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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록펜 Apr 10. 2019

월급날엔 방청소를

자취방이 개판이었다

    월급날이라서 청소를 한 건 아니다. 집이 너무 더러웠다. 떡볶이와 김밥을 사들고 자취방에 들어서는 순간, 여느 때처럼 개판 오분 전인 방바닥이 나를 맞았다. 충전재가 사이사이 삐져나온 패딩 점퍼, 다행히 내용물이 새어 나오진 않은 구강청결제, 활짝 펴진 채 엎드려 있는 책, 동전, 마스크 등등. 겨울을 함께 보낸 전우(?)들이 방바닥을 점거하고, 먼지를 머금은 채 나에게 묻고 있었다.


니가 사람새끼냐.


그래 알았다……. 근데 청소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분식을 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는 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빈 페트병을 눌러 모아 버리고, 길거리에서 받아온 전단지를 버리고, 즉석밥이 담겨 있던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고, 나무젓가락을 버린다. 양말과 옷도 버린다. 바람구멍이 생긴 양말을 버린다. 철지난 옷을 버리고, 불어난 몸을 받아주지 못하는 옷도 버린다. 옷을 버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잠옷으로도 못 입는 옷인가? 내 방에서 없어져도 상관없는 옷인가? 신발장을 열고 비슷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없어져도 괜찮은 것까지 가지고 있다면,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네.



    버리는 일이 끝나면, 먼지를 제거한다. 창틀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방바닥에서 먼지를 쓸어낸다. 방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어 들고, 먼지를 털어낸다. 책장에 꽂으려다 실패한다. 책장을 레고로 채워놨기 때문이다. 집을 빼앗긴 책들을 책상 가장자리에 쌓는다. 붓을 들고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레고로 만든 건물과 버스, 비행기에서 먼지를 털어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먼지를 털어낼 물건들로 방을 채우고 있다면,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네.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네. 월급날이라서 청소를 한 건 아니다. 월급이 떠올랐다. 월급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월세와 교통비로, 한달살이 값으로 이미 팔다리가 잘려 나간 숫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많이 가진 사람이네? 먼 옛날 성공에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좌절하지 않도록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은 왕이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왕도 아니고 반지도 없으니, 월급날엔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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