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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Jan 24. 2024

'임산부가 타고있어요'

임신한 직장인의 출퇴근에 관하여


안전 띠 하나, 달린 목숨 둘.


내게는 심장이 두개이니까, 안전띠도 두개는 매야 할 거 같은 출근길.


그런데 내가 안전띠를 아무리 단디 맨다 한들, 다른 운전자들이 내가 임신부인지 아닌지 알길은 없다.

그래서 나는 '임산부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를 사서 붙였다.


그결과, 나의 체감상은. ..

'초보운전입니다' 스티커 보다는 효과가 좋았다.


보통 '초보운전'이라고 하면 심보 나쁜 운전자에겐 먹잇감이 되어 끼어들기를 당하는 경험을 하기 일쑤인데

이보단 생명의 엄중함을 아는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기에 '임산부가 타고있어요'가 실효성이 높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사고가 날경우 골치 아파질테니...


나의 경우 임신 전 나의 컨디션이 운전에 영향을 주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임신을 한  호르몬의 노예 운전이 시작된다.


일단 속이 안좋다.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지만, 임신한 운전자는 멀미를 한다.

입덧이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운전중 갑자기 올라오는 메스꺼움에 '욱'하는 소리를 내기를 여러번,

남들이야 모르겠지만, 근 50분거리를 운전하는 나는 죽을맛.


그래서 퇴근길에는 회사 매점에 들려 목캔디나 새콤달콤 레몬맛을 상시 구비했다.


그래서 나의 드라이브 친구는 새콤달콤 레몬맛.

일단 씹는다.

상큼한 걸 질겅질겅 씹으면서 운전하면 욱 하고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잠시나마 누를수 있다.


그나마 운전은 낫다.


문제는 주차다.


주차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차 공간의 문제.

(참고로 나는 주차를 잘한다. 서울시내 빌딩  주차관리 아저씨도 나의 주차실력을 보고 엄지척)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주차장은 공간이 협소하다.

차간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한데

배가 나온 임신부가 주차 후 몸을 구겨서 나와야 한다면 이건 합당한 공간일까?


출퇴근하는 임신부는 몸을 구겨나오는 경험을 매일 한다.


우리회사에는 임신부를 위한 주차공간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들어보니 남편 회사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데, 임신부들은 따로 인식할수 있도록 사원증에 표시를 한다고 한다.

그러니 버스를 타서 좌석을 앉거나 버스에서 내리거나 할때 위험한 일이 가급적 일어나지 않도록 존중받을 수 있다.


최소한의 인프라다.


임신부는 소수다.

아마 미래에는 더더더 소수가 될 것이다.


다수가 겪어보지 못하는 경험을 10달에 걸쳐 한다.


그러나 운전과 주차구획 같은 시스템은 여전히 다수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


만삭의 임신부가 자리에 앉아서 안전띠를 메고 운전할 때 느끼는 불편함,

주차 후 문을 열고 나올 때 느끼는 불편함,

급히 끼어드는 비매너 차들,  성난 경적소리에 배가 뭉치는 불편함 등.


이 불편함은 나만이 안다.

혹은 나와 같은 임신부만이 알고, 출퇴근을 매일 하는 임신부만이 안다.

나는 이불편함이 임신부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문제니까.

출퇴근 하겠다는 것도 내 의지, 차를 운전하겠다는 것도 내 선택이니까.


하지만 지나고보니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직장인들의 출퇴근은 필연적 선택이고,

대중교통이 힘든 경우 자동차 운전도 필연적 선택이지만,

똑같은 선택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신하기 전과 후의 불편함이 다르다면 그건 임신부에 대한 차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주차공간이나 운전문화가 조건에 상관없이 사람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면 불필요한 논의일텐데.


모두가 임신부가 되진 않지만,

누구나 언제든지 우리사회의 약자나 소수가 될 수 있기에.


비좁은 공간, 비좁은 마음에서 기인한 수많은 불편함들이 곧 나의 불편함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당장에 나부터 이글을 쓰기 전까지 또다시 잊었던 불편함들이다.

더이상 내 일이 아니기에 잊은 불편함.

 

이글을 쓰며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임신부등 누군가의 불편함이 당연한 관습처럼 여겨지지 않기를.


다음세대에게 '우리때는 더했어, 원래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 정말 멋없고, 무책임한 기성세대가 되지 않기를.


그런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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