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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77

8장 3일째

177.

 의사는 자세를 바꾸어 앉아서 마동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동이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멈추면 원장실의 공기도 무거워졌다. 실내의 공기도 마동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흉가 안에서 플래시 빛이라는 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잘 설명을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플래시의 빛은 일정하게 빛의 미립자가 산란하며 5미터 정도를 뻗어 나가는 게 맞습니다. 흉가 안으로 들어와서 복도에서 플래시 빛을 비추었을 때 복도 저 먼 곳까지 플래시 빛은 자신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서히 걸어가면서 어느 특정한 부분(벽면이나 구석진 부분)을 비추면 플래시의 빛이 그곳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 특정한 부분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2미터나 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플래시의 빛이 닿지 않는 것이었죠. 플래시의 빛은 마치 건전지가 다 된 것처럼 점점 얇아지면서 일 미터도 비추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도를 비추면 다시 복도의 먼 곳까지 밝게 비치는 거죠. 어둠은 자신에게 비치는 플래시의 빛을 먹어 버렸습니다. 어둠은 우리에게 주의나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분명하게 경고를 한 것입니다. 조원들은 처음에 플래시를 두드리고 여분으로 들고 간 건전지를 갈아 끼워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조는 일층에서 회수할 수 있는 우리 조의 깃발을 모두 회수 한 다음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층에 올라서니 또 한 꺼풀의 축축한 어둠이 몸을 뒤덮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플래시 빛은 더욱 옅어지고 작아졌습니다. 한 직원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것이었어요. 긴장이 극도에 달하니 몸이 반응을 한 것입니다. 어둠이 직원의 체온을 심하게 떨어트리며 의식을 갉아먹었어요. 회사 내에서 체격이 제일 좋고 운동을 잘하기로 소문이 난 직원입니다. 저회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형사가 되려고 했다는 직원이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가 서로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층 복도에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차장님에게 말해서 그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산 밑에 있는 본부에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모든 휴대전화기에 수신이 된다는 표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몸을 떨던 직원이 복도의 천장을 무심코 플래시로 비쳤는데 음…….” 마동은 한참 동안 다음에 올 말을 찾았다. 어떠한 단어를 집어넣어야 말이 이어질까 한참을 생각했다.


 “음…… 공포로 인해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만 죽는 방식에서는 실로 다양한 방법이 있고 만약 여기서 죽게 된다면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죽는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한다면 직원이 무심코 플래시를 비쳤던 천장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이 말이 새끼를 낳듯 부풀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플래시의 빛을 먹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모두 보았고 몸을 떨던 직원이 그만 어딘가를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말릴 겨를도 없었어요. 우리는 그 직원을 불렀습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은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달려가던 직원은 올라왔던 계단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뛰어가더니 복도에 붙어있던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문은 전부 잠겨있거나 못질이 되어 있어서 열리지 않았는데 직원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마저 흉물스럽고 무서웠습니다. 우리가 옆에서 말렸지만 이미 그 직원은 본인이 뿜어 낼 수 있는 자신의 힘의 몇 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의 문이 열리고 그 직원이 블랙홀을 빠져나가듯 문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들 역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방은 요양소에서 식당으로 있던 자리인지 싱크대나 개수대 같은 것들이 죽 일렬로 붙어 있었습니다. 직원은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방의 이곳저곳을 개처럼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어둠의 무리가 천장을 타고 쓱 쓱 옮겨 다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둠은 끈적끈적하고 징그러운 촉수를 지니고 있었어요. 촉수의 끝을 세우고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체내의 수액을 다 빨아먹고 우리들은 미라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 역시 공포에 몸이 심하게 떨렸습니다.


 밑의 직원들도 말할 것 없거니와 차장님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혈압이 많이 오른 모양이었죠. 그런데 저의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천장에 달라붙어 자글자글 거리던 어둠이 벽을 타고 스멀스멀 내려오는 겁니다. 다른 직원들은 아마도 경황이 없어서 못 본 듯했지만 전 그 모습을 분명히 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과 확신이 성립하지 않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둠은 천장에서 벽을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흉가의 주방 실내의 어둠이 이미 우리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음에도 기분 나쁘고 축축하고 이질적인 어둠은 서서히 벽을 타고 내려와서 우리에게 다가오려 했습니다. 아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상당히 끈적끈적했고 플래시의 빛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데도 이질적인 어둠이 움직이는 모습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시무시한 어둠이 몸을 떨고 있던 직원의 몸을 감쌌고 옆으로 옮겨가서 다른 직원의 몸도 감쌌습니다. 사신처럼 내려오는 모습에서 나는 죽음과 마주한 느낌이 어떤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이런 흉가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이곳 지역 사람들이 미웠고 이런 이벤트를 주최한 회사도 미웠고 이런 상황에서 고작 미운 것들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 자신이 가장 미웠습니다. 죽는 순간 미워하는 것들에 대해서 먼저 떠오르는 나 자신이 정말 미웠습니다.”


 마동은 의자의 등받이에서 등을 뗀 후 자세를 잡고 다시 기댔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들이는 얼굴을 한 의사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기다려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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