가버렸다. 40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장례식 장에 이름이 붙었다. 어머니가 장례식장에 들어간 날 죽은 사람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날 모두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었는데 어머니만 40살 정도였다. 악마 같은 아버지는 동생을 데리고 산부인과도 다녀왔다. 죽어야 할 사람은 멀쩡하게 살아서 더러운 짓을 일삼고 있고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은 일찍 죽는다. 그런 일들이 나와 가장 가까이서 일어났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달게 받겠습니다.” 법정에서 그렇게 말을 했지만 세상에 없는 동생을 난도질하는 것 같아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질문을 하는 판사도, 제대로 변호도 하지 못하는 변호사도, 집요하게 넣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있는 검사도 죽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왜 공개 법정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공개방청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날은 죽이고 싶었다.    



 “사랑도 팔아?”     


 “사랑은 하는 거지 파는 게 아니에요.”    


 “그럼 리사가 입은 팬티를 사고 싶어. 나 돈 많아.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뭐요? 저질.”     


 리사와 리사를 찾는 단골손님이 주고받는 대화다. 대화는 유치하다. 거스턴을 찾는 단골손님들은 유치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유치해지는 게 이 도시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그 진지함에 깔려 숨이 멎을 것이다. 그러면 장례식장에 자리가 없어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른다. 유명한 돈가스 집처럼 줄을 서서 돈가스를 먹는 것만큼 유치한 건 없다. 유치함이 가득한 곳이 이 도시다.  


 “난 리사를 데리고 나가려 하지 않잖아, 대신 리사가 입었던 팬티를 팔아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할게.” 술이 된 리사의 단골손님은 리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리사는 싫다고 했다. 몇 번이고 리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청록색의 밤이 짙어간다.      


 사람들은 전부 바쁘다. 바쁜 사람들이 빠르게 먹으려고 편의점 같은 것을 70년대에 만들어냈다. 편의점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다. 컵라면도, 도시락도, 감자탕도, 컵밥도 금방 따뜻하게 데워서 빠르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새벽에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은 빠른 음식을 느리게 먹는다. 이곳은 그런 도시다. 젖은 어둠 속의 금붕어들이 쉴 곳을 찾아 편의점에 흘러들어온다. 밤새 편의점에 있으면 손님들이 적어서 편하다. 반면에 술에 취한 손님이 오면 골치가 아프다. 그들은 나의 몸에 동전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언어를 받아먹는 자판기처럼 나에게 술의 힘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곤 한다. 그들 모두 자신에게 편견이 없는 자신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sns에 의미 없이 쏟아내는 말과 비슷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폰 속의 번호는 점점 늘어가지만 정작 내 편은 줄어가기 때문이다.    


 팬티를 팔라고 하던 단골손님이 결국 난동을 부렸다. 술이 취해 바를 넘어와 리사의 옷을 벗기려 했다. 또 한 번 화분으로 쓰레기 같은 놈의 머리를 갈겼다. 이렇게 해서 리사에게 영웅이 된 대신이 빚은 더 늘었다. 벌어들이는 돈은 변호사 비로 쏙쏙 빠져나갔다. 2 금융업보다 변호사가 더 도둑놈 같았다. 거스턴의 사장은 돈 많은 단골을 그렇게 만들었다며 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리사와 레이를 비롯한 식구들이 노조처럼 대들었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났을 때 나에게 빌미를 주려는 걸 나는 모른 척하느라 애먹었다.       


 “넌 나의 영웅이야.”     


 “뭐지 그런 말투는? 난 영웅도 무엇도 개뿔도 아닌 엉망인 인간이야. 사람을 때려서 영웅일 필요는 없어. 나의 본모습을 알면 리사 넌 내 옆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을 걸.”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리사는 무시하고 말했다.     


 “영웅이란 나쁜 게 아니야.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영웅이야. 나 아닌 사람이 위험할 때 행동하는 사람이지. 넌 적어도 나에게는 영웅이야.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너 아니면 나는 옷이 벗겨져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어떤 인간에게 사진까지 찍혔을 거야. 인간의 본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필요도 없어. 본모습이라는 게 사실 있기나 할까. 그림의 본모습은 어쩌면 그저 하얀 도화지일 뿐일지도 몰라.”     


