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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Aug 03. 2023

여름, 나의 첫 소백

삼복더위 속 미친? 산행, 소백산 천동-비로봉 코스

1987년 18

지구가 펄펄 끓는데 등산을?


[행정안전부] 폭염경보, 체감온도 최고 35도 이상, 농촌 온열질환 사망자 발생,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와 휴식으로 건강에 유의 바랍니다.



7월을 하루 남긴 산행 전일, 휴대폰으로 날아오는 안전 문자기 거의 공해 수준이다.

라디오에선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끝났고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가 시작되었단다.

단어(boiling) 그대로 북반구 전체가 펄펄 끓고 있다.  


처음 등린이 시절, 봄가을산이 최곤줄 알았다.

좀 지나 눈 쌓인 겨울산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 폭설만 오면 아이젠 챙겨 광덕산을 올랐다.

여름산은..?  습하고 끈적이는 공기에 달려드는 벌레들까지... 내 스타일 아니라 생각했다.


새로 가입한 CJ산악회에 번개산행 공지가 떴다. 7월 30일 소백산, 키나발루산행 후유증으로 발톱이 덜렁거리는데, 계곡 산행에 알탕?가능 문구에 덜컥 '참여' 투표를 눌러 버렸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등산이라니... 어쩌다  약속을 했누...'


후회와 걱정이 쑤욱 올라왔다.  


배테랑 산악대장 Y님의 결정을 믿고 이른 잠을 청했다.


내려가기 싫어!


5시 기상 6시 출발, 8시 단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무서울 정도의 장마가 막 끝난지라 계곡물소리가 우렁차다.

경사는 완만하고 계단도 바위도 별로 없는 육산이라 발바닥이 좋아라 한다. 시종일관 숲길이 이어지고 물이 넘치는 계곡에서 선선한 공기가 올라왔다. 예상밖으로 벌레들도 자취가 없다.

6.8km 숲길을 오롯이 누.렸.다.

살짝 허기가 지려는데 동행이 권한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심신이 든든해졌다.


드디어 비로봉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사방이 탁 트인 대초원  펼쳐졌다.

초록 능선의 끝 비로봉


이미 정오를 넘겨 해는 중천에 있고 그늘 한점 없는데, 덥지가 않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히기에 흡족할 만큼 시원하다.

해발 1,439m 고지에 여름은 없었다.  



선물 같은 소백+


사방이 초록인데 군데군데 연보랏빛 무더기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비비추의 계절이란다!

사이사이 주황 동자와 나리꽃, 보라 긴산꼬리풀,  신부의 부캐를 닮은 순백의 어수리가 자태를 뽐낸다. 화가의 펜화를 보는 듯한 분홍 둥근이질풀과 수줍어 보이는 솜다리 덕분에 눈과 코가 호사를 누린다.    

동자꽃
긴산꼬리풀
둥근이질풀


솜다리
나리
 어수리



"좋다, 이쁘다, 너무 좋다, 너무 이쁘다......"

이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마음은 무더운 속세로 내려가는 것을 거부했지만, 머리와 배가 하산을 재촉했다.


잣나무 숲 속의 초록 공기, 자작나무인 줄 알았던 은사시나무 군락지의 고풍스러운 화이트는 하산길 소백산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퇴계 이황이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라며 소백산 철쭉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처럼 수많은 탐방객이 봄철 소백산국립공원을 방문하고 있으며, 겨울이면 장중한 백두대간 위에 설화가 만발하는 절경을 이룬다. 설화가 만발하는 절경을 이룬다.


국립공원 소백산 소개글의 일부다.

음... 역시 봄, 겨울 소백이 멋진 모양이다.

기대된다.


내 생애 첫 소백인 여름 소백은 '무더위 쉼터'이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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