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월출산 산행기 250921
지루한 여름의 끝자락, 월출산에 올랐다.
설악, 주왕과 함께 3대 암릉산이란다.
나주의 유명 곰탕집 하얀집에서 아침을 든든히 챙기고 월출을 마주했다.
남도의 너른 평야에 병풍처럼 솟아오른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이라는데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지평선에 걸린 달처럼 보일 것도 같다.
거의 해발고도부터 시작해 810m(천황봉)를 올라야 하니, '잔머리' 없는 정직한 코스다.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맥박이 솟구치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뒤를 돌아보니 너른 평야와 병풍 같은 바위벽이 시야를 압도한다.
"월출에서 오르막이 힘들 땐 뒤를 돌아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때마침 불어준 바람에 가슴이 뻥 뚫린다.
힘든 만큼 보상이 확실한 산, 그것이 월출의 매력이다. 그 보상을 즐기고자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최대한 여유 있게 오르고 쉬고 내렸다.
사람이, 일이 주는 힘듬과는 다른 차원이다. 힘든 것도 내 욕심 때문이다. 변덕이 심한 나(사람)와는 달리 산은 늘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누구를 힘들게 한 적도 그럴 이유도 없다.
긴 여정 중 산을 오르는 이유들이 두서없이 떠 올랐다.
산은 말 없는 스승이다. 요령이나 잔머리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한 걸음씩 성실히 걸어야 한다. 걷다보면 멀게 만 보이던 정상이 코 앞에 와 있다. 오르막길이 있는 한 내리막길이 반드시 존재하며 바람의 방향은 바뀌기 마련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선물처럼 마주치는 꽃의 절정은 저마다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혼자 걷는 산길은 명상의 도서관이다. 한적한 오솔길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의 먼지가 가라앉는다. 핸드폰도 잘 안 터진다^^ 어느새 세상이 아득해지고 나 자신과의 대화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주변에 누가 없고) 힘들 땐 오르막길을 듣는다. 정인의 오리지널도 좋지만, 요즘은 이서환씨 목소리가 더 좋다.
등산은 땀으로 써 내려가는 시다. 땀방울 하나하나가 나를 살리는 문장이고 밥이다. 정상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은 천상의 노래, 그 이상이다. 한 번 맛보면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다.
산은 철마다 화장을 바꾸는 애인이다. 봄의 산뜻함,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붉은 울림, 겨울의 고요함과 눈부신 설경이 번갈아 찾아온다. 산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숨은 아름다움으로 온전히 오르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누군가 왜 오르냐고 다시 묻는다면, 이런 대답은 어떨까?
“오르고 또 내려온 다음 조금 더 산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