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모친은 70 평생 트로트를 듣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모친은 주로 패티 김을 자주 들었다. 중학교 시절 아침이면 듣기 싫어도 늘 들리는 패티 김의 노래들. 가시나무 새,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서울의 찬가, 이별 등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듣지는 않았지만 잠결에 패티 김의 노래는 링겔한스섬을 통해 온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패티 김의 노래는 거의 다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패티 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 길옥윤과의 불같은 사랑, 둘 사이에서 정아라는 딸이, 이혼 후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카밀라를 낳았다. 카밀라는 후에 가수가 되어 성시경과 듀엣곡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모친과 함께 패티 김의 공연을 본 후로 나 혼자서도 두 번인가 더 가서 보게 되었다. 내 또래는 없었고 내 주위의 어머니들보다 내가 패티 김의 노래를 더 잘 따라 부르는 것에 나도, 어머니들도 놀랐다. 패티 김의 공연을 가보면 카밀라가 늘 나와서 엄마의 공연을 빛내준다. 그리고 앙코르 소리가 작으면 패티 김은 커튼콜의 커튼에 몸을 베베 꼬으며 너무한다고 교태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앙코르 앙코르를 외치고 패티 김은 다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길쭉한 팔을 들어 올리며 이별을 불렀다.
적어도 내가 본 모친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트로트를 듣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모친은 임영웅과 영탁(아버지의 이름과 같다. 그래서 자주 모친은 거론한다)과 더불어 미스터 트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미스터 트롯이 무엇이기에 70 평생 트로트를 듣지 않았던 모친마저 임영웅, 영탁, 임영웅, 영탁 하는지. 그 뒤로 폭주기관차처럼 모친은 대단했다.
임영웅의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도 꿰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 어머니 밑에서 컸다느니, 돈도 많을 텐데 자취방은 아직 학생들 자취방 같다느니, 영탁은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른다느니, 동원이는 민호는(보통 장민호는, 정동원은,라고 하지 친근하게 이름만 부르지 않는데 마치 옆집의 아들처럼 민호는 동원이는,라고 한다) 둘이 늘 붙어 다닌다느니. 노래 이외에 생활에 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그건 오래전 모친이 좀 더 젊었을 때 패티 김의 손짓 하나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 비슷했다. 티브이를 틀면 여기저기서 미스터 트롯이 봇물처럼 나온다. 보니까 모든 방송사에서, 모든 프로그램에서 미스터 트롯의 4인방 내지는 7인을 모시려고 안간힘을 쓴단다. 그들이 나오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임영웅이 패티 김의 이별을 불렀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로 시작하는 노래는 패티 김이 길옥윤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다. 두 사람이 일본에서 처음 만나 불꽃처럼 피어올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을 때는 월남전이 한창이었을 때라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위문공연으로 대신했다. 정글 속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장병들에게 '타향살이'를 불렀을 때 군인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랬던 패티 김의 노래 '이별'을 시간이 지난 후 임영웅이 불렀다.
아아 정말 잘 부르더라. 나의 모친은 마치, 오래전 하늘로 가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듯한 눈빛을 띠며 임영웅의 노래를 들었다. 어떤 미사여구로 임영웅의 목소리를, 노래를 표현하기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임영웅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90세 할머니도 타임머신을 타고 뿅 소녀로 돌아간다. 영웅은 신기한 보물이다. 주위를 선하게 이끄는 마력이 있다, 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쩌려고 티브이 이곳저곳에 먹는 녀석들보다 더 재방이 많이 되고 광고마다 나오고 예능에도 전부 미스터 트롯이야,라고 불만이 있었는데 모친이 이렇게도 좋아한다. 정말 옆에서 보면 소녀가 된 것 같다. 그러면 된 것이다.
패티 김은 젊었을 때의 목소리보다 60세 이후의 목소리가 참 듣기 편하고 좋다. 그건 아무래도 노래에 스토리가 묻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