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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83

8장 3일째

183.

 분홍 간호사가 마시라고 올려둔 음료를 집어 들었다. 커피를 담은 텀블러 사이즈 크기의 유리병에 담겨있었다. 마동은 뚜껑을 돌려 연 다음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마시는 순간 갈증이 해소되고 눈이 맑아졌다. 이건 천상의 맛이었다. 쉬는 시간에 받아 든 초콜릿 우유를 단숨에 마시는 학생처럼 음료를 한꺼번에 삼분의 이를 죽 마셨다. 요 며칠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는데 마동이 마신 음료는 피부의 탄력을 재생시키(는 것 같았)고 근육의 이완을 이루게(하는 것 같았고) 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두운 흉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어둠의 틈을 뚫고 들어오는 빛과 같았으며 세상의 모든 언어를 통째로 삼킬만한 맛이 음료에 들어있었다.


 벽면의 벽지에 그려진 기이한 문형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조각나기 시작했고 그 조각난 문형 사이로 보랏빛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동은 보랏빛의 불빛에 온몸을 내 맡긴 채 나머지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것에 대해 보상받고도 남을만한 맛이었다. 보랏빛은 점차 마동의 몸을 감돌았다. 포근하고 따뜻한 색으로 마동의 머리를 만져주었고 얼굴을 건드렸고 가슴을 쓰다듬었고 다리를 주물렀고 마지막으로 페니스에 가 닿았다.


 마동은 몸이 침대 속으로 폭 안기는 느낌을 받았다. 빛을 빨아들여 보송해진 캐시미어의 감촉 좋은 이불이 마동의 신체를 더듬었다. 마동은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누군가 마동의 손을 잡았다. 보드랍고 통통한 느낌의 손이었다. 기분이 라면 위의 치즈처럼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마동이 눈을 뜨니 분홍 간호사가 옷을 다 벗은 채로 마동이 누워있는 침대로 올라왔다.


 분홍 간호사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마동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옮겼다. 마동은 분홍 간호사에게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늘 필요할 때 나오지 않는다. 분홍 간호사는 옷을 모두 벗고 분홍색 모자는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게 보였다. 분홍 간호사의 표정은 병원에 들어오면서 봤던 미소와는 다른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마동의 두꺼운 블루진 앞섶의 단추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 마동은 저항을 해야 했지만 가만있었다. 그건 그냥 분홍 간호사와 섹스를 나누려고 하는 마음에서 벗어난 어떤 끌림의 힘에 의해서였다. 어떤 힘이 분홍 간호사가 만들어낸 힘이었는지 병원 내부에 있는 무엇의 힘이었는지 마동 자신이 만들어낸 합리화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바지가 내려가고 속옷이 무릎 밑으로 내려가니 버섯 대가리의 모양을 하고 서서히 그리고 딱딱하게 변했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의 페니스를 분홍 매니큐어가 칠해진 길쭉한 손가락으로 잘 만져 주었다. 마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정신은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고 분홍 간호사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관념이나 사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시각적인 분홍 간호사였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의 페니스가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을 때까지 잘 만져 주었다. 그리고 분홍 립스틱이 발린 입술을 벌려 마동의 페니스를 입안에 넣었다. 마동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혀끝으로 페니스의 끝 부분을 건드리고 잘 빨아주었다. 마동의 입에서는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리고 관대한 애무의 반응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동안 분홍 간호사는 입으로 마동의 페니스를 애무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를 애무하면 육체는 살이 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애무에서 벗어난 애무였다. 그렇지만 왜인지 분홍 간호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홍 간호사의 입술 끝으로 그 마음이 느껴졌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마음이 없이 단순한 시스템으로, 의미 없는 육체의 몸짓으로 하는 애무가 아니었다. 분홍 간호사가 마동의 페니스에서 입을 떼었다. 마동의 젖혔던 고개가 다시 돌아왔다. 피가 빠르게 흐르고 심장이 북소리처럼 크게 울렸지만 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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