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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용 Dec 31. 2016

창살에서 또 다른 서른의 아침을 꿈꾸다

그래도 0.9평보다는 드넓어서 좋다

마치, 신선한 산공기라도 느껴지는 듯 합니다.

비록 감방 복도를 건너 비쳐지는 햇살이건만, 이렇듯 눈부시다니...


손발을 묶던 수정 하나 없다고  몸이 살아납니다.

며칠 내동댕이쳐지고 묶인 채, 먹지 못한 몸이건만 서른살 새벽을 맞는다는 마음때문이었을까요?

문밖 교도관이 말해주지 않았더면 몰랐을 내나이 서른의 새벽...  


창살에서,   또다른 서른을 꿈꾸다


서른살, 눈...부시다


1987년 새해, 안동교도소 먹방 징벌사동입니다.

정권 말기의 집권 연장을 노리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사회 곳곳의 시민저항운동이 들불처럼 타오를 때, 감옥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갇힌 자들의 투쟁은 더욱 처절하고 위태롭기만 합니다. 그나마 바깥 정치가 유화적일 땐 교도소 생활이 풀리고 투쟁도 먹혀들건만, 워낙 명운을 걸고 밀어부치는 전두환 정권의 말기 증상은 극악한 탄압과 고통뿐입니다.


안양교도소 투쟁으로 꽁꽁 묶여 이곳 경상북도 풍산 안동교도소로 이감되온지 며칠 째, 지방 교도소라서 그런가, 교도관들의 주먹질은 더욱 무지막지 합니다.  


0.9평 독방의 감방문을 마주하고 갇힌 자와 무리 지은 경비교도대의 살기찬 대치는 몇분 안가 진압되버립니다. 포승줄로 짓묶이고 우악스러운 손길로 지하 감방에 내동댕이들 쳐집니다. 단 몇분도 지나지 않아 묶인 팔목은 굳어오는데 감시자들의 거친 숨결만이 세상을 이어줍니다.  


며칠이나 되었을까요. 손과 발은 뒤로 묶여 개밥처럼 던져진 음식도 거부한 채 보낸 며칠,

새해 첫날 새벽이라고 풀어준 조막만한 감시창은 24시간 조명으로 밝은 징벌방보다 더욱 눈부신 바깥 풍경을 보여줍니다.


달라진 삼십년, 여전한 삼십년


그렇게 서른살 새벽을 맞습니다.

묶여 겪는 고통이 참담해서일까요?

참혹한 현실을 딛고 일어다는 각오가 가득합니다. 아. . 또 다른 서른의  아침,, .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을지..


내손에 아직도 시퍼런 포박자국이 눈물에 가려집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면 경직된 세상에서 경직된 열정과 의기룰  잃지않고  살려한 세월입니다.

뒤돌아보면 훅~, 낯 뜨거운 사연도 많고 부족함 많은 세월이었건만

오늘은 늙은 대리기사, 이런 모습으로 그날을 맞습니다.

그 시절 바람 심한 경상도 안동 풍산 산속 교도소에서 군사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면,

이제 서울 강남 새벽 거리에서 웅웅대는 낡은 메가폰 들고

대리기사 생존권 사수를 외쳐대는 모습으로 맞이합니다.  


아...또 다른 30년을 기대하기엔 너무 세월이 나가 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세상은 열려진 사회가 되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문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은 그 시절 의기와 열정으로 여전하듯 세상 불평등과 가난한 자들의 불행은 여전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 0.9평짜리 독방보다는 훨씬 드넓은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밧줄 하나에 매달려 목숨을 담보로 독재타도를 외쳤다면, 오늘은 촛불 집회니 각종 정치집회를 목숨^^ 걸 걱정없이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세월, 남은 날들을 좋은 일 하며 곱게 늙어가길 바래야 할까요...

대리기사 권익운동에 매달린지 6년, 이것 하나만이라도 잘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의 천분의 일만큼이라도 세상이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오늘은 일찍 들어가, 우리 아들과 아내의 가장 노릇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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