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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Feb 07. 2024

갑을병정 중 '정'이 되는 일에 관하여

복직 이후 라이프


복직 이후는 선택 싸움이다.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특별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날이 있다면, 운수좋은 날.


만약 엄마가 풀타임 근로자(주40시간)로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조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환경이라면  3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01. 아이도 엄마도 풀타임 스케줄


첫번째 방법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통합반~연장반까지 다니게 하는 것.

우리 아이 어린이집(시립) 기준으로, 정규반은 오전9시~오후 4시이고

통합반은 오전 7시반~9시, 연장반은 오후 4~7시반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풀타임으로 보낸다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전7시반~저녁7시반까지 있는셈.

(근데 보통은 오전7시반부터 오거나, 저녁7시반까지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물론 조건이 있다.

아이의 어린이집이 통합반과 연장반을 의무적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어야 한다.

어린이집은 크게 시립, 가정 어린이집이 있는데  가정어린이집의 경우 연장반의 운영이 활성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오전 7시반~저녁7시반이라는 최대 운영시간이어도

엄마의 출퇴근 시간이 30분 이상 걸린다면 등원과 하원을 엄마가 다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도 엄마도 죽어나는 스케줄이다.


나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를 오전8시~오후5시까지 통합반(오전)과 연장반(오후) 모두 보내고 직접 등하원도 해봤는데 ..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참, 몸도 마음도 되다.


02. 삼대 덕을 쌓아야 구하는 이모님


두번째 방법은, 등하원 도우미선생님 구하기.


아이를 어린이집 기본 종일반(9~4시)에 보내고, 전후 타임을 맡아줄 이모님을 구하는 거다.

아이의 간식을 간단히 챙겨주고, 놀아주고, 등하원을 시켜주는 일을 해준다.

엄마가 어떻게 도우미선생님과 계약을 맺느냐에 따라 내용에 차이는 있겠지만, 시급은 평균 13000원 정도.


도우미선생님을 구할 때는 세가지 통로가 있는데

하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 서비스에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연락이 안온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어서 도우미선생님의 간택을 받아야 하는 구조이므로.  

대신, 시급이 저렴하고 정부에서 도우미 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구하기 어렵고 나같은 경우 첫 3달이 운좋게 구해졌는데  이유도 없이 그만두셨다.

때문에 정부지원도우미라고 무조건 추천하긴 어렵다.


두번째 방법은 '시터맘' 처럼 사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

이용권을 구매하면 한달~세달 정도 도우미들의 이력서를 보고 채팅을 하고 면접을 볼수 있다.

풀pool이 넓기 때문에 면접을 보기 쉬운데 공들여 면접을 보다보면 좋은 시터를 구할수 있다.

나는 두번째 도우미 선생님을 여기서 구했는데, 어린이집 교사 출신의 선생님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물론 내가 시세(?)보다 시급을 높게  책정한 덕분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5개월만에 몸이 안좋아지셔서 그만두셨다.


마지막 방법은 '맘카페'나 '맘톡방' 등으로 구하는 방법이다.

도우미선생님은 가장 근거리에 사는 분을 구하는게 좋기 때문에,

거주지역의 맘카페나 아파트 단지내 맘톡방 등을 통해 구할수 있다면 좋다.

이동거리가 짧을수록 도우미선생님도 엄마도 심리적 부담감을 줄일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방법으로 세번째 도우미선생님의 면접을 최근 봤는데, 아직 근무가 시작되진 않은 상황이라 후기는 향후에 올리겠다.  


03. 입사 이래 자발적 연봉 삭감(단축근무)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사 14년 만에 나는 '자발적' 연봉 삭감을 선택하게 됐다.  


1번 방법은 내출퇴근 거리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아무리생각해도 2~3살 짜리를 12시간 어린이집에 맡길수가 없어서 포기 했다.

2번 방법은 도우미선생님이 그만두는 두번의 실패 끝에 세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으며,

2번의 방법이 두번 실패 했기 때문에 현재 3번 방법을 실행중이다.

 

'육아기 단축근무'라는 선택지를 고르게 되면, 두가지 요인이 내 직장생활에 변수로 작용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근무시간을 줄임으로써 근무에 대한 대가, 월급이 준다.

나의 단축근무 시간과 산식에 따라 금액이 주는데, 일정 부분은 정부가 보전해준다.

나는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게 됐다. 2~3시간 근무시간을 줄였다.


그러면 월급이 얼마나 줄까.

연봉에 따라 차이는 생기겠지만, 내경우 약 80~100만원 정도 월급이 삭감됐다.

