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225.
해안가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해안가에 데면데면 들어서 있는, 먹을거리를 파는 포장마차나 간이음식점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조깅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동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피규어의 세계가 조밀하게 움직였다가 평온한 척 보이는 풍경은 해무가 무섭게 들어차면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펑하는 굉음 속에서 화염을 뿜으며 끈적이는 촉수가 가득한 암흑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곧 암흑의 한 부분에서 자줏빛 혓바닥이 나오더니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암흑은 박절한 사람들의 상체는 삼키고 하체는 밖으로 버렸다. 핏빛이 사방에 튀었고 오줌을 지리는 남자도, 놀라서 기절을 하는 여자도,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도 암흑의 혓바닥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집어삼키거나 찢어발겼다. 암흑만큼 어두운 현기증이 마동에게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녹아들고 총기의 발화처럼 순식간에 시야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숨이 막혔고 얼음물속에 몸에 담근 것처럼 냉기가 발뒤꿈치를 탔다. 마동은 장군이를 쳐다보았다. 도자기 색으로 가득한 장군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주인이 계단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장군이도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해안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만히 있었다.
“자네는 전혀 땀을 흘리지 않는구먼.” 장군이 주인이 장군이의 목덜미를 만졌다. 장군이는 주인이 좀 더 잘 만질 수 있게 고개를 들어주었다.
“장군이는 훈련을 잘 받은 개이네. 훈련을 잘 받았다지만 장군이 같은 개는 나도 처음 봤네. 이 녀석은 마치 내 마음을 읽고 따라 주는 것 같아. 훈련을 많이 받은 대형 개들도 묶여 있다가 산책을 나서면 흥분하기 마련이네. 한데 장군이는 전혀 그러지 않지. 이 녀석은 집을 잘 지킬 수 있게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왔네. 누군가들, 그러니까 자네는 믿지 못하겠지만 우리 카페를 눈여겨보는 자들이 많지. 그들은 호시탐탐 염탐을 하러 오네. 커피의 종류는 뭘 쓰는지 로스팅은 어떻게 하는지,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그놈들이 손님으로 가장해서 와도 장군이는 알아내지. 굉장한 소리로 짖는다네. 몇 번 짖지 않아도 불온한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도망을 가게 되어있네. 경각심이라는 것을 안겨준다네. 신기한 일이야.”
“자네가 왔을 때 짖지 않았지. 장군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자네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야. 낯선 이들이 카페 뒤로 돌아오면 짖게 마련이거든. 묘한 일이야.” 장군이의 얼굴 가까이 주인이 다가가니 장군이는 혀로 주인의 얼굴을 한 번 핥았다. 장군이의 혀를 보는 순간 암흑의 혓바닥이 잠시 스쳤다.
“인간은 누구나 땀을 흘리지. 땀을 흘리지 않는 인간은 없네.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개들은 땀을 흘리지 않지. 혀로 체온을 조절할 뿐이야. 그런데 장군이는 땀을 흘리네. 인간과 흡사한 땀을 흘린다네. 자 보게.” 주인은 장군이의 배를 만져 보게 했다. 만져보니 축축했다. 땀방울이 배에 가득했다.
“기이하지 않나? 장군이는 마치 사람 같네. 내 개라서 하는 말이 아닐세. 자네는 땀을 전혀 흘리지 않고 장군이는 땀을 흘리고 말이야.”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장군이를 보거나 만져 보려고 장군이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나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들은 장군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군이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지나갔고 장군이와 주인은 늘 있는 일인 듯 그들을 보고 웃었다. 이미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장군이를 아는지 그 큰 그레이트데인을 겁내지도 않고 만지며 장군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장군이의 눈은 아이의 눈빛도 어른의 눈빛도 아니었다. 장군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만 가자고 했고 아이는 장군이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듯 떼를 썼지만 장군이의 주인도 장군이를 데리고 일어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