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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Jan 30. 2024

꼿꼿한 할머니가 되고싶어요

허리펴고 늙자



최근 제가 하는 루틴 중 하나가 '익숙한 루틴 깨기'입니다.


예를 들어 출퇴근길에 정서적 주파수가 맞아서 편하게 듣던 라디오를 끄고,

여전히 향수에 젖은 채 듣던 90년대 가요음악을 끕니다.

그리고 경제나 시사 등을 다루는 라디오 어플(오디오클립)을 듣습니다.


듣다보니 쓰지 않은 뇌를 자극하는 이야기 들이 많은데, 기억나는 한가지를 꼽자면

‘노년’에 대한 이야깁니다.  


우리나라는 70대 인구가 이미 20대 인구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령인구에 대한 혐오와 반감도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누구도 늙고 싶지는 않다'는 진실 때문일까요?


사회자가 '어떤 할머니가 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우선 저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싶다‘를 처음부터 꿈꾸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몸은 70대여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란 말처럼,

나는 그냥 나이고, 그저 세월의 흔적이 나를 스쳐지나갔을 뿐인데.


저는 그저 '어제의 나보다 한 뼘 성장한 나'이길 바랄뿐

어제의 나보다 한 뼘 성장한 '할머니'이길 바라진 않는데요.


하지만 한 가지, 필연적인 늙음이 있다면 그건 신체의 늙음일 것입니다.


제가 운동루틴만큼은 최대한 깨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필라테스 학원에 가면 주인공은 당연히도 '몸'입니다.

그 사람의 직업, 나이, 기혼여부, 자녀여부, 소득 등등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내 눈에, 타인의 눈에, 그리고 거울에 보이는 건 각자의 몸뚱이뿐입니다.


레깅스를 입으면 엉덩이가 쳐졌는지 퍼졌는지 여실히 보이고,

무릎 사이가 벌어졌는지, 모여졌는지 다리의 형태가 드러납니다.


붙는 상의를 입으면 뱃살이 몇 겹 접히는지, 얼마나 평수를 늘려왔는지 보입니다.

말린 어깨, 구부정한 등, 튀어나온 거북목, 힘없는 팔의 부들거림 등등이 빠짐없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운동을 하지 않는 거라고도 합니다.

아직 준비가 돼있지 않아서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운동을 하게 만드는 동기이자,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제가 가는 필라테스 점심시간은 주부들이 많습니다.

아니, 30대~50대의 여성들이 많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을 보면 살아온 삶도 대략 보입니다.


대부분은 운동을 이제 처음 시작했고,

때문에 근력보단 지방이 몸의 주요 성분을 차지하며,

구부정한 등과 불룩 나온 뱃살이 앞뒤로 함께 하는 몸이거나

반대로 시쳇말로 '맥아리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뼈만 앙상한 몸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 그간의 삶이 얼마나 불균형 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몸보다는 회사나 가정이 삶의 중심이었을 테고

나보다는 부모로서의 삶 혹은 누군가의 보호자로서의 삶을 앞세워 살아왔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젊음이 마르지 않는 샘물인 것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 기회로든 자신의 몸을 마주한 이들은 행운입니다.

60대, 70대가 될 때까지 자신의 몸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까요?


100세에서 130세까지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구부정한 허리, 채 펴지지 않는 어깨로 남은 삶을 직립보행 할 수 있을까요?

그로 인한 모든 질병과 대사통증들을 삶의 당연한 무게로 짊어질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몸은 어제 당신이 한 일의 결과라는 뼈아픈 말들이 있습니다.


저는, 연예인처럼 군살 하나 없고 주름 하나 없는 몸은 아니더라도

구부러진 척추와 경추 사이 마구잡이로 붙은 살들에 노년을 보장 잡히긴 싫습니다.


혹은 뼈밖에 없는 앙상한 몸으로 누군가 미필적 고의로 저를 치고 지나갈 때,

픽- 쓰러지는 자율성을 잃은 몸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쓰다보니 '어떤 할머니가 되면 좋을까요?' 물었던 사회자의 질문에 답을 찾았습니다.


저는 ‘꼬부랑 할머니’ 말고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힘들 것임을 압니다.

누군들, 구부정 하고싶어서 구부정 하겠습니까.

폐경, 척추의 노화 등 여성의 삶은 50대 이후 또 큰 시련을 겪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호르몬 변화도 수십년, 임신과 출산으로 지구가 거꾸로 돌만큼의 큰 변화까지.. 여성의 신체가 겪는 시련은 가혹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50~60년을 더 사는 건 너무 큰 재앙이니까.

적어도 내몸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내 팔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떨지 않고 뻗을 자유

내 다리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곡소리 안내고 뻗을 자유


그 자유가 60대에도 70대에도 제게 있다면, 저는 적어도 불행하진 않은 할머니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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