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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Apr 03. 2021

책 속에 들어가 본 적 있었다는 착각

브루노를 위한 책을 읽고

브루노를 위한 책


잠들기 전,  빛나라 오드리님께 추천받은 '브루노를 위한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책에 관심 없는 브루노에게 책을 좋아하는 올라가 책 속 세상을 안내해 준다. 그곳을 용감하게 모험한 뒤 브루노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른의 눈'으로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책 속 모험에 빠지게 된다, 즉 책의 재미를 알고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책 속에서 브루노가 겪는 모험이 진짜처럼 짜릿하고 스릴 있게 느껴졌나 보다.



용이 너무 무서워

꿈에 용이 나오면 어떡해


이제 자자고 했더니 둘째가 계속 되뇐다.

방금 전까지 깔깔거렸던 터라 새삼 심각해진 둘째가 좀 걱정되었다.


둘째야 용 누가 물리쳤지?

브루노!

그럼 꿈에 용만 나오지 않고 브루노가 함께 나와서 용을 물리쳐 줄 것 같은데?

(표정이 실룩실룩)

아니면 우리 둘째가  용감하게  물리치는 건 어때?

(아.. 이 말은 진짜 괜히 했다...)

용꿈은 좋은거야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옆에서 첫째는 난 아무 꿈도 안 꾸고 싶어.. 이런다.


고맙게도 한참 듣고 있던 남편이 도움을 줬다.

니 꿈에  용은 사실 통통이였대ㅋㅋㅋ

(통통이; 뽀로로에 나오는 마술사, 용으로 변신 가능)

급하게

나랑 첫째도

"우와 통통이 꿈에 나오면 진짜 재밌겠다!!!"

맞장구쳤더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둘째는 졸린 눈을 더 이상 이기려 하지 않고 잠이 든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느라

용이 브루노에게 죽는 장면만 여러 번 봤더니

내 머릿속에도 그 장면이 새겨졌다. 쾅!!

용 목에 칼이 박히는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그 용도 불쌍해

그 용한테 말을 시켜보면 어땠을까?

알고 보니 말이 통하는 착한 용이었을지도 모르잖아?

용과 친구가 되는 거야. 하늘을 날 때 좀 태워 달라고 하고!!


둘째가 잠든 뒤

이 책 내용은 아무런 신경도 안 쓰이는 듯한 첫째한테

이번엔 내가 중얼거린다.


아.. 이제 좀 덜 무섭다.

적어도 내가 악몽 꿀 것 같지는 않다.


산으로 가버린 우리들의 대화.

그렇지만 느꼈다.

버티고 있던 나도 책 속에 잠깐 동안 풍덩, 빠졌다 나왔음을.



책을 읽어줄 때에는

내가 올라, 아이들이 브루노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용이 어딨어~ ', '이 작가 참 재밌게 글 잘 썼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은 아이들이 올라, 내가 브루노였다.


깨달아버렸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그 어떤 책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음을. 여태 그 어떤 책에도 풍덩 빠져들지 못했음을. 혹시나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까지 하면서 나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대체 왜? 누구로부터?아직 답을 모르겠다.


브루노를 위한 책.


아집이 가득한 나의 마음의 빗장을 살짝 열게 해 준.. 어쩌면 그 빗장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리게 해 준..


또 다른 의미의 '나를 위한 책'이었다.



어젯밤, 잠시 였지만 책속에 빠진다는게 뭔지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
앞으로 더 잦아질 이런 날들이 기대된다.





** 이런 시선도 있다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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