 리사는 진실이란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날 이후 리사는 일을 마치면 가끔씩 내가 아침까지 일하는 편의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리사는 9시부터 일하는 거스턴에 오기 전까지는 미용실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미용실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편의점에 손님이 거의 없으니 이렇게 서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했다.     


 “이 넓은 도시에서 우리는 고작 거스턴과 편의점에서만 만날 수밖에 없구나.”     


 리사는 생수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리사는 다른 음료는 마시지 않고 술과 물을 마실 뿐이었다.     


 “하지만 바에는 술이 있고 편의점에는 음식이 있고, 이거면 이 도시에서 충분하지"라고 리사는 말했다.  


 리사가 새벽에 택시를 탈 때 택시의 번호판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다음 날 리사는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왔다. 제육볶음이었다. 리사는 늘 목 티셔츠를 입거나 굵은 목걸이를 했다. 그것이 가느다라한 그녀의 목을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그래서 위태해 보였다.     


 “너, 어제 내가 탄 택시 번호판을 찍더라. 넌 얼굴은 영 아니지만 역시 내게는 영웅이었어. 영웅을 위해 만들었어."     


 “뭐야, 자꾸 그런 말투.”   


 리사가 만들어 온 제육볶음을 조금 집어먹고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대고 구토를 하고 돌아오니 제육볶음이 전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 구토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너 지금 되게 못생긴 거 알아?”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너 처음 웃었어, 못나게 웃는 거 알아? 못생겼다고 하니 웃네. 바보 같은 놈.”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고향에라도 간 모양인가. 그 녀석은 늘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이상한 말을 쏟아냈지만 그 녀석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 녀석이 보이지 않고 3일이 지났을 때 아침에 고시원에 들어오니 그 녀석의 방을 고시원 주인과 누군가가 마스크를 쓰고 치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내 물음에 고시원 주인은 “인생 실패자 새끼들이 죽으려면 다른 곳에서 죽지 왜 꼭 여기서 죽고 지랄이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인생 루저 새끼들은 한눈에 알아봤어야 했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죽을힘 있으면 그 힘으로 악착같이 살면 돼. 이 새끼들 아직 배가 불러서 그래. 너희 같은 놈들 일하고 일할 때는 세고 셌는데 해보니 힘드니까 좀 하다 때려치우고 카드 빛내서 옷 사고, 게임방에서 게임이나 실컷 하고 말이야. 이 새끼들 결국에 갚을 돈이 불어나니 나 몰라라 도망치듯 자살이나 해버리고"     


 왜 멋대로 치우냐고 나는 대들었다.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친구입니다."     


 “친구? 친구 좋아하네. 친구 새끼가 그래? 친구가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몰라? 너 이 새끼도 인생 실패자지. 너 이 새끼 여기서 너도 자살하려고 하지. 돈 줄 테니까 나가 이 새끼야."     


 나는 고개를 숙여 고시원 주인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착실하게 살고 있다고, 그 친구는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비참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때가 없다. 억누를 수 없는 크고 딱딱한 분노 같은 것이 배를 아프게 했다.    



 장례식장은 고시원 앞의 새로 지은 호텔 같은 장례식 장이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최중훈이었고 나이는 27세였다. 27세, 27세에 죽을 생각을 하다니. 그 녀석은 방에서 자살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사고로 죽었다. 아니 사고인 척 트럭으로 뛰어들었다. 그 사실을 고시원 주인은 어떻게 알고 자살이니 소리를 질렀을까. 도시는 참 이상하다. 교통사고로 판명이 나서 가족에게 보험금이 돌아갔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죽었다. 죽음도 편하지 못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택한 죽음이었다. 자신을 감춰가며 속여가며 그렇게 지내다가 그 녀석은 청록색의 밤으로 가버렸다. 어쩌면 다행인 것이다. 이제 그 녀석에게 줄 도시락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 녀석의 동생이라며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동생은 남동생으로 그 녀석과는 다르게 생겼다. 많이 울어서 얼굴이 울퉁불퉁했다.    


