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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Mar 19. 2020

빛나는 앞머리

빛나다는 말이 참 좋다


달 전 거울을 보다가 알아차렸다. 내 앞머리가 빛나고 있음을! 처음엔 그 빛을 낚아채서 뽑아 버렸다. 약간의 아픔과 함께 다시 검은색만의 머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뽑아대다가는 이마가 1cm 넓어질 참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염색을 했다.

한동안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요 얼마간 미용실을 못 간 사이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두 가닥이 눈에 띄었다.


없애보려고, 어떻게든 좀 해보려던 내 노력은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말이다.

풋. 웃음이 나왔다.




언제였을까..?

엄마가 내 앞에서 우시던 날이 기억났다.

그날은 엄마의 흰머리를 내가 발견했고

엄마는 나에게 뽑아달라 하셨다.

그냥 뽑아서 건네었는데 엄마가 우셨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하시면서.

꽤 충격이었나 보다.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난 거울을 보며 같은 상황에서 풋.. 웃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하지만 알고 있다.

그때의 울음과

지금의 웃음은 같은 의미란 것을.


빛나던 젊음에 대한 그리움과

약간의 허무함과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섞인

그런 감정이 담긴 것이었음을.


빛나는 앞머리를 발견한 뒤, 몇 달 동안 부정했지만 이젠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였다. 한동안은 좀 더 빛날 수 있게 내버려 둘 예정이다.




아주 아주 심하게 다친 남편분을 정성껏 간호하시는 중년 여성분의 반백 단발머리가, 고귀한 마음과 합쳐져 오늘 더욱더 이쁘게 보인다.


퇴원을 간절히 원하시는 한 할머니의 백발이 흰 피부와 어우러져 더욱 빛나 보인다.


어쩌면

빛나는 앞머리는

누군가 나에게 선물로 주는 예쁜 머리핀일지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토닥토닥, 너 여태 잘 살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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