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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Dec 17. 2017

And, End

눈 위에 너를 소리없이 새겨 놓았다

아우성치는 바람이 아무리 땅을 흔들어 놓는다 한들

바짓자락을 붙드는 그 숨결 단 한줄기에

모질고 찬란한 채찍질 속에서도 언제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터였다


이별은 어슴푸레 든 새벽녘에 느닷없이 찾아와 창문을 두들기다가

이내 대문을 열고 제발로 나가는 것이었다

뜨거운 모래 위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지만

너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은 움직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라 했다

공간은 웅성거리는 고요함이라 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흩뿌리는 너에게

그래도 침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마지막이 아닌 것들은 언제나 끝을 물고 늘어지는 꼬리잡기같았다

잡다가 놓다가 보면 하나둘씩 안녕 하고 들어가 밥짓는 냄새밖에 나지 않는 고요한 골목길에

우두커니 있을 때면

지나가는 외로움의 소맷지락을 붙들하염없이 속풀이를 하다가

결국은


그림자 위

발자국을 살며시 얹어 놓고


켜켜이 쌓이는 눈 위에

새로 난 발길을 덧대어 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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