 “형이, 형이 이걸 전해 드리랍니다.” 그 녀석의 동생은 나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녀석은 내 앞으로 봉투를 하나 남겼다. 그 봉투에는 자신의 휴대전화와 17만 원이 들어 있었고 휴대폰은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되어 있었다. 17만 원은 얻어먹은 도시락 값이라고 했다. 그 녀석은, 죽으면 새로 지은 장례식장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거 하나만은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그 녀석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kimsgirl라는 아이디로 인스타그램 디렉트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그 녀석이 사랑하는 여자임에 틀림없다. 여자는 그 녀석의 소식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몰라 여자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어서 여자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여자는 한국에 있지 않고 중국에 있었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자였다. 그 녀석과 여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여자의 팔로워는 300명 정도였다. 그중에 그 녀석의 아이디로 보이는 계정을 찾았다.         


 300명 중에 @lifeisggool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그 녀석의 인스타그램에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는 사진과 글뿐이었다. 전부 좋은 식당에서 찍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 사진과 헬스클럽에서 기구를 드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녀석은 지금보다 젊고 활력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정장을 입은 멋진 사진도 가득했다. 그 녀석이 회사에 다닐 때 찍어 놓은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중국에 있는 한국 여자와 연락을 하며 지낸 모양이었다. 그 녀석의 피드는 찬란했지만 그 녀석은 외로웠다. 외로운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현실을 견디지 못해 이상한 말을 쏟아내고 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어서 렌선 안으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외롭지 않게 지내려 했다. 그 녀석이 이 도시에서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직 나 정도가 그 녀석과 만나 밥을 먹을 뿐이었다.     


 “사랑을 본다고 알 수 있나? 상처 받을까 봐 만나는 건 실은 두렵지.”     


 그 녀석이 한 번은 이렇게 말을 했었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득 짊어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또 다른 사람의 품에서 그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고 있다.    


 매달 청구서 보는 게 지긋지긋하다. 청구서, 고지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엉망진창인 인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종이다. 종이가 이렇게 두렵다는 걸 예전에는 몰랐다. 편의점에서 거스턴으로 가기 전 15분, 청록색의 젖은 어둠이 껴 있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려나. 그 녀석이 부러웠다.


 “내일 시간 좀 내줘”라는 나의 말에,


 “왜? 데이트?"라고 리사가 말했다.     


 “뭐 비슷한 거.”     


 내일은 거스턴에 일하러 가기 한 시간 전에 리사를 만났으면 했다. 리사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일탈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일탈 속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탈은 없다. 나는 조금 일찍 고시원을 나오면 되지만 리사는 미용실을 조퇴해야 한다.     


 “한 시간 일찍 가서 청소하고 원장님께 아양을 떨었어.”     


 “나 차가 없어서 불편하지 않아?”     


 리사는 가방을 빙빙 돌리며 걷다가 “차 안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잖아? 이 도시에서 차가 있는 게 더 불편해.”     


 나는 리사를 데리고 백화점에 들어갔다. 리사는 모르겠지만 나는 백화점과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었다. 티셔츠 두 장으로 매일 번갈아 가면서 입다 보니 헤지고 색이 바래서 나 가난해,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3층의 한편에 있는 볼펜 파는 곳으로 리사를 데리고 갔다. 리사는 볼펜을 따로 파는 곳이 백화점에 있다며 신기해했다. 이것저것 볼펜을 구경하더니 점점 낯빛이 어두워졌다. 볼펜은 저렴한 게 6만 원 정도였고 대체로 10만 원이 넘었다.     


 “볼펜 주제에 너무 비싼 거 아냐?”라며 리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면 알겠지만 같은 볼펜은 없어. 전부 직접 만든 수제 볼펜이야. 오늘 너 생일이잖아.”     


 리사는 잠시 움찔했다.     


 “얼마 전에 화장실 청소할 때 전화하면서 말하는 거 들었어.”     


 “하지만 이렇게 비싼 볼펜을…….”     


 “세상에 하나뿐인 볼펜이야.”       


 매장의 직원이 우리가 하는 대화를 진열된 미소를 하고 듣고 있었다. 진열장에서 마음에 드는 볼펜은 16만 원짜리와 18만 2천 원짜리 볼펜이었다. 18만 원짜리 볼펜을 보지 않았다면 16만 원짜리 볼펜을 선물했을 것이다. 하지만 18만 원짜리 볼펜은 훨씬 마음을 잡아당겼다. 볼의 느낌도, 손에 쥐었을 때 감촉도 대단했다. 현금으로 17만 원이 있는데 18만 원짜리를 깎아 달라고 했다. 진열된 미소를 한 직원은 안 된다고 했다. 몇 번의 딜레이가 있었지만 직원에게 거절당했다.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고작 만 원이 더 없어서 나는 정말 사주고 싶은 볼펜을 사지 못한다. 리사는 16만 원짜리도 좋다고 했다. 순간 그 녀석이 미웠다. 이왕 줄 거 18만 원 주지, 17만 원을 남기고 떠나가 버려서 이렇게 서서 점원을 상대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런 엉망인 내게 짜증이 났다.     


