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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Feb 21. 2024

퇴근의 태도

칼퇴와 정퇴 사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vs.

소중한 나의 일터니까 


출근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무엇일까. 


나는 중간즈음에 있는 듯 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매일 아무 생각없이 출근하는 건 맞지만, 

이때 생각없이 출근한다는 건 습관화 되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에, 한다는거지. 

억지로 끌려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내가 연금복권에 당첨돼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반면 왜 백프로 억지로는 아니냐면, 

내마음의 주인은 나라서. 


어짜피 해야하는 출근, 어짜피 일은 해야하는 거니까, 

실제로 전업주부를 할 마음도 적성도 없으니까, 

나는 나의 사회적 자아를 위해,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서의 나름의 프라이드를 갖고 출근한다. 


지금의 내상황을 100%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마음은 99% 정도는 내가 만들수 있으므로. 


이렇듯 나뿐 아닌 많은 일하는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태도'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반면, 퇴근의 태도는 어떨까. 

스스로 퇴근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을까.


나는 입사 이래 가급적, 그러니까 야근을 꼭해야 하는 자의적/타의적 상황이 아니라면, 정시퇴근을 지향해왔다. 


나는 거의 '정시퇴근하는 인간'이다. 

아니, 얼마전까진 '칼퇴하는 인간'이었다. 

최근엔 조금더 배운 노동자로서 칼퇴가 아닌 정시퇴근이 바른용어임을 배우고, 사용한다. 


내가 이 정퇴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한가지는 아이를 낳기전의 내마음에서 기인됐는데, 

우리회사의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해서다. 

연봉, 자아성취, 워라밸 정도가 근로환경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우리회사는 연봉, 자아성취는 크게 얻을 수 없고 워라밸은 노력하면 지킬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회사는 공기업이고, 초봉은 두눈을 의심할만큼 낮았다. 

물론 윗분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 하지만. 

아무튼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받는 월급이 내가 과외 3건만 해도 될만큼의 액수였다. 

그마저도 신입 때는 직급이 낮은만큼 시간외 근무를 월 45시간씩 해야 그나마 '월급'이라 포장할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외 근무 45시간을 했고, 그 시간만으로도 야근은 충분했다. 


그러다 점차 이 시간외 근무의 '가치'가 퇴색되기 시작했고, 

현실적으로도 현재는 월 최대 4시간만에 대해서만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회사가 매일 야근을 할만큼 일이 많다거나(물론 그런 때도 있지만)

매일 야근을 한만큼 성과가 오르고(애초에 이런 설정이 말이 안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면 나는 다른 루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맡은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걸 택했고, 역량 덕분인지 운 덕분인지 정시퇴근을 지향하는 사회생활 속에서 크게 승진이나 평가에서 부정적 피드백을 받지 않았다.  


물론 윗분들의 입장에서 거의 매일 정시퇴근 하는 직원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일, 인지상정이므로. 

그리고 회사는 인지상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공간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 인지상정으로 손해보는 유무형의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걸어왔다. 

정퇴의 길을. 

그리고 내가 입사15년이 된 후 느낀건, 아무도 당신의 퇴근시간을 기록해두지 않는다는 거다. 

지문인식기를 제외하고는. 


두번째로 내가 정시퇴근을 1초의 고민도 없이 하게 된 건,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면서부터다. 

정규근무인 일8시간도 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단축근무를 신청하는건데

정시퇴근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건 내 머릿속의 논리고,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6시도 아닌 4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나의 뒷모습이 마냥 고와보이지 않을수 있다. 

얼마전 돌고돌아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러나 이마저도 내가 직접 들은건 아니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보통 이런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그런말을 '했다'는 사람들과 비슷한 류의 사람이다)


물론 나는 이전 글에도 말했듯, "그사람 앞으로는 제앞에서 말하라고 꼬~옥 전해주세요" 응했지만. 


그리고 우리팀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팀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자 온갖 뒷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팀이 일한거에 비해 평가를 후하게 받았네" 

"직원들이 칼퇴하는 거 같은데 널널한거 아닌가" 등등 


'칼퇴'라는 말은 '칼같이 퇴근함'을 의미하고, 

'정퇴'라는 말은 '정시에 퇴근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칼같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라는 묘사가 들어가 있는 감정적 단어이지만

정시에-는 말 그대로 정시. 객관적 정보만을 갖고 있는 단어다. 

왜 윗직급의 사람보다 아랫직급의 사람이 칼퇴보다 정퇴라는 말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8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게 당연한 탄력근무를 하는데도, 

6시 퇴근하는 팀장과 다른 팀원들 눈치를 매일 본다는 회사동료에게 한 말이 있다. 


"눈치도 사치야. 1분이든 5분이든, 내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자의 사치" 


좀 매정하게 말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하는 일 없이 누군가의 눈치만 보며 보내야 하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시간을 통해 내마음이 편하다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고 있다해도 사실 그러고 싶은 맘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누구나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니까.

하지만 누구나 출근하므로, 출근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봄이 좋듯이 

누구나 퇴근하므로, 퇴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최근 매일 야근이 습관이 된거 같다는 후배에게 꼭 해주고싶은 말이 있다.

(그녀의 말대로, 야근은 무의식적인 습관이 맞다)


"일어나고, 눈뜨면 출근하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냥 가는거죠 회사로.

근데 왜 퇴근은 안그래요? 시간되고, 컴퓨터 끄면 퇴근하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냥 가는거에요 집으로."


그냥 컴퓨터를 끄고, "내일 뵙겠습니다" 또렷이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길 바란다. 


오늘도, 모두의 정시퇴근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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