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19.
그녀를 두고 집에서 나와서 마동은 4시간을 앞만 보며 달렸다. 사람들에게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달려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와버렸다. 처음 와 본 곳까지 달려왔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져도 괜찮은 방법이다.
나의 정체성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어째서 대상적으로 보이는 것인가.
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가슴을 조여왔다. 결국 이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숨을 쉴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까지 달려서 와 버렸다. 안개가 껴 있었고 공허한 곳의 풍경은 마동의 마음속에 갈라진 틈을 더 벌려 놓았다. 틈이 벌어지니 그 속의 침을 흘리는 존재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회백색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희번덕거리는 그 모습을 마동은 보았다. 존재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라서 다시 왔던 길로 4시간을 훌쩍 넘게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와보니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연상의 그녀는 깨끗하게 자신의 물건을 챙겨서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이후로 더 열심히 마동은 달렸다.
소피와 이야기를 하면서 잊어버려야 할 이야기들을 다 쏟아냈다. 액정화면 너머의 소피는 묵묵히 마동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소피에게 마동은 자신에 대해서 물었다. 결국에는 자신이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달렸던 행위가 그녀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다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소피는 안타까워했으며 마동에게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아름다운 풍경의 유럽으로 가면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은 그 도시이기 전에 그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이라고 소피는 말했다. 그 일은 동양의 친구가 그녀에게 한 일도 아니며 ‘설마’라는 복병이 가져온 두려움의 결과뿐이니 동양의 친구는 그 일로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마동은 소피에게 고맙다고 했다.
마동은 지금까지 달렸다.
군대에서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전우를 총기사고로 잃었을 때에도 마동은 연병장을 달렸다. 전우는 마동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총기사고라 하지만 자살을 한 것이 분명했다. 전우는 군대에 적응하기를 동물원의 늙은 호랑이가 새로운 동물원에 적응하는 것만큼 힘들어했다. 새롭게 바뀐 우리, 새로운 먹이, 새로운 환경, 무엇보다 힘없고 늙은 호랑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동자들이 두려웠다. 친절하지 않았고 경멸과 업신여김의 눈동자는 늙은 호랑이의 몸에 구멍을 뚫고 점점 구멍을 크게 확장시킨다. 전우는 마동이 옆에 가면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마동은 옆에서 전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눈을 마주치면서 전우가 하는 말을 듣는다. 전우는 신발을 좋아하는 특이한 친구였다. 신발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누구나 신발을 신어야 하잖아? 어차피 그러니까 발이 놀라지 않는, 무리를 주지 않는 신발을 만들어야 해, 라면서 신발의 유래와 역시 따위의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분명 흥미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우는 자신의 내무반에 들어가고 나면 그곳에서 고립이라고 불리는 세계 속에서 사물과 같은 무심한 이방인들의 눈동자들과 마주했다. 이방인들의 눈동자는 전우를 철저하고 계산적으로 그리고 재미 삼아 따돌림을 시키고 성적으로 열패감을 가져다주었다. 따돌림은 어디에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따돌림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몸에 올라타서 시대를 거듭하면서 대를 물리는 것이다. 은밀하게 매복하고 있다가 아차 싶은 순간에 누군가의 몸에 들러붙어 그 사람을 괴롭혔다. 따돌림은 통증이었다. 증상이 만들어낸 육체의 일부처럼 살은 늘어지고 기름져 축 처진 가슴처럼 기기하고 무심한 불기둥처럼 무릎의 관절이 타오르는 통증.
그것이 따돌림이었다.
시간도 해결해 주지 않으며 어떤 이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것.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