 “만 원은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서 드리겠습니다. 꼭 이 볼펜으로 하고 싶어요."


 내 말에 매장 안쪽에 있던 매니저가 듣고 17만 원에 18만 2천 원짜리 볼펜을 포장해주었다.    


 “이 볼펜은 우브라 보고테라는 이름의 볼펜입니다. 딱 하나뿐이에요. 만든 사람의 입장이 있어서 백 원도 깎아주지 않지만 손님에게는 이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중간에 이렇게 금링으로 튜닝을 했어요. 볼펜을 쥐고 글을 오래 써도 손마디에 무리를 주지 않을 겁니다. 우드 펜이라 시간이 지나면 은은하게 나무 향이 날 겁니다. 그러니까 사용할수록 마음에 드는 볼펜이 될 겁니다. 언제든지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생일 축 리사’라고 문구도 새겨주었다.    


 거스턴으로 오는 내내 리사는 볼펜을 하늘에 들어 보이고 허공에 글을 쓰는 시늉을 했다.     


 “17만 원으로 가방도 하나 못 사는데 뭐, 볼펜보다 비싼 옷이 더 많잖아, 그만 티를 내.”     


 리사는 내 말을 무시했다. 볼펜을 들고 마치 지휘자가 된 듯 거리를 춤을 추며 걸었다.     


 “이건 세상에서 하나뿐인 거잖아.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도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져. 공장에서 찍어내는 비싼 자동차는 또 사면되지만 넌 자동차처럼 다시 살 수 없잖아, 그래서 네가 특별해,라고 하는 것 같아. 나도 여자잖아. 여자는 그럴 때가 있어.”     


 리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어.” 그리고 웃었다.     


 “에? 그럴 리가.”     


 나는 특별한 돈으로 리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리사가 이 돈의 출처를 알면 화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이 도시에서 돈이란 아침에는 여기 있던 돈이 밤에는 고작 저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돈으로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든다면 난 엉망진창인 인간이라도 상관없었다.   


 새벽 4시.

 오후나 새벽이나 4시는 없어도 좋을 시간이다. 도시의 새벽 4시는 집으로 들어가는 인간과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이상하고 또 이상한 시간이 새벽 4시다. 공기도 새벽에서 서서히 아침으로 바뀌려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 도시의 새벽 4시다. 편의점 앞 도로에 잡초처럼 수북한 쓰레기도 서서히 사라지는 시간이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새벽 4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슈트는 이 근처의 남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급품으로 아주 비싼 정장이었다. 남자는 편의점을 애용하는 인간이 아니다.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신이 뭘 집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자는 가판대를 보고 있지만 꼭 가판대 너머의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처럼 물품을 보고 있다. 남자는 편의점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것은 보면 알 수 있다.   


 남자는 실컷 보던 가판대와는 상관없는 매대에서 컨디션을 들고 카운터로 왔다. 이 남자는 새벽 4시에 집으로 들어가는 인간인 것이다. 오만 원짜리를 받았다. 그리고 잔돈은 됐다고 했다. 늘 돈이 궁한 자들에게 이렇게 선심을 쓰는 척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이 가득 있는 곳이 여기 이 도시다.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라고 남자가 물었다. 나는 잔뜩 의아한 얼굴로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밤새 술을 마셨을 텐데도 얼굴에 수염자국이 나보다 덜했다.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삭막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더 정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합니다. 누가 말했더라?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누릴 것은 누리고 건강에 관한 것을 케어 받기 때문에 체력이나 체격 적으로 시골의 아이들보다 더 건강합니다”라고 남자는 말했다. 나는 가만히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태어나야 하는 아이들만이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축복받고 태어나야죠. 이 도시에서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태어나 버림을 받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버림을 받는다면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아시겠어요?"     


 남자는 컨디션을 6병 마셨다.     


