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난세에서 살아남기

by 외노자 정리


“제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올리는 시간이 가장 평화롭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마음이 가장 평안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을 때입니다. 그럴 때면 제 생각이 정리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우선순위가 바로 섭니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해외 소장, 그것도 규모가 몇조 원 단위를 하는 프로젝트의 소장을 했다는 것은 그분에게 배울 것이 꽤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좋아하진 않았고 나도 그를 제대로 섬겨본 적은 없으나 그의 혹독한 자기 관리, 그 정갈한 자세 하나만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매일 새벽, 사막의 습기 가득한 공기를 마시며 조깅을 하던 그의 단단한 몸맵시는 소장이 갖춰야 할 '체력' 그 자체를 상징했다. 그런 그가 아침 조회시간을 여는 3분 스피치에서 아내의 커피와 독서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그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졌다.


지금 나는 매일 아침 돌아가며 모든 사람 앞에 3분 스피치를 준비할 필요가 없는 또 다른 조직에 적을 두고 있지만 한국 회사와는 다른 분위기에 매번 어색했다. 일단 직급은 존재하되, 상하관계는 없었다. 직무는 존재하나 맡은 바 역할이 뚜렷했다. 내가 만든 보고서의 초안은 '참고용'으로 쓰일 뿐, 히드로 공항의 품질 총책임자는 자기가 직접 보고서를 만들어 냈다. 해외 현장에서 돌아와 본사에 들어갔을 때 처음 겪은 보고서 만리장성이 여기에는 없다. 또 없는 것이 있는데, 계층적 구조가 없다. 기본 세팅은 모두가 평등하다. 오죽하면 히드로 공항에는 정해진 자리도 없고, 도서관과 같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서 자유롭게 일을 하면 된다. 팀 미팅이 있을 경우에만 정해진 장소에 일사불란하게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헤어진다. 총체적 자유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정말 어색하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도 한국 기업에 10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지시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라 표현했다.


해외 현장에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hierarchical structure'가 눈에 띄게 존재했다. 아랍인 - 아랍계 - 한국인 - 삼국인으로 분류되는 이 체계는 '종족'에 편향된 계층이 아니라 '회사'와 특정되어 연관된 구조다. 재미있지 않은가? 아랍인의 회사에서는 아랍인이 아랍의 복장으로 담배를 즐기며 때로는 관대한, 그러나 대부분 혹독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베니스의 상인, 발주자의 향기를 뿜고, 아랍인의 하수인이자 프로젝트 관리인인 아랍계 관리자들은 아랍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프로젝트를 좌지 우지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나 그들이나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제 삼국인 들이다.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월 70만 원 정도의 푼돈을 받고 몇조 원이 넘는 프로젝트의 일개미가 되어 움직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계층은 석유 화학 프로젝트에서 시스템이 되어 황무지 같은 사막에 석유 및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어낸다.


영국에 존재하는 시스템은 계층적 시스템이 아니다. 독립적, 지방 분권적, 평등한 시스템이다. 발주자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들을 믿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용이 기반이 된 시스템이 바로 영국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게 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말이 좋아 신용이 기반한 사 회지, 신용을 얻기까지는 꽤 고단한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회사들은 기존의 발주자가 선호하는 회사들 사이에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다. 모든 시스템은 발주자를 우선으로 한다. 단적인 예는 외국인이 영국에서 집을 구할 때에 나타난다.


"Do you have reference?"


아마 당신이 처음 듣게 될 이야기는 영국에 '적'을 둔적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레퍼런스의 종류에 따라 월세를 6개월치를 한 번에 내야 할 수도, 혹은 1년 치를 한 번에 낼 수도 있다. 반면, 영국 시민을 알고 있고, 그 사람이 당신의 보증인 'Guarantor'가 될 수 있다면 단번에 당신도 그 사람의 신용에 올라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영국이 '신용'이 기반된 사회가 아니라, 'Reference-based country'라고 표현하고 싶다. 집을 구할 때도, 직장을 구할 때도, 이 허들은 넘어야 할 필수 전제 조건이다.


코로나 이후 6개월째 재택근무를 하며,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이상한 두려움이 생겼다. 마치 펜팔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사귄 친구를 직접 만나게 될 때에 느끼는 딱 그 정도의 두려움?

코로나는 어찌 되었던 it shall be passed away 지나갈 것이다. 인류의 백신 time line이 이를 증명한다. 2021년의 어느 순간, 다시 사물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또 외국인 노동자가 된다. 영국과 백인 그리고 외국인들이 한데 섞여 일을 하는 그곳에 돌아가기가 꺼려지지만, 그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커피를 끓인다. 그리고 아내의 커피이야기를 꺼냈던 소장님을 추억해 본다.



커피를 끓이며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비가 오고 우중충했던 영국의 하늘은 전에 없이 맑다. 평안하다. 책을 꺼내 들어 읽기 전에 이 감정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을 위한 정보전달의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내 감정이 글에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 이렇게 편하게 쓰고 퇴고하지 않고 쓰는 글이 좋다. 내가 처음 글을 쓴 때를 생각해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부반장으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반 카페를 다음에 개설했다. 금 109 아직도 이름이 생생하다. 공부에 지쳤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나는 그 카페에 익명 게시판에 글을 썼다. 그냥 누군가를 욕하는 글도 탓하는 글도 한탄하는 글도 아니고 현재의 시간이 이렇게 공부를 하고 지나가는 게 아쉽다. 소중한 시간을 많이 가지자.라는 글이었다. 어느 날 반에서 조용한 편에 속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거 니 아이가?”

“뭐?”

“그거”

“그러니까 뭐 말이고?”

“게시판에 글”

“무슨 글?”

“익명게시판에 이렇게 저렇게 쓴 글”

“무슨 글?”

“아. 니 아니가? 내 그 글 보고 너무 좋더라. 현재의 시간과 소중한 시간? 울뻔했다. 그냥 니가 쓴 글 같았다.”

“빙시가? 글 보고 울게?”


지금 생각해 보면 괜히 민망해서 그런 반응을 했는데 그 친구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다. 사실 고맙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 아이의 고백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도 있구나.’



오늘의 어른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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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셨던 소장님의 방에 보고서를 들고 들어 갔을 때, 책상 한편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보았다. 그 책의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혹독하게 자신을 다루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혹독한 자신의 행동이 그 책을 통해 이해하려 하셨을까? 한 번은 물어보고 싶다. 왜 그 책을 그때 읽으셨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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