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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Jul 28. 2021

그냥 고마워 하면 안될까?

미라클미타임 숙제 (손 관찰일기)

김연수 코치님이 진행하시는 미라클 미타임에 참여 중이다.

그리고 7월 숙제는 착한재벌샘정님께서 내주셨다.

손이 하는 일 관찰, 그리고 손에 대한 시 써보기


음..

손이 하는 일이라..

일단 관찰부터 해보았다.


신문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우산도 집어 들었다.

차를 탄 뒤 운전대에서도 내 손은 참 빠르게 움직이더라. 오늘은 특별히 와이퍼도 켜야 해서  바빠 보인다.

게다가 라디오 음악에 맞춰 까닥거리기도 해줘야 하니  참 바빠 보인다!


아참, 출근 전 배웅을 위해 문 앞에선 아이들을 향해 열심히 흔들었다. 손을. 아이들을 꼭 안고 뽀뽀한 뒤 헤어지는 그 순간에는 이중 감정이 든다. 아쉬움 짠함과 동시에 여유롭고 홀가분한^^


손은 나를 위해 문들을 열어주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하고 대신 계단 난간을 잡아 주었다. 덕분에 오늘 좀 걷는다. 그런 손에게 장갑을 덮어 씌우고 환자분의 엉덩이에 생긴 욕창을 치료했다. 요즘 장갑은 가루가 없어서 참 좋다. 이전에는 라텍스 장갑 때문에 자주 가려웠더랬다.  나의 손이 여러 환자분들의 손에, 팔에 어깨에 가 닿았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걸 지켜보는 건 매일 하는 일인데도 참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 퇴원하시는 분과 악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손을 통해 전달받았다. '이 온기를 간직해서 나도 더 많은 분께 나눠야지' 생각하는데 환자 보호자분이 건네주시는 시원한 박카스와 환자분이 주시는 과자들, 간호사실에서  주신  따뜻한 차 한잔 덕에 난 받기만 하는.. 민망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일단 내 손은 먹을 것들을 내 호주머니에, 내 입에 부지런히 넣어 주었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과자들은 일단 호주머니 속으로..! 이것들을 보고도 먹지 않는 건 정말 곤욕인데 다행히 내 손이 날 많이 도와주었다.


이제 진료실 컴퓨터 자판으로 돌아왔다.

나를 위해 올해 초 선물한 무선 키보드 자판이 어느새 닳았음을 보니 내 손이 일을 꽤 많이 했구나 싶다. 또닥또닥 자판을 쳐서 약 처방을 하고 외래로 온 아이들의 발을 만지고 등을 만지고 다시 또 또닥또닥 자판을 쳐서 보호자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으앙~ 우는 아이들에게는 보호자분이 허락하시면 작은 과자를 건네기도 한다.


슬쩍 배가 고프다.

집에서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꺼내니 영 부족하다 싶어 고구마를 더 꺼냈다.

음료가 필요해! 내 첫 취향은  라떼지만 두 번째 취향으로 전환한 뒤에는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연하게 타는 건 이제 내손이 반자동으로 해주는 일이다. 뜨거운 물 약간에 찬물 듬뿍 넣어서 고구마와 함께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

이 와중에도 고구마 껍질 벗기느라 정신없는 내손을 씻어주면서 오늘 대체 손을 몇 번이나 씻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손 씻고 손 소독하기. 요새 인증제 기간이라 더 신경 쓰인다. 아무튼 손은 또 바빠 보였다..


목도 긁고

머리도 긁고

조금은 긴장이 풀린 상태로

잠시 멍~~


말하고 자판 치고 돌아다니고 환자분들 만나고. 무언가를 끄적끄적 많이도 썼다. 중간중간에 핸드폰도 만지작만지작거렸다. 손은 쉴 새 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손이 아파 치료받으러 오는 친구가 연필을 쥘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보조기 차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그 친구에게  안쓰런 마음을 애써 숨기고  단호하게 "무조건 차야해!"라고 말해놓고서는 내손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 감사한 손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운전대에 앉았다.

저녁 일정이 없어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다.

속청 독서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만의 힐링 타임이다. 주변 풍경들이 예뻐 보인다.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주변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요즘 마음 정리가 어느 정도 되서인지 다시 주변 풍경이 들어온다. 감사한 일이다. 하늘과 강과 산 거기에 어우러진 멋진 다리와 고가대로의 모습은 계절마다, 날씨마다, 시간 시간 다 다르다. 이 알아차림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아참, 손을 기억해야 한다. 손은 독서 앱을 켜주고 작은 까딱 거림으로 이 큰 차를 몰아 안전하게 나를 집 앞  주차장으로 데려다주었다. 한 번씩 작은 핸들의 움직임이 이렇게 차의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감탄할 때가 있는데 오늘은 더 감탄사가 나온다. 고속도로에서의 세찬 물살 같은 차들의 흐름에 합류했다가 마지막 우회전을 해서 우리 아파트로 들어가는 순간은 톡! 물방울이 되어 튀어나온 기분이 든다.

차한테 고마워~ 속삭이고 물방울 속에서 걸어 나왔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퇴근길이 밝아서이다! 오늘은 우중충한 회색이지만..


집에 가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들이 있다. 아이들은 지금이 식후 TV타임이다. 카봇 본다고 눈길만 아주 슬쩍 주는 아이들을 보며 많이 컸구나 싶다. 뽀로로 볼 때는 TV 보다 말고 나를 먼저 꼭 안아 줬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카봇한테 밀린다, 내가. 카봇 끝나야 아이들이 나를 꼭 안아준다ㅋ


샤워하고 밥 먹고 저녁 설거지하고

이 모든 것을 다해주는 손이 이불 정리도 해주었다.

아이들과 책 읽을 때에도 함께 한다.

말 잘 못 알아듣는 크로버를 다시 누르러 갈 때도 손이 큰 역할을 했다. 버튼 한방에 정리 끝!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

이들의 예쁜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을 찍고서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휴대폰을 만지는 것도 손이 다 해준다.



며칠 전, 비가 오던 날 여기까지 써두었다.

아무래도 글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 고심했었다.


그런데..

내손이 하는 일을 쭈욱 나열된 글을 다시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 자신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


난,

애써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 것 같다.


그냥, 고맙다 한마디면 될 것을.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잘하고픈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 보다.



손 관찰 일기 덕에

손의 고마움도, 아이 같은 내 마음도 만났다.

잠시 멈추고

내 손도 내 마음도 쓰다듬어 본다

이제는 힘 빼고 말해보자

고마워,

그냥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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