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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06. 2024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


창創. 비롯하다, 시작하다, 다치다

의意. 의미, 뜻

력力. 힘, 일꾼


창의력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서인지, 사실 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번 뜯어봤다.


첫 글자, 에 대해.

한자의 어원을 살펴보니 그 형태가 '칼에 피가 묻어있다, 어떤 원인으로 칼부림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생각보다 살벌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무언가 비롯되려고 시작한다면 기존의 것과 달라야 하고 기존의 것을 다치게 해야 가능하다.

그만큼 새로움을 창출해 낸다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다.

기존의 것을 다치게 할 정도의 변화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인간은 본래 관습을 버리기가 힘든 존재니까.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 창의력으로 세계 2위를 했다고 한다.

무엇을 다치게 했길래 가능한 결과였을까?


<손에 잡히는 경제 플러스(8/18); 서울대 교육학과 신종호 교수>  라디오 인터뷰를 내가 이해한 바대로 보기 좋게 각색한 이야기다.


앨핀 토플러 曰


한국 학생들은 사라질 지식들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사라질 진로 직업을 꿈꾸며 생활하고 있다

기존의 것을 정리하는 건 인공지능이 잘한다. 지금 한국엔 의대가 가장 명망 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의사, 변호사, 회계사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60%가량 본다. 한국은행보고서,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나온 이야기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 유망하다고 꼽긴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생은 20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 미대 세대 평균 기대수명이 142세다.

인생은 40부터 시작이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20년 동안 준비하면 40이 됐을 때 그 사람은 그래도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얻게 될 거다.

우리 아이가 억지로 끌려가는 삶을 살게 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꿈들을 부모님이 찾아주고 같이 만들어가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빌 게이츠 曰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된다. 변화는 기회다

최근에 OECD 피사(Pisa;국가 간 학생 평가 프로그램) 국제 학업성취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창의력 세계 2위를 했다. 전례가 없던 일.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0년부터 우리 교육현장도 참여식 수업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발표, 프로젝트 참여, 독서토론이 그 내용.

1위를 한 싱가포르는 독서와 토론을 초중등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다. 이런 교육의 변화가 좋은 기회가 된 것.


하지만 한 가지 또 주목할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창의력은 62개국 중 2위지만, 자아 효능감은 49위다.

자아효능감은 '앞으로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 학생들은 창의적인 잠재성에 대한 확신이 낮다.


OECD에선 창의력을 '상황 판단, 분석, 문제해결 제시 역량'으로 측정하는데 자아효능감은 '창의적 문제가 주어졌을 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자기 보고식 문항으로 측정한다.


왜 낮을까?

자아효능감을 자신감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볼 때, 자신감은 선천적인 것도 맞다.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자신감이 높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학교 내 평가시스템은 상대평가다. 모두가 다 잘한다고 평가받지 못한다. 결국 누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결정 난다. 외향적인 학생도 상대평가 체제에선 자아효능감이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일론 머스크 曰


내가 실패하는 경험을 하고 있지 않다면
혁신하고자 하는 일을 도전하고 있지 않은 거다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해 부정적 사고를 많이 갖고 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고 부정적이다.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안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새로운 걸 도전할 수 있을까?

못한다.

실패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으면 또 새로운 걸 도전하려는 마음을 갖기 힘들다.


일선 학교에선 창의력 교육이 학부모들의 성화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객관적인 점수평가가 안된다는 이유다. 창의력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데 주관적인 평가가 객관성을 얻으려면 평가를 여러 사람이 하거나, 여러 번 반복해서 지속적 평가를 하면 된다.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출하는 거다.

평가하기 어렵다고 해서, 평가하기 쉬운 단순 지식만 가르쳐선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길게 봐야 한다. 어떤 이론을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정을 배우고 이 이론으로 어떤 결과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배워야 학생들이 진짜 쓸 수 있는 지혜가 된다.


학부모들도 창의적 생각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단순히 많이 외우는 걸로 평가를 잘 받는 게 아이가 사회에 나가 꿈을 실현할 때 도움이 될까?

