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잔소리 안 하잖아
"엄마, 믿어줘서 고마워."
수능 가채점을 마친 아들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순간 긴장했던 내 눈이 벌겋게 채워지고 졸아들던 응어리가 삽시간에 풀린 듯했다.
내가 아이에게 기어코 하지 않았던 '믿는다'는 말이 아들 입에서 나왔다.
학창 시절 내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믿는다'였다. 그리고 정말 듣기 싫었던 말이 '믿는다'였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해. 엄마는 너를 믿는다."
고등학생 때 이 말을 듣고 엄마한테 대든 적이 있다.
"내가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데? 믿는다는 말 부담스럽고 화나. 앞으로 나한테 믿는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되바라지게 받아쳤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해되기도 한다.
첫째, '알아서 잘하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해.'를 통해 "이미 잘하고 있어야 하고, 혹시라도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라고 전달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알아 들었다.
둘째, "엄마는 너를 믿는다."는 말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낼 때만 너를 믿는다."로 이해됐다. "조건부적인 믿음이 믿음인가?"라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셋째, 알아서 잘하면 잘하는 거지, 잘하겠지'만'은 결국 너는 "잘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해."로 해석됐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나에게, 통제하고 간섭하고 나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하는 의미가 내포된 모든 말은 다 듣기 싫은 잔소리였다.
아들과 둘이 살면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했다.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서로의 연애는 어떤지, 친구 관계, 학교와 회사 이야기 등을 공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엄마가 된 내가 아이에게 늘 했던 말이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해라."였다. 십수 년 동안 말해도 아이는 놀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먼저 하고 시한이 다가와야 해야 할 일을 급하게 해치웠다.
아무리 설득하고 얼러도 "하고 싶은 걸 먼저 해야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며 아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른인 척 한 엄마랑 사춘기 아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서로 아프게 당기고 버티며 이기려고 동동거렸다.
그 줄을 내가 먼저 놓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아이를 인정하고 자유를 주었다. 포기가 아니라 아이를 믿기로 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는 '엄마가 된 여자'가 되었다.
아이가 겪는 시행착오에 대해 관대해졌다. 내가 에돌아 간 길을 내 아이는 반듯하게 지나가길 바랐던 조바심을 내려놓았다. 내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성장했듯이 내 아이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받아들였다.
엄마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한두 번 조언을 해주고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된 내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아이를 지켜보고 혹여 내게 먼저 손을 내밀 때 가장 따뜻하게 그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아들이 돌아왔다. 도란도란 새실대는 아이가 돌아왔다.
반짝이는 꿈을 꾸고 태양 아래 몸집을 키워가며, 영글어가는 열매를 품에 넣은 아들이 내게 왔다.
아들이 고 3 , 1학기 중간고사 이후 3일 정도 게임만 한 적이 있다. 3일 동안 지켜보며 "네가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곧 있으면 기말고사에 수능인데 게임을 하는 게 말이 되니?"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날뛰는 분노를 재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보란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집안을 청결히 가꾸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챙겼다.
그렇게 3일 뒤 아침, 아들이 나보다 먼저 샤워를 마친 후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짐짓 놀랐지만 태연스레, "밥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응, 공부하려면 밥 먹어야 돼."라고 아들이 답했다.
그날부터 아들은 수능 때까지 거의 매일 6시에 일어나 6시 반에 아침밥을 먹고 학교나 스터디카페에서 자정까지 공부하는 루틴을 지켰다.
두 달 후 기말고사에서 국영수 모두 최초로 1등급을 받고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공부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아."
고 3 기말고사면 수시까지 이미 다 끝난 건데 "참 빨리도 알았다. 엄마가 중학교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을 때 진작 좀 할 것이지."라는 말이 덜컥 나올 뻔했다.
나는 '믿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믿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믿고 싶은 건, 온전히 믿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드는 감정이다. '믿는다'는 말을 곱씹을수록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남았던 이유가 아마 완벽하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올 초에 아들과 술 한잔 하면서 벌써 옛날 얘기라고 작년 일화를 꺼냈다.
"고 3이 3일 내내 게임만 하는데 잔소리 안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힘들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했어. 그래서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한 거잖아. 믿어줘서 고마워."
"아들, 잔소리가 왜 듣기 싫은 줄 알아? 잔소리는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야. 나를 완전하게 믿지 않는데 당연히 기분 나쁘지."
"엄마는 잔소리 안 하잖아."
아 그렇지. 내가 잔소리 안 하지.
목표 달성.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