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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May 04. 2024

나누고 싶은 책, 운동화 신은 뇌

: 운동은 뇌기능(지능, 감정, 치매)에 얼마나 이로운가?

학생 때부터 하늘같이 존경하는 정신과 의사 K선배가 강력 추천한 책이다. 원제가 Spark your Brain이니 뇌를 지진다는 뜻인가? 치매로 고생하시는 모친을 모시느라 burn out직전이신 선배가 우리 엄니 안부를 묻더니 권해 주셨다. 최근 자주 깜빡깜빡하시는 엄마에게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드리라는 고마운 마음을 읽었다.


운동이 심폐기능, 대사기능에 좋고 다이어트의 핵심이라는 내용의 책이나 강의는 넘치고 넘친다. 그런데 이 책은 운동이 지능과 감정뿐 아니라 치매예방에 필수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그냥 "..가 ...에 좋다"는 정도로는 게으른 본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좋은지 스스로 설득이 돼야 몸이 움직일 확률이 높아진다. 책을 정리하는 이유도 나 스스로를 좀 더 강하게 설득하기 위함이다.    


추천자뿐 아니라 저자도 믿음직하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로 뇌신경이론뿐 아니라 스스로도 마라톤, 테니스, 스쿼시를 즐기는 운동매니아 존 레이티(John J Ratey) 박사다.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주제별로 광범위한 연구 결과들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짐작대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감마아미노브티르산, 세로토닌, 시냅스, 편도체... 등등 어려운 신경내분비학용어들이 자주 나오고 복잡한 임상실험의 구조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평생 기억해야 할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아 잊기 전에 정리해 본다.




O교시 체육수업의 놀라운 효과


시카고 서쪽의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는 0교시 체육활동을 도입했다.  네이퍼빌의 혁명은 필 롤러라는 체육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쟁위주의 체육수업은 운동을 잘하는 주목받는 학생들 외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이류로 만든다. 롤러는 '운동능력'이 아닌 '심박수'에 주목했다. 기업 후원으로 지원받은 손목 심박수 측정기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활동의 목표를 심박수 올리기로 바꾸었다. 기초체력을 측정할 때 안정 시 심박수를 측정하고 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운동은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다. 그룹운동이든 솔로 운동이든 학생들은 18가지나 되는 운동 중 자신에게 맞는 종목을 선택하여 심박수를 자신의 능력에 맞게 올리면 되었다.


결과는?  


1만 9천 명의 학생들을 미 전역에서 가장 건강한 청소년으로 만들었다. 네이퍼빌 고등학교 2학년 생 가운데 과체중인 학생은 불과 3퍼센트, 전국 학생들의 평균 과체중 비율이 30퍼센트라는 사실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학업성적 또한 압도적으로 월등하다는 점이다. 1999년 중학교 2학년 생의 97퍼센트가 참여한 팀스TIMSS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팀스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학력을 국제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시험인데, 그동안은 중국, 일본, 싱가포르가 줄곧 미국을 앞질렀다. 하지만 네이퍼빌의 학생들만은 눈에 띄게 예외적이었다. 시험에 참가한 전 세계 23만 명 학생들 가운데 네이퍼빌 학생들이 수학에서는 6등, 과학에서는 1등을 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약물중독, 학교폭력 등 각종 청소년 문제들도 현저하게 줄었다.


운동으로 뇌신경이 튼튼해진다고?  


20세기까지 학계의 정설은 일단 성장이 끝나면 뇌신경은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나이가 들수록 신경세포의 일정 %가 파괴되어 점점 쪼그라든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신 연구들은 운동과 지적 활동이 이러한 과정에 브레이크를 걸뿐 아니라, 심지어 뇌세포와 연결망의 재생을 촉진해 더 건강한 뇌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소위 뇌 가소성(plasticity) 이론이 정설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태권도나 악기 배우기, 댄스 등 복잡한 동작을 반복하면 뇌세포들 사이 새로운 연결망이 생기고 점점 두꺼워진다. 이렇게 생성된 신경망은 한 기지 용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피아노를 배우면 수학도 잘하게 되는 이유이다.


