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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May 28. 2016

네온싸인

문명에 관한 짧은 고찰

어두컴컴한 도시의 해가 사라지고

하나 둘씩 형형색색의 해가 떠오른다    


환한 대낮보다 밝아지고

얼굴 허연 나방들은 각자의

불빛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화려한 거리를 감싸는 무색채의 광선

흐느적 흐느적 기어가는 굼벵이들을 더디게 만들고

무미건조한 거리를 가득 채우는 유색채의 신호

반짝반짝 빛나는 나방들을 달리게 만든다    


죽음을 향하여 달려드는 나방

죽음을 비추는 네온싸인    


붉은 빛은 피를 타고 흘러내리고

푸른 빛은 식은 땀을 타고 흘러내려

본래의 허연 얼굴은 온대간데 없고

현란한 조명 아래서 울긋불긋 변해간다    


달빛은 무명으로 영화에 출연하고

햇빛은 광고판을 빛내준다


밤하늘을 수놓던 별빛도

교과서 속 시험범위가 되었고

반딧불이의 빛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어둠이 깊어 갈수록 환해지고

날이 밝아올수록 어두워진다

네온싸인은 하나둘씩 꺼져가고

어두컴컴한 해가 떠오르면


나방들은

손전등을 켜고

텔레비젼을 켜고

각자의 불빛을 들고

각자의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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