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관한 짧은 고찰
어두컴컴한 도시의 해가 사라지고
하나 둘씩 형형색색의 해가 떠오른다
환한 대낮보다 밝아지고
얼굴 허연 나방들은 각자의
불빛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화려한 거리를 감싸는 무색채의 광선
흐느적 흐느적 기어가는 굼벵이들을 더디게 만들고
무미건조한 거리를 가득 채우는 유색채의 신호
반짝반짝 빛나는 나방들을 달리게 만든다
죽음을 향하여 달려드는 나방
죽음을 비추는 네온싸인
붉은 빛은 피를 타고 흘러내리고
푸른 빛은 식은 땀을 타고 흘러내려
본래의 허연 얼굴은 온대간데 없고
현란한 조명 아래서 울긋불긋 변해간다
달빛은 무명으로 영화에 출연하고
햇빛은 광고판을 빛내준다
밤하늘을 수놓던 별빛도
교과서 속 시험범위가 되었고
반딧불이의 빛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어둠이 깊어 갈수록 환해지고
날이 밝아올수록 어두워진다
네온싸인은 하나둘씩 꺼져가고
어두컴컴한 해가 떠오르면
나방들은
손전등을 켜고
텔레비젼을 켜고
각자의 불빛을 들고
각자의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