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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Jan 15. 2021

몰랑이가 뭐길래

첫째가 유치원에서 선물로 받아왔다.

당연히 둘째가 눈을 반짝이면서 형 옆에 달라붙었다.

"형아, 이거는 누구 거야?"


다 알고 저런 말하는 5살이  귀여웠고 엄마로서 느껴지는 분쟁의 촉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이거 내가 받은 몰랑이야. 내건데 하나는 너 줄게."

둘이서 쑥덕쑥덕하더니 나한테 뜯어달라고 가져왔다.


어? 하나네??


요즘 웬만한 스티커들이 한 봉지에 두 개씩 들어있는 경험을 했던 첫째가 당연히 이번에도 스티커가 두 개 들어있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아까 주겠다는 하나가 사라진 상황이고 동생은 눈을 반짝이고 있어서 난처했던지 첫째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난 슬슬 불안해졌다.


형아 나 이거 하고 싶은데..

그건 안돼, 대신 너한테 제일 예쁜 거 줄게.


옆에서 내가 한번 곁들었다.

엄마는 이거 줘!! 엄마 눈엔 이게 예뻐.

기타 들고 있는데, 우쿨렐레 든 엄마 같잖아^^

모두 똑같은 걸 할 필요는 없고 각자 제일 예쁜 걸로 하면 돼~

물론 이건 첫째 것이니, 첫째 허락이 있어야 하고!!


둘째가 처음 가리켰지만 형한테 거절당한 몰랑이 대신에 튜브 낀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이게 제일 예뻐. 아~주 어저께( 이전에, 과거에, 옛날에 라는 뜻의 멋진 말이다) 내가 무서웠지만 꾹 참고 수영했으니까 이게 제일 좋아.


첫째가 흔쾌히 나눠주었다.


그러고는 즐겁다는 듯 갑자기 마구 선물을 뿌려대기 시작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드리고 아빠 휴대폰에도 붙여드리고, 나한테도 7마리(?)나 주었다.

그리고 동생한테는 무려 8마리!!!


둘의 우애가 극에 달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형이 준 스티커를 자신만의 장소에 붙이러 다니느라 거실과 방을 힘들 정도로 오가는 둘째의 발걸음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하. 지. 만

내가 웃으면서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둘은 울면서 엉겨 붙어 있었고

내가 둘을 떨어뜨려 놓자

난 거실 갈 거야!!! 라며 첫째가 휙~ 나가 버렸다.


한 명씩 토닥거리려는데

첫째가 둘째가 붙여놓은 스티커를 다 떼서 들고 들어왔다.

"네가 계속 그래서 이거 안 줄 거야!"


원래 자기 것이었다 외치는 첫째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는 둘째가 너무 가엾기도 하고..

한바탕 둘이서 내 무릎 한쪽씩 차지하고 엉엉 우는데 참 난감했다.


첫째야

선물은 안 주고 싶으면 안 줘도 돼.

그렇지만 일단 선물을 주고 나면 원래 네 것이었어도 이제 둘째 것이 된 거야. 그러니까 이걸 도로 가지고 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야.


계속 운다.


아까 형 선물 받고 둘째가 엄청 좋아했는데, 너도 이렇게 하면 둘째 마음 아플걸 알고 이렇게 한거잖아. 다른 사람을 일부러 아프게 하는 건 옳지 않아.


딱 이까지.

더 이상의 훈계는 소용없을 것 같았다.


결국엔  내가 중간에 누워 책을 펼쳐 들었다. 일부러 '화해 한 줌' 이란 책을 골라 읽었고 책 읽어 주면서 첫째, 둘째 이름을 같이 주인공 이름 대신 불렀더니

기분이 많이 풀렸는지

둘째가 먼저 미안해~ 한다.

첫째가 괜찮아~ 한다.

둘째가 형아는 왜 미안해 안 해? 하니

첫째가 미안해~ 한다.


나는 물개 박수를 치면서 사랑한다 해주었다.

휴...

화내지 않고 잘 넘겼다. 이번 형제의 난.


요놈의 몰랑이가 대체 뭐길래!!!


휴대폰 뒤에 붙은 기타 치는 몰랑이가 괜히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이거 확~  치워버리고 싶지만..

어젯밤의 잔재, 애증의 몰랑이를 보며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나를 한층 더 성숙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돌려 말해 본다.


아무래도 줬다 뺐는 거는.. 좀 그러니

이 몰랑이 중 둘째의 몰랑이들은 오늘 오후에는 다시 거실에 붙어 있으면 좋겠다.


토닥토닥

기타치는 몰랑아.

육아 좀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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