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비가 걷히고 난 후의 하늘은 가스층이 없어서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여준다. 구름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여름의 하늘치고 너무나 생생하여 작정하고 한참을 바라본다.
근래에는 조깅을 줄이고 중간중간에서 근력운동을 좀 한다. 그러다 보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이 많아진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구름의 변하는 모습에 시선을 늘 빼앗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은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매일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자와 같다. 여자는 늘 미소 짓고만 있지 않는다.
매일 볼 수 없기에 가끔 보이는
이런 그림 같은 하늘이 아름다울까.
매일 보는 것에 대해서
매일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나에 비해서 분명 덜
불행한 사람이다.
윗몸일으키기를 좀 하다가 발을 쭉 뻗어 하늘을 본다. 하늘의 구름을 발로 죽 끌어 본다. 하늘의 정경의 매력이 있다. 땀을 흘리는 와중에 바람이 한 차례 불어오면 얇은 책장을 넘기듯 나뭇가지들이 숨을 쉰다. 하늘에 그림을 그려놓은 구름들이 초현실 화가의 마음처럼 물결친다. 그런 흐름을 눈으로, 촉감으로 느끼고 있으면 실감이라는 것에 조금 다가서는 기분이다.
자연을 알아가는 것도 어렵지만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미궁과도 같은 문제처럼 더 어렵다. 좀비로 유명한 조이스 캐럴 오츠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고 싶다는 욕구는 일종의 소유욕이고 착취 욕이다. 반드시 버려야 하는 낯부끄러운 기대이다,라고 했다.
매일 지나치는 하늘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아채지 못하는 변화가 있고 그 속에는 계절이라는 얇은 옷이 하늘과 푸른 나무와 구름과 그 사이에 생존하는 동물들의 모습까지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컴퓨터 회로의 동작처럼 자연은 때가 되면 전등의 불빛을 갈아치우고 나는 자연 속에 하나의 존속으로 존재되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여름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든 생존하는 것들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사람들과 고양이들 모두가 추위에 떨었던 적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얼굴을 하거나 다리를 벌려 그늘을 찾아 몸을 눕힌다.
생각을 접고 조깅코스를 벗어나 오래된 동네에 접어든다. 골목길이 아직 존재하는 동네다. 일명 달동네. 오래된 골목에서 테이크아웃의 일회용 커피 컵을 본다. 세계는 오래된 것과 새것 사이에서 방황을 하기도 한다. 세계는 그러한 방황 속에서 또 영차영차 앞으로 나아간다.
오래된 집의 오래된 창문도 본다. 마치 신제품의 아이패드를 본 것처럼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본다. 예전에는 이런 창문을 달고 사람들은 일상을 보냈다. 아마도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창문의 겉에는 철제로 이렇게 만들었다. 별을 좋아하던 여고생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창문을 통해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사연을 적어서 라디오에 보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의 건강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그 남학생에게 나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골목의 바닥은 생명력이 태동한다. 분명 아스팔트 같은데 오래되어서 그런지 봄이 되면 잡초도 올라오고 이끼도 낀다. 양쪽의 벽면이 보색으로 대비를 보여준다. 이곳에 온 이유는 이 골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가난을 짊어진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어 다닥다닥 붙어서 군락을 이루었던 동네.
여름이 다가오는 저녁이면 마당에서 전부 생선을 화덕에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골목을 덮었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그 냄새에 배가 꼬르륵. 많은 아이들이 무리를 만들어 이쪽저쪽 골목에 자리를 차지하고 놀았다. 꼭 우는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는 꼭 여자 아이인 경우에 남자아이 때문에 울었다. 땀을 흘려가며 뛰어놀고 마당의 큰 대야에서 엄마에게 등짝을 맞아가며 목욕을 했던 골목길.
사진이 파스텔로 칠해놓은 그림처럼 보인다. 벽도 촌스러운 페인트를 칠했고, 촌스러운 화분에, 화분 받침대로 촌스러운 대야를 사용했는데 그런 것들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덩굴이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이쪽 눈으로 보면 그저 골목의 모습이지만 또 다른 눈으로 보면 그림이다.
근래에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집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한 시간 정도 쓴다. 카페는 작은 공간이지만 큰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런 카페가 있다. 빨리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편안하게 글을 좀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카페가 있다.
무엇보다 카페라테가 맛있다. 그리고 사장님은 친절하다. 친절함이 말과 행동에 묻어난다. 술 취한 회사원들도 동네 말 많은 아주머니들도 모두에게 똑같이 친절하게 대한다.
카페의 스콘은 맛있다. 참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스콘은 처음 먹어 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장님은 그저 웃으며 고맙다고 할 뿐이다. 사실 스콘을 몇 번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스콘이라는 빵을 먹어 본 건 파리바게트의 스콘을 먹어본 것이 다인데 스콘이라는 게 이런 맛이구나,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스콘을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버렸다. 사장님은 포크와 나이프를 줬지만 그저 손으로 들고 먹는다. 한 입 먹고 아이스라테를 먹는다. 아아 정말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팔고 예쁜 공간의 카페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었다니.
역시 행복이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보통 한 시간 정도 글을 쓰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운동을 하고 난 직후라 나의 모습은 대역죄인 같은 모습인데 이곳에 들어오면 모든 것에서 차단이 되고 편안함으로 무장이 된다. 시원한 라테를 한 잔 마시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적을 수 있다. 이 날은 쿠키를 얻어먹었다. 쿠키가 손바닥만 한 게 크고 두툼하고 역시 맛있다.
가까운 것에서 위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