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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Feb 02. 2021

삼신할머니께

요즘 느끼는 건데 부산 곳곳에 참 놀기 좋은 어린이 놀이터가 많다. '남산 어린이 공원'그중 한 곳이다. 아주 긴 미끄럼틀이 세 개나 있고 짚라인까지 갖춰진, 보물 같은 장소다.


지난 주말에 남편, 아이들과 그곳에 갔다. 마스크를 하고도 숨차게 뛰고 미끄럼틀 타고, 즐겁게 모래성을 쌓는 아이를 보면서 '그래, 아이들은 역시 뛰어놀아야 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5ㅡ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미끄럼틀 안이 아니라 '위'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보는 내가 아슬아슬해서 결국 한마디 했다...

"친구야,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는 건 많이 위험해. 안 그러면 좋겠다."

다행히 멋쩍어하면서 "네~"이런다.


조그만 길을 건너면 작은 놀이터가 하나 더 있는데  큰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는 둘째를 위해서 거기 있는 작은 미끄럼틀을 타고 놀 때였다. 이번에는 한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는데 머리부터 땅으로 부딪혔다. 그 아이 엄마는 못 본 모양이었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쓱쓱 털고 일어난다.

내 입에서는 그 순간 윽! 소리가 났다.


같이 보던 남편이 내게 묻는다

주마등처럼 무언가 스치는 경험한 적 있어?


굳이 주마등처럼 무언가 스쳐가지 않더라도..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경험

내가 뭔가를 해주거나 할 수 없을 때, 그저 운에 맡겨야만 했던 그 순간들이 있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우리 가족을 태운 차가 한 바퀴 뱅그르르 돌 때 튀어나가던 안경과 모래 뿌연 창밖 풍경을 보면서 그걸 느껴 보았고

 2층 계단을 내려오다가 5ㅡ6계단을 남기고 첫째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그것을 느꼈다. 1층에 있던 남편이 몸을 날려 아이를 받아내던 그 순간이 슬로모션 같았다.

그리고 몇 달 전 둘째가 미끄러지면서 문에 머리를 다치던 그 순간에도..


남편은 그 아이가 떨어지는 순간에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만도 이렇게 수시로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데, 하물며 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행운의 순간이 존재하는 것인지..  그저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매년 아이들의 생일 때마다

삼신할머니 상을 차려주신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지켜주신다고 했다.


혼자 잘 커온 줄 알았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요즘에는 그 마음이 이해 가고 어머님의 그런 정성과 걱정이 정말 감사하다.

저 미역국과 밥을 먹고 출근 하라 하셨다


사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몰랐을 것 같다.

나를 주치의로 스쳐간..

태권도하다가 다친 아이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아이

다이빙하다가 다친 아이

이렇게 다쳐서 사지마비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사실,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내 아이의 모든 순간에 내가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그저,  삼신할머니께 감사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뿐만 아니라

병원에 오는 모든 아이들 곁에도.. 바쁘시겠지만.. 늘 머물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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