 “내가 사준 비싼 옷보다 볼펜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볼펜이라니. 그걸로 글을 써서 신춘문예에 출품을 하고 싶답니다. 매년 하는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짓이라 말했지만 이번에는 그 볼펜이 있어서 예감이 좋다나요.”     


 남자는 잠시 틈을 두었다.     


 “리사와 함께 있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건 텅 빈 소리입니다. 리사는 나의 돈을 필요로 했습니다. 혼자서 벌어들이는 것으로는 소비가 몸에 밴 생활이 불가능했으니까요. 언젠가 리사의 굵은 목걸이를 풀어주십시오. 그건 멋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편의점을 나갔다.         


 다음날 밤 뉴스에 40세의 유능한 금융원이 투자자들의 투자 금을 빼돌린 사건과 그 금융원이 가족을 두고 목을 맨 기사를 뉴스로 내보냈다. 금융원에게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도시는 그런 죽음이 가득하고 그런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뉴스거리가 흘러넘치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속인 사람 때문에 사람에게 치유를 받으려 하고 사람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람 덕분에 사람을 구해주는 그런 곳이 이 도시다.    


 리사는 ‘생일 축 리사’라고 새겨진 수제 볼펜으로 쓴 글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마음이 깨지는 소리에 관한 글이 잔뜩 쓰여 있었다. 마음은 이게 아닌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글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날 아침 편의점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쏟아지는 빛이 닿지 않는 편의점 밖 그늘에 리사가 앉아 있다가 애써 미소를 띠며 일어났다.


 리사가 계산을 하고 모텔로 들어갔다. 미용실이 쉬는 날이라고 했다. 그 녀석과 나눠먹던 도시락을 리사와 나눠먹었다. 햇빛이 눈부셔 커튼을 치고 어둑한 불을 켜고 티브이를 틀었다. 영화채널에서 완득이가 하고 있었다.    


 “완득이 봤어? 나는 몇 번이나 봤는데"라고 리사가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오늘은 꼭 소풍을 온 것 같아. 모텔로 말이야. 모텔에 수도 없이 와 봤지만 이렇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완득이를 보는 건 처음이야. 소풍 온 거 같애. 넌 어때?”     


 “난 읽었어.”     


 “뭐? 뭘 읽어?”     


 “완득이 말이야. 나는 완득이를 영화로는 저게 처음이고 책으로 한 번 읽었어."     


 리사는 내 말에 얼굴이 어쩐지 환하게 변했다.     


 “글이 더 좋아? 영화가 더 좋아? 글 속의 완득이도 유아인처럼 그래?”     


 리사는 완득이 소설에 대해서 잔뜩 질문을 했다. 그 속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거의 없었다. 리사는 먼저 씻는다며 도시락을 반 정도 먹은 후 샤워를 했다. 리사가 샤워를 하는 동안 밖에 나가서 싸구려 위스키와 맥주를 사 왔다. 리사는 발가벗었지만 검고 굵고 큰 목걸이는 빼지 않았다.     


 “이런 거 거스턴에 잔뜩 있는 술인데 손님이 먹고 남은 위스키 들고 올 걸 그랬어. 돈 아깝게.”     


 우리는 위스키를 털어 넣고 맥주를 마셨다. 완득이는 2차전에 돌입했다.


 완득이 새끼 격투기를 배워서 집에 들어온 똥주를 도둑놈으로 알고 갈겼다가 똥주의 갈빗대를 분질렀다. 야이 새끼야 뭔 놈의 가난이 쪽팔릴 여유가 있냐? 나중에 나이 먹어 봐라, 그것 때문에 쪽팔려했다는 게 더 쪽팔릴 거다. 똥주의 대사는 리사와 나, 우리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펀치를 날렸다. 우리는 가난뱅이들이었다.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빌딩에서 들락날락하며 생활하는 우리에게, 이 도시에서 가난은 쪽팔리고 또 쪽팔렸다.


 목에는 선명한 줄이 그어져 있었다. 목줄이라고 불릴 만한 큰 목걸이를 풀었을 때 리사의 눈은 눈물 때문에 퉁퉁 불어 있었다. 순간 생각했다. 못 생겼다. 그 순간 리사가 사랑스러워졌다. 나는 팬티를 벗지 않았는데 내 다리에 얼굴을 묻고 리사는 30분 정도를 울었다. 다리가 축축해졌다. 다리가 축축해지는 것보다 저리는 고통 때문에 이를 악 물어야 했다.         


