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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방황, 삶의 방향

by 카르멘

힘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데까지


요즘 왼쪽 고관절이 유난히 불편하다.

처음엔 그 부위가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늘 더 깊은 곳에서 이유를 만든다.

외전근, 겉에서 잡아당기는 그 힘이 너무 강해지면
안쪽에서 조용히 버티는 근육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
허벅지 안쪽, 고관절 깊숙한 곳, 발목 안쪽…
정작 ‘중심’을 잡아야 하는 곳들이 소외되는 것처럼.

그래서 결국, 아픈 곳을 만지기 전에

먼저 굳어버린 바깥의 힘을 풀어줘야 한다.
보이는 곳보다, 잘 보이지 않던 곳에 답이 있을 때가 많다.


몸이 알려주는 방향


왼쪽 고관절이 불편하면
왼쪽 좌골 주변, 엉덩이 옆 근육을 먼저 늘려줘야 한다.
머메이드 자세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리는 단순한 동작인데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그만큼 그 부위는 오래, 깊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좌식 생활, 반복되는 패턴, 겉근육 위주의 움직임.
우리는 몸이 편하다고 착각하는 습관 안에서 몸을 조금씩 굳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왜 여기만 불편하지?” 하고 묻게 된다.


뤼디거 달케가 말한 것처럼


뤼디거 달케는 『몸은 알고 있다』에서 “몸의 모든 힘은 양면성을 갖는다”라고 말한다.
한쪽이 과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겉에 드러난 문제’에 마음을 쏟지만
몸은 늘 조용한 반대편에서 신호를 보낸다.
그쪽을 바라보라고, 그곳을 잊지 말라고.


몸처럼, 삶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삶도 같다.

내가 무심코 마시는 라떼 한 잔이
어느새 체지방계를 누르고,

습관처럼 사 마시는 브랜드 커피는

내 자산의 복리를 슬그머니 갉아먹고,

무심코 기대앉는 자세는
내 몸을 천천히 ET로 빚어낸다.

“어차피”, “아니 왜?”
내가 무심결에 뱉은 말버릇은
내 뒤를 따라 걷는 아이의 입에도 이식되고,

잠깐 보려던 쇼츠는
시력과 집중력과 시간을 훔쳐간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는 보이지 않는 순간들의 총합이다.

아픈 고관절이든, 흐트러진 마음이든 그저 드러난 표면만 고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늘 반대편 면을 바라보는 일,
내가 놓치고 있던 힘의 방향을 다시 느끼는 일이다.


몸은, 그리고 삶은 그렇게 균형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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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