'숲에서 반복하여 걸으면 새로운 길이 다져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습을 반복하면 뇌에 새로운 회로가 자리 잡는다.'


나이듬과 함께 뇌신경세포에 가장 해로운 것이 소위 스트레스 상황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피질 호르몬인 코르티졸이 과잉 분비된다. 그런데 과다한 코르티졸은 시냅스 간의 연결을 끊고 수상돌기를 수축시켜 세포들을 죽게 만든다. 결국 해마가 건포도처럼 오그라든다. 운동을 하면 신경세포성장인자가 활성화되고 심근조직의 ANP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 대응을 가라앉힌다. 즉 스트레스로 인한 뇌신경세포의 보호막이 형성되는 셈이다.



감정은 의지가 아닌 몸으로 조절한다.


흔한 오해중 하나가 감정을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현대인의 가장 큰 오해이자 해로울 수 있는 생각이다. 결심으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가? 의지로 우울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이는 마치 의지로 체온을 올리고 내리거나, 심박수, 혈압을 올리고 내리겠다는 생각처럼 어리석다. 우울증 환자에게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은 쓰레기 같은 조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몸이라는 중개인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의지-> 감정조절 대신 의지-> 몸(행동) -> 감정조절이 답이다. 불안할 때 '침착해야지...' 결심한다고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럴 때 실내 자전거라도 타면 심근조직에서 ANP 호르몬이 분비된다. ANP는 심박수를 줄이고 교감신경활성화에 브레이크를 걸어 불안을 완화시킨다.



운동은 최고의 정신과 의사


뇌에서 이루어지는 신호의 80퍼센트는 글루탐산염(활동을 촉진)과 감마아미노부티르산(활동을 억제)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에 신경전달물질(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이 조절인자로 작용한다.

 

- 노르에피네프린:  집중력, 인지력, 의욕, 각성에 영향을 준다 

- 도파민: 보상, 만족감, 집중력, 진정 효과  

- 세로토닌- 뇌의 경찰(뇌활동을 통제), 기분과 충동, 분노 및 공격성에 영향

 

정신과에서 쓰는 약물의 대부분은 이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한 가지를 늘리면 파급효과가 반드시 일어나 부작용을 초래한다.

운동은 신경전달물질의 수치를 자연스럽게 늘려준다.

줄넘기, 등산, 달리기, 크로스핏... 등이 천연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인 셈이다.  

이제 하나씩 근거를 살펴보자.


운동과 불안


운동이 불안을 줄이는 기전은 재미있고 신기하다. 불안하면 심박수가 오르고 근육이 경직된다고 알고 있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실기시험을 앞두고 불안감이 심한 학생들에게 항불안제보다 더 효과적인 약이 인데랄이다. 인데랄은 뇌에 작용하는 약이 아니고 단순히 심박수를 낮추는 심장약이다. 그런데 인데랄을 먹고 심장이 천천히 뛰면 불안감이 사라진다.   


히포크라테스는 감정은 심장으로부터 나오므로 기분장애의 경우 심장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의학은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여 생각했지만, 결국, 히포크라테스가 옳았다.


대표적인 불안장애인 공황장애 환자들은 극도의 불안과 함께 맥박이 치솟고 호흡곤란을 호소한다. 그런데 이들이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박수와 호흡이 빨라져 공황장애 증세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공황발작시와 동일한 증세를 건강에 좋은 유산소운동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과 무관하게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새로운 경험이 반복되면 긍정적 감정이 형성되어 공황장애 증상이 완화된다.  


운동과 우울


2000년 10월, 듀크 대학의 과학자들은 <뉴욕 타임스>에 운동이 항우울제 졸로프트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운동은 내분비(엔도) 마약(모르핀)인 엔도르핀을 분비시킨다. 엔도르핀은 고통을 줄이고 정신을 황홀하게 만들어준다. 엔도르핀의 수치를 높이는 일 말고도 운동은 항우울제가 목표로 삼는 신경전달물질들을 조절하고 또 뇌를 각성시켜서 우울증 때문에 낮아진 자기존중감을 되살린다.  