당장 우리 아이에게 손해가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가 더 많은 기회가 보장되고 발전된 상황 속에서 삶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로 생각의 확장이 필요하다.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말했듯 우리 시대엔 미디어가 넘쳐난다. 그 대가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기회를 빼앗겼다


요즘 시대는 전두엽의 시대가 아닌 후두엽의 시대다.

그만큼 미디어 영상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활성화 돼있다. 문제가 뭘까?

책은 자기가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반면 영상매체는 그냥 누군가 만든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끝난다.

적극적 의미 구성 경험을 하느냐, 수동적으로 남이 만든 의미를 받아들이느냐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창의성은 자기 스스로 생각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힘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무조건 금지할 순 없다.

이미 교육 시스템이 휴대폰을 활용한 의견교환 등에 적용돼 있다.

원칙을 정하는 것,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이 '독서'다.

단순한 독서가 아닌 개방적 마음가짐의 독서.


워런버핏 曰


투자의 비법이요? 책을 읽으세요.
책 속에 사람의 마음이 있고 세상의 흐름이 있으니까 그걸 읽고 판단할 수 있으면 어떻게 투자해야 될지 원칙이 정해집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 자기 생각에 국한돼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밑줄 긋고 끝내는 사람은 독서의 효과가 없다.

1~2권의 책을 갖고는 안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 권의 책을 개방적인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독서가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개인 발명가의 시대는 지났다.

기업, 연구소에서 집단지성을 통한 창의성이 발현되는 세상이다.

결국 혼자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팀 단위의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좋은 친구를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창의성의 시대엔, 3가지가 중요하다.

팀워크, 독서를 통한 자기만의 생가을 키우는 힘, 다양성(개방성).

자라나는 세대뿐 아닌, 함께 살아가는 기성세대에게도 마찬가지다.

학교 졸업 이후에도 끝없는 공부 기회가 주어져야 할 이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시대가 갔을까?

적어도 내가 사는 타임라인의 사회에선 아직 가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다.

부모인 내가 아직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는데  나는 그럼 이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생각, 말, 행동, 습관에 갇힌 사람이다.


하지만 내 아이도 그런 사회에 살길 바라는가 하면, 아니다. 그런 사회에선 언제나 남과 비교하고, 눈치 보고, 불평불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먼저 창의적인 생각, 말, 행동, 습관을 가지려는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창의적인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없을 거다.

아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소망, 꿈을 투영해 이루려 하지 말고 나 스스로 먼저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만난 봉태규 배우가 "남자는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으려고 치마를 입고 싶어 한 아들에게 치마를 줬고, 그 스스로도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 되려고 공식석상에서 치마를 입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기존의 관념과 관행을 다치게 하는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창'을 던질 수 있는 거다.

그래야 진짜 자신만의 '의'가 만들어지고, 함께 창의를 추구할 수 있는 '력'을 기를 수 있다.


우리 아들도 분홍색을 좋아한다. 주변에 그런 남자애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는 남자애들이 태어날 때부터 파란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건 그냥 나의 편견이었다.   


내가 받아온 주입식 교육, 모난 돌이 정 맞는 관습, 그 속에 존재하는 나의 사고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들 창의성 교육이라는 타이틀로 또 엄청난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있다.

당장 4살인 우리 아들을 데리고 지나가면 **펜 선생님들이 "아직 교육 시작 안 하셨어요?"라는 말을 건넨다.

"안 하는데요"라는 나의 말을 들으면 그들은 '아직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엄마시네요'라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꽤나 입시교육의 승자라인에 서있었고, 그 과정을 매우 성실히 임한 1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아이에게 그 교육을 권장해 줄 위치가 아닌가?

아니다. 나는 소위 엘리트 과정을 밟아온 사람으로서 특별히 권장도, 강요도 해주고 싶지 않다.

내가 학생 때만 해도 100세 시대인 줄 몰랐고, 140세 시대인 줄도 방금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결국 나는 미래의 내 아이가 살 시대를 모른다.

우리 부모세대가 살아왔던 원리가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지 않았듯,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기준도 내 아이가 살아갈 시대의 기준에 맞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 그 모든 변화를 부정이 아닌 긍정의 기회로 보는 노력.

그건 학생이 아닌 부모의 몫일지도 모른다. 창의력 교육은 부모에게 먼저 필요하다.  

그들은 이미 그런 세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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