 “내 인생을 돌려받고 싶어"라고 리사가 얼굴을 묻고 나직이 말했다.     


 ‘다른 사람은 너의 인생을 돌려줄 수 없어'라고 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리사는 두 번 아이를 지웠다. 두 번 다 그 남자의 아이였다. 남자는 아이를 못 낳게 필사적이었다. 협박을 했고 리사는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다. 두 번째 목을 맸을 때 가는 목에는 굵고 선명한 줄이 생겼다. 마치 탯줄처럼. 따뜻하고 만지면 느껴질 만한 그런 선명한 줄이.     


 “이제 영영 아이는 갖지 못한데. 넌 엉망진창인 인간이라지만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쓸모없는 인간도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완득이의 필리핀 엄마는 완득이에게 완득아,라고 처음으로 불렀고 완득이는 엄마라고 난생처음 불렀다.   


 ‘이렇게 같이 있으면 사랑이지.’ 엉망진창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의 사랑은 그저 같이 있어 주는 것이다. 리사는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너 나를 동정하면 나 콱 죽어버릴 거야."     


 리사는 퉁퉁 부은 눈으로 발가벗은 채 나에게 안겨 몸을 말고 오후 5시까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리사는 거스턴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듯이 편의점에서 거스턴으로 가는 도중에 15분 동안 나만의 젖은 어둠 속 청록색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잘 모르지만 리사를 조금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돈을 아껴 중고 노트북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볼펜으로 글을 쓰는 건 손목이나 손에 무리를 가한다. 리사가 많이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스턴에 나오지 않은지 3일째 되는 날 나는 리사의 집도 모르고 일하는 미용실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리사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서 미용실이라는 미용실은 다 찾아다녔다. 잠자는 시간을 빼버렸다. 낮에는 리사를 찾아다녔고 밤에는 거스턴에서 잡일을 했고 새벽에는 편의점에서 밤을 새웠다. 눈앞이 가물가물 거리고 도시락도 맛이 없어졌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전단지를 돌라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도시의 사람들을 봤다. 모두가 즐거웠다. 누구도 고민은 없어 보였다. 그런 아름다운 붕어들이 도시의 밤거리를 유영한다. 리사는 볼펜을 남겨두고 떠났다.         


 전화번호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레이도, 크리스틴 누나도 사장도 리사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거스턴에서는 리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반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음성 메시지를 몇십 통, 몇 백통이나 남겼다. 네이버 뉴스 사회 부분을 매일 검색했고 이 도시에서 누군가 죽었는지, 호텔 같은 장례식장에 들러 누가 죽었는지 확인했다. 그게 내가 리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고작이었다.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금붕어처럼 말이다.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이 도시다.         


 그녀가 사라진 지 한 달째 되던 날, 편의점 사장이 통보를 해왔다. 예견된 통보였다. 편의점이 많아지고 손님은 줄어서 12시간 단축 영업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사장은 장애를 둔 어린 아들 치료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이 도시로 온 것이다.   


 줄어드는 손님과 늘어나는 편의점. 마치 폰 속에 번호는 늘어나는데 연락할 사람은 줄어드는 것과 흡사했다. 그 사이에서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장을 이해한다. 사장 역시 겨우 끈을 붙잡고 있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져도 그 끈을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새벽 2시에 이곳에 사는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의 아주머니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보통 이런 시간에 아주머니들은 편의점에 오지 않는다. 촌스러운데 촌스럽지 않은 얼굴의 아주머니였다. 사투리를 썼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동생네 집에 왔다가 사정이 좋지 않아 거기서 잘 수 없어서 고향으로 가려고 나왔다가 낭패를 당했단다. 아주머니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경찰서로 모실까 하다가 과거가 있는 나는 경찰서에 연루되기 싫어 아주머니를 파라솔에 앉게 했다. 곧 가을이다.    

    

 장어구이를 집었다. 나도 한 번도 못 먹어 본 음식이다. 장어구이는 만 오천 원이나 한다. 도시락은 장어구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장어구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어묵탕도 데워서 먼저 내주었다.     


 “장어구이는 그냥 드시지 말구요, 생강 초절임을 곁들여서 드세요, 방울토마토도 있으니까 같이 드세요. 여기 어묵 국물도 같이 드시면서, 도시락 데워지면 가지고 올 테니까 밥에 올려 천천히 드세요.”     


