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끼는 건데 부산 곳곳에 참 놀기 좋은 어린이 놀이터가 많다. '남산 어린이 공원'도 그중 한 곳이다. 아주 긴 미끄럼틀이 세 개나 있고 짚라인까지 갖춰진, 보물 같은 장소다.
지난 주말에남편, 아이들과 그곳에 갔다. 마스크를 하고도 숨차게 뛰고 미끄럼틀 타고, 즐겁게 모래성을 쌓는 아이를 보면서 '그래, 아이들은 역시 뛰어놀아야 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5ㅡ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미끄럼틀 안이 아니라 '위'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보는 내가 아슬아슬해서 결국 한마디 했다...
"친구야,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는 건 많이 위험해. 안 그러면 좋겠다."
다행히 멋쩍어하면서 "네~"이런다.
조그만 길을 건너면 작은 놀이터가 하나 더 있는데 큰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는 둘째를 위해서 거기 있는 작은 미끄럼틀을 타고 놀 때였다. 이번에는 한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는데머리부터 땅으로 부딪혔다. 그 아이 엄마는 못 본 모양이었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쓱쓱 털고 일어난다.
내 입에서는 그 순간 윽! 소리가 났다.
같이 보던 남편이 내게 묻는다
주마등처럼 무언가 스치는 경험한 적있어?
굳이 주마등처럼 무언가 스쳐가지 않더라도..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경험
내가 뭔가를 해주거나 할 수 없을 때, 그저 운에 맡겨야만 했던 그 순간들이 있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우리 가족을 태운 차가 한 바퀴 뱅그르르 돌 때 튀어나가던 안경과 모래 뿌연 창밖 풍경을 보면서 그걸 느껴 보았고
몇 년전 2층 계단을 내려오다가 5ㅡ6계단을 남기고 첫째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순간,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그것을 느꼈다. 1층에 있던 남편이 몸을 날려 아이를 받아내던 그 순간이 슬로모션 같았다.
그리고 몇 달 전 둘째가 미끄러지면서 문에 머리를 다치던 그 순간에도..
남편은 그 아이가 떨어지는 순간에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만도 이렇게 수시로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데, 하물며 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행운의 순간이 존재하는 것인지.. 그저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매년 아이들의 생일 때마다
삼신할머니상을 차려주신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지켜주신다고 했다.
혼자 잘 커온 줄 알았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요즘에는 그 마음이 이해 가고 어머님의 그런 정성과 걱정이 정말 감사하다.
저 미역국과 밥을 먹고 출근 하라 하셨다
사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몰랐을 것 같다.
나를 주치의로 스쳐간..
태권도하다가 다친 아이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아이
다이빙하다가 다친 아이
이렇게 다쳐서 사지마비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사실,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내 아이의 모든 순간에 내가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그래서 그냥, 그저, 삼신할머니께 감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