 

운동과 ADHD, 파킨슨씨 병, 치매


ADHD는 주의력이 모자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때에 주의력이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집중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이 부족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이를 조절하는 곳이 기저핵이다. 기저핵은 일종의 자동변속기 역할, 즉 대뇌피질이 요구하는 만큼 주의집중에 필요한 자원을 자동적으로 옮겨주는 일을 한다. 도파민은 자동변속기의 윤활유역할을 한다. ADHD환자의 경우 도파민의 양이 충분치 않아 주의력을 원활하게 조절하지 못하고 최고 혹은 최저 강도로만 전환하곤 하는 것이다. 기저핵의 이상은 파킨슨씨 병의 중요한 기전이기도 하다.

운동은 자동변속기의 윤활유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태권도나 댄스 같은 복잡한 동작을 익히는 운동은 아동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특히 효과적이다.

운동을 해서 기저핵이 활성화되면 뉴런간이 연결이 늘어나고 신경세포 성장인자 및 다른 손경보호인자의 수치가 올라간다.

핀란드에서 시행된 대규모 인구집단 연구에서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  운동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 비율이 50퍼센트 낮았다.


운동과 중독


운동 시 분비되는 내인성 카비노이드는 마리화나의 유효성분인 THC와 쌍둥이다. 둘 다 고통을 완화해 주고 행복감을 선물한다.  운동 후에 느끼는 쾌감은 마약으로 얻는 쾌락을 대신한다. 더군다나 운동에는 아무런 해로움도 없다.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Runner's High는 피부에 존재하던 내인성 카비노이드의 세찬 활성화 때문이다. 나쁜 중독(술, 담배, 마약...)의 효율적 대체제는 좋은 중독(운동)이다.

 

운동과 여성 건강(생리전증후군, 임신, 산후우울증, 완경)


여성이 일생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 월경 전 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의 결과,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 모두 신체적 증세가 개선되었으나,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달리기를 한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였다.


- 운동은 스트레스와 불안증을 줄이고, 임신한 여성의 기분 상태와 전반적인 심리 건강을 개선해 준다.

 운동은 임신성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을 낮춘다. 산모의 운동은 탯줄을 튼튼하게 만들어 태아가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 공급에 이롭다. 임신 중 꾸준히 운동을 한 산모의 아이들은 언어능력, IQ도 뛰어나다. 산모의 움직임이 태아를 이리저리 만져주고 안아주는 효과가 있어 아기의 뇌신경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산후우울증과 완경 후 찾아오는 우울감 극복에도 운동은 약물치료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  


뇌건강을 위한 최적의 운동법


소결: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더 많이 할수록 효과는 더욱 커지고요”


- 매일 하루도 빠지지 말 것을 결심하자. 흔히 주당 4~5회가 좋다고들 하지만, 매일 하려고 해야 주당 4~5회 하게 된다. 최선의 운동은 45~60분간의 유산소 운동을 일주일에 6회 하는 것이다. 4일은 중간강도로 조금 오래, 2일은 높은 강도로 조금 짧게!


- 근력운동은 골다공증 예방에 필수적이다.

 

- 요가나 필라테스, 무용, 태극권은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길러주고 민첩함을 유지하게 해 준다.


- 운동이 끝난 직후에 혈액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그 순간이야말로 날카로운 사고와 복잡한 분석을 요구하는 일을 처리할 최적의 시점이다. 0교시 체육수업을 국내에도 도입해야 할 이유라고나 할까...


- 인터벌 운동의 중요성: 40분 천천히 걷는 것보다 중간에 30초만 전력질주를 하면 성장호르몬이 6배 더 분비된다. 성장호르몬은 성인의 키를 자라게는 못하지만, 체지방감소, 근육량증가, 골밀도개선, 피부탄력성 증진, 활력증강 등 보약 중의 보약이다.


-  트레드밀 같은 단순 운동보다 등산, 태권도, 댄스 같은 복잡한 운동(여러 근육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두뇌건강에 좋다. 복잡한 운동을 시킨 쥐의 소뇌는 달리기만 한 쥐보다 신경세포 성장인자가 35퍼센트 증가했다.



 

ChatGPT4에게 고흐풍으로 Runner를 그려달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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