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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Jan 17. 2024

사내 임밍아웃에 관하여

ASAP


"저 임신했습니다"


임밍아웃의 최적의 시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확률의 최적시기는, 16주.

유산의 확률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안정기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란, 말 그대로 萬日(모든날) 일어날 수 있는 일.


때문에 내가 추천하는 최적의 시기는, ASAP.


나는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에서 '재택근무 수요조사'로 인해 임밍아웃 당했지만,

돌이켜보면 차라리 잘됐다 싶기에.

임신을 의학적으로 확인했다면, 일하는 직장상사에게 말하는 걸 추천한다.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건 나와 내아이니까.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

5월 결혼을 앞둔 나는, 3월 신혼여행지로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를 예약해놨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중이라는 뉴스가 전국방방곡곡 퍼졌고

수수료도 받지 않을테니 취소가 가능하다는 여행사의 연락으로 신혼여행은 취소됐다.


5월이 됐고, 여전히 코로나는 여기저기서 매일같이 터져나왔지만

마스크 쓴 하객들을 모시고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다.


당시 우리회사는 1층 입구에서 직원들이 열화상 체크 업무를 순번제로 하는 중이었는데

7월 첫주 금요일 10시는 내 순번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전날밤,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고 싶어졌고 해본 결과는 두줄.

너무나도 순식간에 선명한 두줄이 나왔다.


불안해진 나는, 우선 출근을 했다가 1시간 시간제휴가를 쓰고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아기집 보이시죠? 5주 정도 됐네요"


"네?임신이에요?"


"네, 아기집이 있잖아요"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임신부가 됐다.


돌아와 열화상 근무를 서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코로나가 한창인데, 임신부가 이렇게 열화상 근무를 서도 되는것인가?

코로나에 감염되면 어떡해? 백신도 못맞는데..


별거 아니었던 사소한 업무가, 갑자기 나와 아이의 신변을 위협하는 엄중한 일로 느껴졌다.

물론 그이후에도 나는 순번을 섰지만..


그렇게 나는 임신을 안 다음날부터 입덧에 시달렸고

하루 온종일 숙취에 시달리는 기분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두통도 심해서 임신 후 정기검진 때마다 살이 빠져 담당 주치의 선생님에게 한소리 들었고,

결국 입덧약을 먹게 됐다.

(참고로, 입덧약? 먹어도 된다. 태아와 산모에게 무해하므로 의사선생님이 처방해준다)


'회사에 말해야 하나? 말하고 양해를 구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비임신부였을 때 임신부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이기적인 천둥벌거숭이였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무기로 쓰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다.


조금더 임밍아웃을 망설인 이유는.. 

당시 팀내 여자직원 중 임신 및 출산 경험자가 없었다.

우리삶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가 '경험'인데 특히나 임신과  출산처럼 전생애를 통틀어 신체가 뒤바뀌는 경험은 더하다.

(그래서 임신을 하게 되면, 온세상 임신부가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중 공지가 떴다.


코로나 확산에 따라 임신부는 재택근무 권고.

따라서 팀내 임신한 직원이 있는 지 확인 바람.


7월초 임신 5주였으니, 공지가 뜬 8월쯤은 채 12주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소위 말하는 안정기가 아직 안됐었다.


그러나 임신 했는데, 안했다고 할수도 없고

솔직히 매일 구역질을 참아가며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는 것보단 재택근무가 나았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 특별복무방침에 따라 임밍아웃 했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 규정에 보장돼있는 보건휴가를 찾아봤고,

월1회 정기검진을 특별휴가로 받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몰랐던건 임신부에게 야근을 시킬수 없다는 것인데,

임신 7개월쯤 장거리  출장 지역에서 의원님들을 모시고 사무감사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대략 저녁8시쯤 일이 끝났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회사로 돌아왔고 초과근무신청을 올렸다.


그런데 한달 뒤 인사팀에선

임신부는 초과근무를 할수 없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주게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수 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팀원이나 팀장님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크게 억울할 것 까진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만에 하나(임신이후부턴 만에 하나가 매일 매일의 가정이 된다) 무슨일이 있었으면

그 누구도 책임져 줄수 없는 상황이고, 법을 모른 무지하고 경솔한 내탓만 할뻔 했다.

그러니 임신을 하면 법과 사내규정 등에 빠삭 해야한다.


당시 나는 임당 직전의 임신부라 밥도 현미100%만 먹고, 인스턴트 등을 먹지 않았는데

그날 점심은 편의점에서 컵밥을 먹었고 저녁은 근처 부대찌개 집을 갔었다.

썩 내키는 선택지들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일상의 사소한 선택지에서 임신부는 사회적 약자의 '배려'가 필요한 대상이다.


물론 나는, 혹은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약자'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대등하고, 동등한 대우를 바랄뿐 여자라서 약자로 배려받는 현실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임신은 여성만이 할수 있는 영역이고, 내몸 속에 생명체가 잉태돼 있는 한 세상 모두는 나에게 가해자가 될수 있는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소리 하기, 괜히 눈치 보면서?


하기싫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하지만, 해도 된다. 아니 해야한다.


만약 이글을 읽는 누군가 임밍아웃을 고민한다면,


말하라.


당당하게.


나 임신부니까, 배려하라고!


권리를 찾고, 배려를 요구하는 순간, 약자는 강자가 된다.   


(그리고, 출산 이후부터는 이런 선택은 필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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