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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2

8장 3일째

172.

 오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톤 체호프의 1장이 펼쳐졌고 권총이 등장했다. 이제 권총이 발사되어야 할 일만 남았다.


 “자네에게 상의 없이 결정을 해서 미안 하네만 자네나 이 곳이나 클라이언트나 모두 감시대상에 들어가 있네. 특히 정부는 자네를 가장 예의 주시하고 있어. 아무래도 자네가 일선에서 클라이언트의 뇌파를 채취해서 그럴 거야. 편안하게 전부 모여서 회의를 거쳐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네.”


 단결이란 단체에서 누군가가 희생을 하기 때문에 단결이 이루어지고 조직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안정된 테두리를 뛰어넘어버렸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테두리를 넘어서면 당연하지만 불안하고 골이 깊은 뾰족한 크레바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오너의 말에 침묵을 지키던 마동은 끝내 동의를 했다. 오너는 사장실을 뛰어나가 이번 프로젝트를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작업을 중단하고 그동안의 작업 분을 회수해오려고 했다. 그런 오너를 마동은 다시 불렀다.


 “오너? 디자이너들에겐 그것대로 작업을 꾸준하게 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정부 쪽에서 작업량을 체크할 텐데 말이죠.”


 오너는 마동의 말을 듣고 “객체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분류해서 그들의 눈을 피한다. 그래,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오너는 디자이너들에게 가서 조금 더 디테일하고 레이어의 균형을 잡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들이 하는 작업은 매시간 정부의 정보망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최원해 역시 어딘가에서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었다. 오너는 자신의 특별한 용도로 제작된 노트북을 마동에게 건네주었고 마동은 파일과 노트북을 들고 회사를 나섰다.


 뒤에서 박는개가 마동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녀는 마동에게 완쾌하기를 바랐다. 는개의 목소리에서 진정성이 묻어났다. 마동이 사무실을 나오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는개의 눈 속에 깊은 서정성마저 담겨 있었다. 마동은 는개에게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 자신의 품에 안긴 는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가 이루어졌다. 밖에서 봤을 때는 이런 검사실이 있었나? 할 정도로 낡은 건물처럼 보였지만 검사실이 버젓이 있었고 검사실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일반적인 종합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검사설비와 기기가 갖춰있었다. 분홍 간호사는 오늘도 풍만했다. 마동의 눈에 분홍 간호사의 풍만함이 먼저 들어왔다. 병원으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지만 타인에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2층으로 힘겹게 올라와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포르말린 냄새를 맡는 순간 병원 밖에서 일어났던 증상은 사라지고 말았다.


 포르말린 냄새 때문인가.


 추위가 단절된 따뜻한 포장마차처럼 마동의 변이가 몰고 온 몸살은 병원으로 들어오는 순간 힘을 잃어버렸다. 분홍 간호사와 눈인사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서 병원 실내를 둘러봐도 주사실과 원장실과 화장실 정도가 보였을 뿐 마동이 누워있는 묘한 검사실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얼굴을 지닌 원장을 만나서 검사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은 후 마동은 분홍 간호사의 뒤를 따라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에는 화장실로 이어지는 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홍 간호사가 마동이 보고 있었음에도 눈치 채지 못한 곳의 문을 열었다.


 분홍 간호사는 분홍 매니큐어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화장실 문 옆에 자그마하게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어이없게도 문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복도의 벽에 나타났고 엉뚱하게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긴 복도가 다시 나타났다. 복도로 들어가니 문밖 병원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포근함이 가득했다. 눈이 아프지 않은 조명이 복도의 천장에서 빛나고 있었다. 조명도 처음 보는 조명이었고 색온도가 좋았다. 억지로 빛을 만들어내지 않는 조명이었다. 복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깊은 잠 속으로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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