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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04

9장 3일째 저녁

204.

 마동은 팔을 뻗어 나뭇가지를 살짝 걷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에는 큰 생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은 나뭇가지를 헤쳐서 움직이는 생물체를 쳐다보았다. 마동은 놀란 눈이 되었다. 그것은 아주 큰 야생 고양이었다. 비록 나이가 어린 마동이었지만 야생동물은 강도처럼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고양이는 마동의 다리만큼 큰 고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와는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부스럭 거리며 움직이는 동물은 너구리였다. 그렇지만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선생님이 설명해 준 너구리보다 더 큰 덩치였다. 몸의 빛깔은 대체로 옅은 갈색에 등 부분의 가운데에는 검은색의 어두운 띠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구리의 앞다리로 지나가는 띠가 잘 만들어진 문형에 가까웠다. 마치 무명 화가가 솜씨 좋게 띠 모양으로 그려 놓은 듯했다.


 털은 짧았다. 짧은 털은 빳빳하게 보였다. 실은 무척 부드러운지도 모른다. 너구리는 야행성이다. 하지만 천적이 많아져 버린 탓에 너구리들이 낮에도 숲 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닌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이 했다. 너구리는 육식동물에 가까운 잡식동물이다. 마동이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동의 눈에 비치는 너구리는 땅을 꾸준하게 팠고 주위의 나뭇가지를 치우기도 했다. 뭐랄까 그저 땅을 파보기도 했고 숲 속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이동시켰다. 마동의 눈에는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보였다.


 눈 밑에 반점이 있는 걸로 보아 너구리가 확실해 보였지만 어딘지 너구리라고 부르기에는 부 조화스러운 면이 많았다. 너구리는 너구리였지만 너구리가 아니었다. 다만 너구리를 닮은 비슷한 동물이었다. 너구리는 아주 멋진 꼬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저 녀석은 꼬리가 없었다. 꼬리가 잘렸다든가 짧은 꼬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꼬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인간의 엉덩이처럼 꼬리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너구리처럼 보이는 저 동물의 엉덩이에 말이다.


 마동은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너구리에 대한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에 겁이 덜컥 나버렸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의 나뭇가지를 밟았다.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너구리가 고개를 들어서 마동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구리의 눈은 동물의 눈이 아니었다. 동물의 눈에는 흰 자위가 없다. 저 너구리의 눈은 인간의 눈처럼 흰 자위가 있고 그 속의 눈동자를 움직였다. 적의가 가득 들어차 있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너구리를 닮은 저 녀석의 눈빛에는 인간을 보고 불안함이라든가 놀람이 아닌 적의만이 가득했다. 마치 살인 현장을 들켜버린 살인자의 눈빛 그것이었다.


 마동과 너구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구리는 마동을 노려보고 마동은 놀라는 눈으로 너구리를 쳐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너구리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누렇고 냄새나는 지옥의 칼 같은 너구리의 이빨이 드러났다. 숨을 죽이고 적의에 가득한 너구리의 눈빛을 받은 마동은 그만 다리에 남아있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다리가 구부러지며 밑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인간의 다리가 풀어지는 방식에는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만큼 많은 방식이 있지 않다. 그 몇 가지도 되지 않는 방식 중에 제일 나약한 방법으로 마동의 다리는 풀어졌다. 그 순간 너구리가 쉐엑 하는 소리를 뿜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괴성은 고요한 물에 파문이 퍼지듯 순식간에 숲의 풀 잎사귀를 흔들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큰소리로 불렀다.


 “얘들아, 얘들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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