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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H Nov 01. 2020

기억에 남는 수업들

유아교육과 수업 첫날의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의 성격이 강한 시간이었다. 강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으로 배우는가’를 주제로 하는 간단한 테스트를 하는 시간이었다. 테스트 결과로 각자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효율적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각적 점수가 월등했고 소근육 운동에도 조금 높은 점수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시각적 효과가 주어지면 쉽게 배우고 거기에 쓰는 것을 더해서 소근육 운동을 하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각을 통해 배우는 사람들은 같은 데이터라도 그래프를 보면 더 빨리 이해를 하고,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나는 책을 보더라도 책 내용을 그래프를 만들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이해가 쉽고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줄 알았었는데, 바로 내 옆에 앉아있던 일본 학생은 예상외로 청각적 자극으로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책을 보더라도 누군가 읽어주거나 소리 내어서 읽을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기에 특별히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스스로 말을 해야만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수업시간에도 떠들어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그 시간의 강사 선생님께서 설명하셨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떠든다고 혼났던 이야기를 쏟아내며 늘 자신은 시끄러운 학생으로 낙인찍혀서 학교생활이 괴로웠다고 억울해했다. 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그렇게 떠들었던 것은 나름 배우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교실에 너무나 다양한 학생들이 있고 그들이 배우는 경로가 다 다르다니 이들을 함께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어린이들의 교육은 어른의 경우와 또 다를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개성이 둥글어지는 경우가 많겠지만, 어린이들의 경우는 개개인의 성향을 더 고려하고 그들이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시간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러니 유치원 교사는 얼마나 정신없이 바쁠 것인지 짐작이 갈 일이다. 


이런 조사가 아니더라도 호주의 학생들은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수업시간에 아주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수업시간에 질문도 많고 선생님들의 질문에 알든 알지 못하든 자신의 생각을 많이 말한다.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질문과 상관없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수업을 방해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반 학생 대부분의 생각과 전혀 다르고 엉뚱한 생각을 말할 때도 주저함이 없다. 비난을 받지 않을까 싶은 예민한 문제도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말에 비난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한 모습으로 다가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광경이 나는 어색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러운 광경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야교육과정의 많은 과목들이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린이의 발달 과정을 이론으로 배우고, 각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 방법은 연구 사례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같이 공부하고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놀이’라는 과목에서는 다양한 놀이에 대해 배운다. 나는 호주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어서 어린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는지를 알지 못했는데 제법 많은 놀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어린이들을 관찰한 시나리오를 읽어 그 시나리오에 나오는 각 어린이들의 흥미를 증진시킬 수 있는 좋은 놀이 방법을 모색하고, 각자가 생각해낸 좋은 놀이를 서로 평가하고 토론하기도 했다. 아동들을 위한 음악, 미술과정은 우리가 스스로 노래도 부르고, 그리고, 만지고,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식이었다. 


한 학기가 끝날 즈음 음악 시간 과제로 각 연령별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음악을 선정해서 발표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발표 시간에는 그 노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이에게 가르치기도 해야 했다. 나는 취학 바로 전 만 4세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로 ‘꼬부랑 할머니’를 선택했다. 이유는 다양한 문화를 소개할 수 있고, ‘꼬부랑’이라는 단어가 꼬부랑스러운 리듬에 얹혀 계속 반복되어 따라 부르기 쉽고, 또한 꼬부랑이라는 의태어에 대한 설명도 곁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도 하루 종일 꼬부랑거리고 다닐 정도였다. 꼬부랑이라는 단어는 구부러진 곳에는 다 쓸 수 있다고 했더니 지나가다 구부러진 나무를 보고도 꼬부랑하면서 다니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그리고 매 시간마다 어린이와 같이 일할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여러 상황이나 어린이 교육에 대한 질문지를 받았고, 그 질문에 대해 같이 토론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답을 써내야 했었다. 질문은 실제 일어났거나 또는 가상의 시나리오 형식으로 주어졌다. 아동보호에 관련된 사건, 현장에서 발생할 수도 있을 아동들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대한 시나리오, 그리고 한 아동을 관찰한 관찰 일지 등이 시나리오의 내용이었다. 대부분 누구누구는 몇 살인데 이러한 일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동들의 관찰 일지의 경우 관찰된 아동이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흥미를 지속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토론해야 했다. 


시나리오가 주어지고 그 시나리오의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을 말하고 서로 토론하는 수업은 모든 과목에서 행해졌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법은 조금씩 달라도 기본적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열심히 관찰하고, 무슨 문제가 감지되었을 때는 침착하고, 듣는 귀를 열고, 아이들의 문제일 경우 아이들의 눈과 연령에 맞게 행동하고, 그리고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야 했다. 