 아주머니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면 됐다.

 초절임 3,500원, 방울토마토 2,000원, 어묵 2,000원, 도시락 4,500원. 내 며칠 밥값이 날아갔다.    

 

 “도시락 이거 이렇게 보여도 데우면 불고기가 음식점 맛과 비슷하게 나요.”     

    

 아주머니는 배가 고팠는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매일 이런 음식으로 총각은 끼니를 때워?”     


 “이것도 못 먹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는 많아요. 저는 몇 시간 유통기한이 지난 거 먹어요. 그럼 공짜로 먹을 수 있거든요. 탈 나지도 않고, 배도 부르고 맛도 좋고.”     


 파라솔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청록색의 밤하늘이었다. 일 년 중에 가장 좋은 날의 새벽이다. 편의점 음식으로 이렇게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담배를 하나 달라고 했다.     


 “총각도 피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근무 중에는 안 피워요.”       

  

 아주머니는 이렇게 복잡하고 큰 도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면 집에도 못 가고 굶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여기는 도시니까요. 저 아니라도 누군가는 아주머니에게 이거보다 나은 밥을 제공했을 겁니다."     


 “총각은 편의점 음식 말고 뭐가 먹고 싶어?”     


 아주머니가 묻기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음 제육볶음이요."     


 “그건 편의점에 없어?”    

 

 “아마 있겠지만 여기는 없어요.”     


 “그게 왜 먹고 싶어?”     


 “근래에 누가 만들어 주는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편의점 음식만 2년 넘게 먹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기름기가 들어가서 위가 놀랐나 봐요. 화장실에 뛰어가는 바람에 다 먹지도 못했거든요. 그게 갑자기 먹고 싶어요. 그 사람이 만들어준 제육볶음이요.”     


 아주머니는 나중에 보답이라도 할 겸 동생네에 오게 되면 제육볶음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저 어차피 이번 달에 편의점 일도 끝이에요. 괜찮아요.”     


 “총각은 이제 뭐 먹고살 거야? 생각한 거라도 있어?”     


 “어떻게든 살겠죠. 이렇게 큰 도시에서 뭐 일할 거 없겠어요. 편의점에 일하러 오기 전 일하는 곳에 어항이 있거든요. 붕어들을 보면 밥 안 주면 죽죠, 물 온도 안 맞으면 죽죠, 스트레스받으면 죽죠, 금붕어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도 물과 최소한의 먹이만 있으면 그 좁은 어항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거든요.”


 금붕어는 혼자서는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없으니 주인이 먹이를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죽고 만다. 물이 더러워지면 죽고 만다.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갇힌 곳에서 행복해하며 불행해하며 유영을 할 뿐이다. 그리고 주인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면 죽고 만다. 금붕어는 좁은 어항 속, 불투명한 물과 전기와 금붕어용 먹이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금붕어는 죽어야만 자연으로 돌아간다. 도시 속 우리의 인생은 금붕어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금붕어는 죽는다던가. 산다던가. 그런 걸 어항 속에서는 알지 못한다.         


 청록색 밤하늘에 뿜어내는 연기는 오늘도 어떤 모양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저 연. 기. 였다. 연기처럼 사라지면 된다. 한 달이 지나도록 뉴스에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리사는 살아있다. 리사! 내 말 듣고 있냐! 힘내라! 금붕어처럼 살아!         


 물건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가끔 만취한 손님은 택시에 태워 보내고 또 가끔 그들에게서 팁을 받는다. 손님이 별로 없거나 거스턴 안에서 내가 할 일이 없을 땐 나가서 전단지를 돌렸다. 단순한 일의 반복이다. 복잡한 도시도 단순하게 흘러간다. 여러 개의 단순함이 모여 하나의 복잡함을 이루고 있는 곳이 여기 이 도시다.   



 편의점에서도 잘리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늘어나는 청구서와 빚을 갚을 길이 없다. 그 녀석은 저 청록색의 젖은 어둠이 가득한 밤하늘로 올라갔다. 실은 그 녀석이 간 곳은 더 깊고 깊은 어둠 속이다. 밤이 청록색이라는 건 불순물이 많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껴 있지 깨끗하고 맑은 어둠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눈을 감고 그대로 뜨지 않으면 된다. 모든 것에서 편안해질 수 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서 나는 엉망진창인 인간으로 살았다. 동생도 보고 싶고 그 녀석도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왜 나를 놔두고 그렇게 일찍 죽어야 했을까. 죽어야 할 사람은 이 도시에 너무 많다. 거기에 나의 어머니는 속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도시의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동생과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대화도 몇 번 해보지 못했다. 이게 사람이 사는 모습일까.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이 도시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청록색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젖어들자.  



