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하 언어 논쟁

언어학 이론을 뒤흔드는 아마존의 작은 목소리

by kay

https://youtu.be/DQnyh_1kqy8


얼마 전, 이 영상을 보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 언어의 필수적 구성요소라고 확신하던 [재귀성]이 존재하지 않는 언어가 현존하며, 부족을 형성하며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의 내용을 정리하며,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브라질 아마존 깊숙한 곳, 약 400명의 피라하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언어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작은 부족의 언어는 언어학의 거대한 기둥 하나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저 구석에 있는 붉은 점에 피라하 친구들이 살아요.

재귀성을 둘러싼 충돌


2002년 노엄 촘스키와 동료들은 재귀성을 '인간 언어의 핵심이자 유일한 특성'으로 규정했다. 재귀성은 'John said that Mary said that Peter...' 처럼 문장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구조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 언어는 재귀성을 보여야 한다.


캡처.JPG 자 이제 누가 말귀 못 알아듣는 ㅂㅂ일까

하지만 언어학자 다니엘 에버렛(Daniel Everett)은 20년 넘게 피라하족과 함께 살면서 피라하 언어에는 재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촘스키의 보편문법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언어의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중심'


피라하 언어는 여러 면에서 다른 언어들과 구별된다. 재귀적 문장 구조가 부재하여 ‘The child's friend's mother's house’ 같은 구조가 불가능하다. 한 단어당 최대 하나의 수식어만 허용되어 ‘큰 더러운 많은 브라질 견과’를 ‘큰 브라질 견과가 있다. 많다. 더럽다’로 표현해야 한다.


maxresdefault.jpg 언어의 본질? 피라하語를 보고 다시 말해보시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문화적 특징이다. 과거형, 미래형이 부재하여 현재 시제만 존재하며, 추상적 색깔 단어도 없다(밝음, 어둠만 구분). 현재에만 집중하는 세계관, 즉 '즉시성 경험의 원칙'을 따른다. 걱정, 우울, 정신분열증 같은 개념이 부재하고, 종교, 신화, 추상적 개념의 언어적 표현도 없다. 심지어 인사말, 감사 표현 등 사교적 언어마저 부재하다.


s.JPG 피라하, 쉽지 않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언어적 특이성이 아니라, 인간 언어의 본질을 묻는 도발이다. 피라하 언어는 언어가 무엇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지를 묻는 대신, 언어가 무엇을 포함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적 검증과 논리적 딜레마


논쟁을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MIT의 Ted Gibson 교수팀은 2016년 피라하 언어의 코퍼스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1,100개 문장을 분석한 결과, 재귀적 구조의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촘스키는 재귀성을 인간의 행동이 아닌 '능력'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피라하족도 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사용하지 않을 뿐이며, 실제로 도시에서 자란 피라하족은 포르투갈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버렛은 이런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재귀성이 뇌에서 제공하는 도구이지만 사용할 필요가 없다면, 원리적으로 어떤 언어에서도 나타날 필요가 없다. 이는 인간 언어의 고유한 특성이 실제로는 어떤 인간 언어에서도 발견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난처한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생존 최적화된 언어의 진화


피라하 언어의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이는 '퇴화'가 아닌 '적응적 최적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리적 고립과 소규모 공동체 환경에서 복잡한 재귀 구조나 추상적 시제는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았다. 대신 현재 상황에 대한 즉각적이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이는 언어가 진리를 향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피라하 언어는 '최단기 출력 언어'로서 에너지 효율성과 실용성을 극대화한 진화의 산물이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인간 인지의 본질


이 논쟁은 단순히 한 언어의 특이성을 넘어서는 근본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언어가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가, 아니면 유전적으로 결정된 구조를 따르는가? 피라하족의 '현재만을 경험하는' 문화가 그들의 언어 구조를 결정했다면, 이는 언어의 보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재귀성 없는 언어와 동물의 소리 체계 사이의 차이는 여전히 명확하다. 피라하 언어는 의미의 조합성, 의도 전달의 복잡성, 상징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문장을 무한히 확장하는 재귀적 능력만 없을 뿐이다.


살아 있는 언어 진화의 실험실


현재 브라질 정부가 피라하족 거주지에 학교를 짓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이는 언어 진화론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연 실험'이 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피라하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언어는 생물처럼 진화하는가, 아니면 기술처럼 혁신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일부 젊은 피라하족이 포르투갈어를 익히기 시작하면서 코드스위칭(언어 혼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의 진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 계속될 질문들


400명의 작은 부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수십 년간 구축된 언어학 이론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언어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피라하 언어가 던지는 질문은, 언어의 부재가 아니라 언어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복잡한 체계를 버리고도 인간 사회는 존속할 수 있는가? 재귀성과 보편문법이 없다면 사고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 문명의 복잡한 언어 구조가 과연 인간의 행복과 생존에 필수적인가?


언어가 정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능력이라면, 그 능력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곳곳의 모든 언어, 특히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에 대한 치밀하고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피라하 언어는 그 여정에서 만난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귀중한 단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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