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먹지 못한 팥죽

by 그 중간 어디쯤

오전엔 외래가 바빴고

점심시간에 첫째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 면담이 있었다. 점심 먹을 타이밍을 놓쳐 그냥 굶어야지.. 하고는 회진을 위해 병동에 갔다.


오늘 바쁘셨나 봐요, 오전에 안 오시고 점심시간 다돼서도 안 오셔서 기다렸어요


매번 반갑게 맞아주시는 보호자분이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기다렸다고 하시니.. 뭔가 할 이야기가 있으셨단 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하니


짜잔~ 팥죽을 꺼내 주신다.


우와!! 감사합니다!!!

배가 고팠던 상태라 이 만큼만 먹을게요 해놓고선

딱 그만큼을 세 번 더 먹었다.


맛있게 잘 익은 갓김치도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꿀맛이란 말이 딱 맞았는데


첫 번째 두 번째 그릇까지는 아무 생각 없다가

세 번째 그릇부터는

나도 모르게 계속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손으로 그릇을 살짝살짝 가리게 되었다.


아버님~~ 이거 정말 맛있네요!!

아버님도 드셔야 하는데..

저만 먹어서 죄송해요..


환자분이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많이 먹으란 입모양을 내신다.


루게릭병.

입으로 드실 수 없는 상태라 위에 구멍을 내어 위루관을 통해 식사하시는 그분 바로 앞에서 맛있게 먹으려니 참 마음이 이상했다.

예전에 위루관으로 드시던 다른 환자분의 삼킴 기능이 좋아져서 소원이었던 곰장어를 함께 먹은 적 있었다. 그때에는 환자분도 같이 드셨기에 죄송한 마음이 없었는데..


이 분의 병은

진행하는 루게릭병이다.

앞으로 입으로 드실 수 없을 것 같다..

죄송했다..


참.

배가 채워지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맛있게 먹어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말씀하시는 보호자분께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뒤 든든한 배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나를 보며 맛있게 먹으라 하며 지어주신 환자분의 밝은 미소가 계속 떠오른다. 어쩌면 '성인군자'의 미소가 저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저녁밥은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먹을 음식이 있음이

내가 스스로 숟가락질할 수 있음이

입으로 맛을 느끼고 음식을 삼킬 수 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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