'헉' 소리나는거, 맞다.


육아기 단축근무에 대한 정부지원은 '후불제'인데 회사가 육아기단축근무 확인서를 고용보험 사이트에 등록하면, 매달 초에 지난달 급여에 대한 보전금을 내가 월마다 신청한다.

이과정이 사실 좀 번거로운데, 회사에서 확인서를 등록해놔야 내가 신청이 가능하고

(가끔 이게 누락되는 경우가 있는데 다시금 '확인서 좀...'하고 회사에 말해야 하는 과정은 누구나 상상하다시피 썩 유쾌하지 않다)

육아기 단축근무 기간마다 내가 받은 급여명세서 등을 증빙으로 첨부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보름쯤 지나서 내가 입력한 계좌로 약간의 정부보전금이 들어온다.


두번째 변수는 무형의 눈치싸움이다.

월급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 삭감이라면, 회사내 눈치싸움은 무형의 정신적 삭감이다.


"~과장은 맨날 칼퇴하나봐"

"우리팀 보고는 5시쯤인데, ~과장은 참석할수 있나?"

"다음주 회의는 오전9시 파주인데, 올수 있겠나?"

"회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단축후 내 근무시간은 오전9시30분~오후4시30분이다.


나는 칼퇴가 아니라 '정퇴(정시퇴근)'을 하는데, 법적으로 단축근무 노동자에게 연장근무를 시킬수 없게 돼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퇴근하지만 어린이집으로 출근하러 가기 때문에 1분1초가 아깝다. (아이가 상사보다 무섭다)


만약, 퇴근 시간 이후 회의가 잡히면 나는 가능한 시간이라면 어린이집에 미리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고(어린이집은 연장반일 경우 고용부에 신고하게 돼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회의에 참석할 것이고

만약 내가 핸들링 가능한 시간이 아니면 그냥 말한다. "참석 못합니다"


만약 내가 오전9시 회의에 참석하려면, 남편이 늦출-늦퇴를 사전에 회사 상사에 보고하는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할수는 있다. 미리 예고만 되면.


회식? 그냥 패스다.

회식과 아이를 저울에 올려놓으면 그냥 바로 답이 나오므로.

(물론 나는 가끔 회식을 정말 하고싶다)


이란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정신적 피로도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해야하는 거다.


"제가 단축근무 중인데, 제가 이일을 그시간에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냐면..."


나는 내급여를 삭감한 선택에 따른 정당한 근무중이지만, 저런상황 속에서 나는 부당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일들에는 "내가 뭐? 누가 나보고 뭐라그래?" 하는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남들과 다른선택에 따른 스트레스는 어쩔수 없이 받지만, 타인의 눈치만 볼 필요는 없다.

눈치도 여유있는자들의 사치라고 생각하자. 


아무튼간에 이 세가지 방법을 다 써본 사람으로서 소회(?)를 밝히자면,

'내입맛에 맞는 선택은 애초에 없다' 는 점이다.


이점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수용해야 육아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갈수 있다.


나처럼 선택장애가 없던 사람도 육아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면 선택장애가 생긴다.


모든 옵션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겪는걸 남들과 똑같이 '직장을 다니면서' 하기 때문에.


가끔 이모님과 아이가 함께 있는 집의 cctv를 휴대폰으로 보면서,

이모님 구하는 사이트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고용보험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접속하면서,

회사상사와 동료 눈치,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 눈치를 보면서.


내가 갑을병정중 '정'이 된 기분이 들 수 있다.

사실상 아쉬운 포지션은 나니까, 맞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으로 살아온 약 1년의 시간동안 나는 꽤나 단단해졌다.

그리고 지금 내 선택에 나름 만족한다.

비록 유한하더라도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병행 가능한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육아도,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관련 회사 규정이나 정부 법률에 대해서도 꽤나 빠삭하게 알게 됐다.


또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쓴다.  


비록 복직 후 1년의 시간동안 나 잘난맛에 살았던 '갑'에서 여기저기 눈치보는 '정'으로 신분은 하락?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바를 포기했는가?

아니다. 결국은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갑'인 셈이다.


결국은 다 지나간다.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면 내가 넘긴 고비가 내가 비빌 언덕이 돼 있을 거다.

좌절의 순간마다 머리아프게 고민한 선택장애의 내가,

웬만한 좌절엔 내공이 생긴 회복탄력성 고수가 돼있을 거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육아하는 직장인들, 포기하지 말기를.

그 어떤 선택지에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내가 남들 눈에 을이든 병이든 정이든간에 상관없이.

나는 결국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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