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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2

8장 3일째

182.


 “여기 침대에 누우시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겁니다.”


 “저 그런데, 간호사님?”


 “네?”


 “검사실에서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동은 조금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검사에 필요한 행위들이 이루어졌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행위라니, 검사에 필요한 행위가 무엇일까.


 피를 뽑고 심전도를 측정하고 내시경을 하는 행위? 그것은 눈을 뜨고 정신이 있을 때 해도 되는 것이다. 분홍 간호사는 다른 행위를 말하고 있다. 마동이 물어보려는데 분홍 간호사는 테이블 위에 음료가 있으니 잠들기 전에 마시면 몸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들어왔던 문으로 풍만한 가슴을 안고 사라졌다. 분홍 간호사가 사라지니 방안은 어두워졌다. 조명 탓이 아니었다. 그저 어두워졌다. 분홍 간호사도 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 어떤 능력인지는 불분명했다.


 수면실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었다. 신기했고 신비로웠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눈으로 볼 때보다 쿠션의 탄력이 더 느껴졌다. 원장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떠올랐던 세미나 때의 어둠의 냄새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이 사라졌다. 전혀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면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은 흉가에서 만난 어둠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어둠이었다.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어둠에게 내 몸을 안아달라고 말하고픈 어둠이었다.


 의사는 마동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마동은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떨까 하며 어제 이야기를 했었지만 의사는 큰 병원에서 많은 돈을 들여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는 사항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를 받는 것은 환자의 자유라고 했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는 마동에게 제. 대. 로. 된 소견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마동은 의사를 신뢰했다. 작정하고 친절한 의사는 신뢰가 가지 않지만 이 의사는 신뢰가 갔다.


 마동은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마동이 눕자마자 몸을 감쌌다. 안온감이 들었다. 어쩐지 천장이 더 낮아지고 벽면도 더 좁아진 듯했다. 이제는 방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침대에 누우니 아주 편안했다. 침대는 등을 받아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편안함은 질이 좋지 않은 편안함이라는 것이 대번에 느껴질 정도였다. 마동은 침대가 자신의 몸을 포옥 감싼다는 느낌에 잠이 까무룩 들려고 했다.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 안겼을 때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니 페니스가 반응을 했고 동통이 왔다. 분홍 간호사의 향이 침대에서 났다.


 도대체 이 향은 어디서 맡아본 것일까.


 40시간 동안 일을 하고 수마에 끌려 그대로 잠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몇 시간 동안 깨지 않고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길은 없지만 확신했다. 수면실에는 조그마한 위화감도 엿볼 수 없었으며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의 온기와 분홍 간호사의 기분 좋은 향이 서로 맞물려 병립해 있었다. 마동이 생각한 바 그동안 편안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낯선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병원의 시스템이란 단순하다. 병원 내에 있는 기계가 환자의 상태를 측정하고 의사는 처방을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기계는 복합성과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을지언정 지극히 논리성을 보이는 곳이 병원이다. 병원은 사람들에게 늘 낯선 곳이고 편안함을 얻기는 힘든 장소다. 하지만 여기, 이 병원은 달랐다. 의사와 간호사는 꽤 성의를 다해서 수면실을 만들었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게 기이한 두 사람의 기운과 의지가 별이 많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여름밤의 세계로 이끌어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마동은 정신이 가물거린다. 잠이 들기 전 이 상태가 가장 황홀할 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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