그런 훈련을 일 년쯤 한 후에도 또 다른 시나리오가 매일 나오고 매일 뭔가를 토론하거나 써야 할 때 서서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다 아는 이야기다’, ‘또 이걸 써?’ 등등의 불평이었다. 하지만 그냥 손으로 긁적거리거나 가상의 현실에 대해 토론하는 정도로만 여겼던 이런 훈련은 놀랍게도 현장에서 일하는 중에 아무런 준비 없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와서 나 자신을 놀라게 했다. 그 많은 시나리오가 실제 내가 겪은 일처럼 여겨졌고, 온갖 경험을 다 한 교사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학에 대해서도 한 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어린이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에 대한 이야기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방부제나 음식의 화학 색소에 대한 연구들에 대해서 숙지하였을 뿐 아니라 음식물 알레르기에 대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또한 어린이들의 일주일 메뉴를 짜고 개선점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했다. 


한 한기가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는 특별히 조를 짜서 어린이들의 건강에 좋은, 영양이 골고루 갖춰진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부엌에 들어갈 때의 안전수칙은 이미 배웠던 터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날 다시 한번 그 안전수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결을 유지하고, 발등이 가려지는 신발을 꼭 착용해야 한다는 등의 수칙이었다. 


늘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요리 시간을 갖는다는 것으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들뜸이 엿보였다. 각 조마다 계획한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하고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시자마자 두 명의 학생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냈다. 이유는 발등을 덮은 신발을 신지 않고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주의 젊은이들은 발가락 슬리퍼를 평소에 많이들 신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겨우 18이나 19살이 된 학생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정을 해 보았지만 선생님은 단호했다. 적절한 신발을 신으면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들은 이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면 낙제를 할 판이었다. 어디선가 신발을 빌려 신고 다시 들어온 그들이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기는 했다.


화기애애하고 약간은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선생님은 모두에게 설명하시기를 발등 덮는 신발 착용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에 대해 우리가 배워왔던가를 상기시키셨다. 아무리 규칙을 지키고 안전을 위한 노력을 다해도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었다. 두 학생이 쫓겨난 것에 대해 선생님이 너무 엄격하다고 입을 삐죽이던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몇 주가 지난 후 각각 다른 곳에서 어린이들의 교사가 될 것이고 또 모든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이렇게 기억에 남을 만큼 혼이 나는 것이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사고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특별히 사고가 날 만한 엄청난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늘 '이 정도야 뭐..'라는 생각에서 행하는 사소한 행동 뒤에 사고는 고개를 드는 법이다.  


마지막 학기에는 경영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유아원을 경영할 수 있는 자격이 졸업 후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 경험 없이 바로 경영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만,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개인적으로 유아원을 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여러 사항들에 대해서 배우는 과목이었다.


유아교육에 대해서만 잘 알면 유아원을 열 수 있을 것 같지만, 유아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유아원을 오픈하는 데 법적인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교사는 어디서 어떻게 모집해야 할지, 만약 그 교사가 갑자기 아파서 출근을 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유아원에서 필요한 물품들은 무엇이고 어디서 구매할지 등등 유아원을 새로 오픈할 때 고려할 사항들에 대해서 공부했다. 게다가 유아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들을 계산하는 방법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각자 유아원을 오픈한다는 가정을 하고 유아원의 이름을 지으면서 시작했다. 몇 살의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몇 명의 유아들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교사는 몇 명, 어느 정도의 교육을 마친 교사들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것을 먼저 가정해야 했다. 


법적으로 아동 몇 명당 규정된 교사의 수와 자질이 정해져 있었지만, 좋은 유아원은 그것보다 많은 수의 자격을 갖춘 교사를 임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좋은 자질의 교사가 더 많으면 좋을 테지만,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막무가내로 그 수를 늘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어린이 교육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우리의 시각은 완전 다른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상황에서 토론은 계속되었다. 


교사들의 임금은 법적으로 책정된 금액이 있었지만, 좋은 교사를 좋은 환경에 모시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높은 임금이 요구되었기에 임금을 책정하는 데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했다.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복잡하고 자금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것에 놀랐다. 카탈로그를 찾고, 필요한 품목을 선정하고, 필요한 개수를 생각해서 총 필요 금액을 산정해 냈다. 


우리가 유아원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그 수업이 끝날 때쯤 우리는 오히려 자신감을 잃어갔다. 너무 많은 일들을 복잡하게 진행해야 하는 데다가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는 도저히 유아원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이렇게 가상 경영에 뛰어든 우리는 다음 단계로 자신이 만든 가상 유아원이 내세우는 교육 철학을 정립하고 그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전략 전술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배운 유아 교육에 대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나만의 교육 철학을 정립, 정리하라는 말이 처음에는 너무 커다랗게 다가왔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유아원 입구에는 그 유아원의 교육철학을 붙여 두는데 우리가 유아원을 경영하려면 당연히 교육자의 교육 철학을 학부모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2년간 공부한 모든 분야를 다시 들여다 보아 각자 제법 멋진 교육철학을 만들어 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점도 우리의 토론을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우리가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우리의 철학이 조금씩 진보하면서 수정이 될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인 틀은 이렇게 졸업하는 즈음, 한창 교육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이때 형성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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