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5

8장 3일째

175.

 마동은 분홍 간호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지만 카운터에서 보이던 모습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이 문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은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동은 분홍 간호사를 지나치면서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처럼 친숙한 향이다.


 하지만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오면서 맡았던 간호사의 체취는 아니었다. 향수의 향도 아니었고 비누에서 나는 그런 향도 아니었다. 샴푸의 향도 아니고 옷에서 나는 섬유제의 냄새도 아니었다.  


 무엇일까. 낯익은 향이었다.


 마동은 분홍 간호사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을 원장실로 안내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마동은 원장을 마주하고 앉았다. 병원의 원장실에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분홍 간호사가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가버리니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냉정하게 돌변했다. 원장은 마동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으로 마동을 한참 쳐다보았다.


 “일단 정확한 건 수일 내에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거지만.”


 병원 안에서는 원장의 의식도 분홍 간호사의 의식도 들리지 않았다. 원장은 마동의 피가 일반 사람들의 피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성분이며 혈류량이며 혈류 속도 같은 것이 타인과는 다르군. 하고 의사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과 마동은 검사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식과 건물의 동향, 유행하는 영화와 슈트에 관한 이야기, 날씨, 슈퍼 카의 가격과 크루즈에 승선할 수 있는 인원, 바퀴벌레의 종류와 지하 몇 미터까지 인간의 공간을 건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동과 의사 두 사람의 어깨는 한층 풀어졌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게 되었다. 냉정한 방 안의 공기가 조금은 안온하게 바뀌었다. 마동은 의사에게 분홍 간호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묻지 않았다.


 “고마동 씨, 혹시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의사는 마동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진지하게 물었다. 마동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어서 스스럼없이 대답을 했다.


 “제가 딱히 내세워서 잘하는 것은 없습니다.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배고픔을 남들보다 잘 견딜 줄 안다는 겁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고픈 것을 잘 참았습니다.”


 의사는 마동의 터무니없을 법한 말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간이 배고픔을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잘 참고 있는 종족이지만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를 참기란 쉬운 일은 아니죠. 1835년 11월 캐나다의 바다에서 좌초한 배에서 18명이 구조를 기다리다 결국 한 명을 희생시켜 그 인육으로 17명이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습니다. 죽어서 고기를 내 준 사람은 15살의 수습 선원이었죠. 그리고 3일 후에 지나가던 다른 어선에 의해 구조가 됩니다. 3일만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15살의 어린 선원의 목숨은 살아남았겠죠.” 의사에 말에 마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결이 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가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에 조직이라는 단체가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그 속에서 조직의 음모가 개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고작 15살에 희생당한 선원의 실화에도 계략이 있었던 것이죠.”


 “동물은 눈앞의 음식을 참아내는 능력이 없죠. 그래서 단결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배고픔을 잘 참아 낸다는 것은 절제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마동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오너 앞에서 했던 생각이었다. 마동이 한 생각을 지금 눈앞의 의사는 입으로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오너나 의사나 분홍 간호사나 어딘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대체로 이들이 내뱉는 말이 고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의사가 말을 끝냈을 때 마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옛날 순대 맛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