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4

8장 3일째

174.

 검사실 안은 처음 보는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부는 보랏빛이 감도는 아담한 공간의 실내였고 한쪽 벽면은 마스모토 레이지의 야마토 내부를 보는 듯했다. 중간에 침대가 있었는데 침대만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동에게 침대 위에 누우라고 한 뒤 분홍 간호사는 야마토 내부처럼 보이는 벽면에 서서 여러 가지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누우니 방안을 감도는 기분 좋은 보랏빛이 마동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퇴행하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무슨 검사를 합니까?” 마동은 분홍 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뒷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풍만한 제복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영화 시작 후 10분 만에 사라지는.


 “일반적인 검사를 할 겁니다. 피검사, 심전도 검사, 내시경 등 말이에요.” 분홍 간호사는 뒤를 돌아보며 마동을 향해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마동은 병원에 오기 전에 는개에게 받은 자양강장제를 한 병 마셨지만 함구했다. 마동의 말을 듣고 분홍 간호사는 마동을 향해 또 미소를 지었다. 분홍 간호사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간 밀려있던 졸음이 전조도 없이 들이닥쳤다. 분홍 간호사가 벽면에서 이것저것 무엇인가 버튼을 누를 때 체내로 수면제가 투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졸음은 몸과 머리를 지배해 버렸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침대의 베개에서 떨어트려 머리를 흔들었지만 졸음은 그야말로 폭력적이었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의 머리를 아기처럼 베개 위에 뉘이고 분홍 간호사는 분홍의 간호사 복을 벗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마동은 잠이 들어 버렸다.


 분홍 간호사가 옷을 벗는다. 옷을 벗는……. 옷을…….     


 눈을 뜨니 검사실 안에는 마동 혼자뿐이었다. 일어나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나 잠이 들어 있었다. 아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심해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오른팔에 약간의 통증이 있는 걸 보니 피검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검사가 이루어졌나 보다. 내시경도 잠이든 사이에 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검사실을 감도는 보랏빛도 사라졌고 벽면을 가득 메웠던 컴퓨터 장비들도 보이지 않았다.


 바지의 앞섶으로 눈길이 갔다. 페니스에 동통이 있었다. 하지만 바지는 벗겨진 흔적이 없었다. 입고 있는 두꺼운 블루진은 지퍼 형식이 아니라 단추가 달린 청바지라 벗겼다가 다시 입혔으면 미묘하지만 알 수 있었다. 벗겼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이 나지 않는 섹스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나사와 같다.


 검사를 위해서 분홍 간호사가 옷을 벗은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그럴 리도 없다.


 마동은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머리가 하얘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고 순백색의 머릿속은 어떤 색의 크레파스로 칠을 해도 칠해지지 않았다. 유리에 색칠하는 것처럼 색이 겉돌고 있었다. 질척한 하얀색이 머릿속 세상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볼펜의 끝으로 그 하얀색에 선을 그으면 말랑말랑 젤리처럼 다시 하얀색으로 메워졌다. 순백색의 공간은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때, 분홍 간호사가 문을 열고 미소를 띠며 들어왔고 의사가 기다린다면서 나오기를 권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젖은 어둠은 마음으로 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