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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븐 Jun 17. 2024

인류 최대의 사기

당신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가?

이 글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역사상 최대의 사기'와 '피라미드 건설하기' 파트를 읽고 저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농업 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 일컫는다. 수렵 채집을 통해서 적은 노동으로 양질의 영양소를 섭취하며, 여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갔던 때에 비해 농업 혁명은 인류가 더 열악한 식사와 영양 섭취, 극심한 노동, 수많은 질병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농업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이 확대되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인구 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결국 인류는 더 많은 농사일을 해야 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농업 혁명의 핵심은 극소수의 엘리트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열약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90%가 농부로서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등을 먹여 살렸다. 역사란 결국 대부분의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나머지 극소수의 사람이 이뤄온 것들이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인류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농부로서 수많은 착취를 당하며 희생을 떠안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상상 속의 질서' 즉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신화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농업 혁명 덕분에 더욱 큰 규모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자, 엘리트 계층은 신, 국가, 회사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사회적 결속을 위한 필수의 조치였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수많은 곳에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 국가, 회사, 정치, 법 등 실제가 아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 인류는 '상상 속의 질서'를 통해서 역사가 지속되고 반복되어 왔다.



상상 속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이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질서는 위대한 신과 자연 섭리에 의해서 창조된 것으로 실제 존재한다고 늘 주장해야 한다. 또는 사람들의 사상에 이러한 규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킴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지상주의에 노출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주입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살기를 꿈꾸며, 더 좋은 차, 해외여행과 호캉스와 같이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고대의 농부처럼 끊임없이 노동을 하며 자기 자신을 희생시킨다.



자본주의, 국가, 회사, 법과 같은 '상상 속의 질서'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는 과연 극소수의 엘리트를 위해서 희생했던 고대 농부와 무엇이 다른가? 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추구하게 되었는가? 왜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희생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되는 이 시대는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들이다.








상상 속의 질서는 필연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로 뭉칠 수 없다. 우리가 정한 원칙과 사상, 신화를 통해서 여기까지 발전해 왔듯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상 속의 질서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이다.



유발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더욱 강력한 상상의 질서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상상의 질서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나는 우리 모두가 높은 수준의 교육을 추구하여 집단지성을 갖춘다면 충분히 강력한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받은 교육은 우리가 더 나은 질서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경쟁하며 더 좋은 대학, 직장,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주입시킨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며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본업을 하면서도 부업을 한다. 그렇게 자신이 왜 그런 것들을 추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엔 만족이 없다. 결국 비교와 함께 불행으로 이어진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노벨상 수상자의 20%,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25%, 미국 100대 기업 중 40% 소유가 유대인이다. 압도적인 결과를 내는 유대인은 사교육에 열중하지 않는다. 이들은 독서와 글쓰기, 토론을 통한 사고력의 성장에 집중하며, 좋아하는 일을 찾고 거기서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니 오직 돈을 위해서 경쟁하는 대다수는 꿈도 못 꾸는 압도적인 성과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힘인 사고력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압도적인 사고력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무엇이 올바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나에겐 무엇이 올바른가? 노동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는가? 무엇을 위한 희생이 올바른 것인가?



뛰어난 사고방식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더 강력한 질서를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압도적인 사고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가 집단지성을 통해 더욱 훌륭한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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