 오늘 새벽이 편의점 마지막 날이다. 4시가 되어간다. 전화벨이 울렸다. 듣지 못했던 벨소리다. 문 리버다.    

 

 “리사? 리사 야?”라는 물음에 “엄마가……. 엄마가…….”라고 말을 하는 리사는 울먹거렸다.     


 “엄마가 평생 먹어본 장어구이 중에 그게 가장 맛있었데. 잘 먹었다고 전해 달래.”     


 “응.”     


 “엄마가 적어도 넌 나에게 나쁜 짓 할 인간으로는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데.”    

 

 “응.”     


 “엄마가……. 언제든 오면 제육볶음 해준데.”     


 “그래, 고마워.”     


 리사는 울음을 꾹 참았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는 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리사는 최선을 다해 울음을 참고 있었다.     


 “볼펜 받으러 가도 돼?”     


 “응.”   

 

 “그 볼펜으로 신춘문예 도전할 거야, 응원해 줄 거지?”   

  

 “응.”         


 “행복하지 만은 않을 거야.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지금부터도 그럴 거야.”     


 “응.”     


 “서로에게 상처 주고, 받은 상처는 영원히 갈지도 몰라.”     


 “응.”     


 “너 약속하나 해줘.”     


 “그래.”     


 “떨어져 있을 땐 잠들기 전에 전화해서 잘 자라고 꼭 인사해줘, 같이 지낸다면 눈떴을 때 내 얼굴 보고 잘 잤냐고 물어봐 줘.”     


 “응.”     


 “그리고 또 하나, 2인분 이상만 파는 김치찌개 먹고 싶을 때 너 배고프지 않아도 같이 가줘.”     


 “그래.”     


 커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틈이 있었다.     


 “고마워…….”     


 “응.”    

 

 “고마워.”     


 “응.”     


 “정말 고마워.”     


 “나도 고마워.”   



 리사는 내 대답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못생긴 얼굴. 하지만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 청록색의 밤하늘도 같이 보고 말이야.”     


 “응.”     


 “여기서는 밤하늘이 온통 별빛이라 별로야. 별빛이 보이니까 자꾸 별빛을 잡고 싶어 져.”     


 “응.”     


 “그래서 밤하늘도 아름답지 않아.”     


 “응.”     


 “청록색 밤하늘을 너와 함께 보고 싶단 말이야.”     


 “그래.”     


 “나 말해줄 게 있어.”     


 “뭔데?”     


 “너 있는 근처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 구했어. 미용사 자격증 땄어. 그리고……. 나 이제 크고 답답한 목걸이 하지 않아. 이제 버스 타려고 해."     


 그녀는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너는, 너는 뭔가 말하고 싶은 거 없어?”     


 울먹이는 리사의 말에 나는 조금 틈을 가졌다가 말했다.     


 “빨리 와, 보고 싶어.”     


 리사는 참았던 울음을 쿡 터트렸다. 세상을 미워해도 너는 미워하지 않아도 돼,라고 리사에게 말하고 싶었다. 말하진 못했지만 괜찮다. 직접 얼굴을 보며 말하면 된다. 리사가 버스를 타고 나에게 오고 있으니까.     

    

 새벽 4시가 되면 자동으로 음악이 나오는 편의점 스피커에서 카더가든의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붕어는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좁은 곳에서 받아먹어야 하는 먹이를 넣어 주어야 하지만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청록색의 젖은 어둠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어항에 새로 금붕어가 들어왔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유영을 하며 지낸다. 달아나지 않고 싸움을 멈추는 건 힘들지만 금붕어처럼만 하면 된다. 좁은 곳이지만 먹이를 넣어주면 버끔버끔 받아먹으며. 금붕어는 그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 리사의 목에 크고 굵은 목걸이 대신 별빛이 남긴 꼬리 같은 자국이 선을 긋고 있지만 괜찮다. 이제 그곳을 내가 대신 안아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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