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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r 03. 2024

마음체력

마음의 거리를 잴 수 있나요?

"어디 가는 길이니?"

차에서 전화를 받아 드니, 벌써 알아챈 친구 정안이.

"예전에 캐나다에서 만났던 친구들 만나러 달려가는 중!"

"체력이 대단하다. 홍길동도 아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체력은 좋지, 내가. 마음체력!"

"멋진 체력!"


어제도 학교 일로 2시간을 달려갔다가 돌아왔는데, 쉬는 줄 알고 전화한 친구는 피곤하지도 않냐며 걱정을 한다. 허리와 목 디스크로 여기저기 뻐근하고  조금 쑤실 뿐. 나는 괜찮다. 조금만 피곤하면 면역력이 약해 입술이 부르트는 나는 괜찮다. 몸이 아니라 마음은 괜찮다.


방학 중이지만 일이 있어 며칠 내내 장거리를 출퇴근하며 다녔다. 교실에 있던 몇 년 동안 묵은 책이며 교실 짐을 옮기느라 학교도 엉망, 짐을 집에 가져오니 집도 난리부르스. 그 난리통에서 벗어나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20년도 훌쩍 거슬러 올라간 어느 해에 캐나다에서 만난 이들. 결혼 전에는 종종 만났는데 서로 사는 곳이 멀어지니 소식만 전하고 살았다. 일부러 여행지를 그들이 사는 곳으로 잡아야 만날 수 있었다. 회사일로 서울에 잠시 온 친구가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시동을 켜고 달려간다.


 주전부터 남편이 지인들과 함께 만나서 점심을 먹자고 했는데, 할 일도 많고 너무 피곤하다며 내내 미루던 터였다.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나를 두고 남편만 나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던 나갈 채비를 하니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할 말 많은 듯 쳐다본다,  


"여보, 나한테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얘기해 놓고 좀 그렇네. 당신이 친구 만나러 가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냐."


미안했다. 내가 남편에게 먼저 상황 설명을 했어야  했다.

'여보, 당신이랑 얼마 전부터 한 약속을 깨 놓고 친구 만나러 가는 건 너무 미안해. 자기도 알다시피 도희랑 채원언니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매년 보기도 힘들잖아. 오늘 아니면 몇 년 동안 못 만날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요즘 빡빡했던 일정으로 몸이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애정하는 그녀들을 볼 생각으로 이미 마음에너지 충전하여 달려가고 있었으니 어쩌랴.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말을 꺼낼까 남편 눈치만 보고 있다가 상황 설명 없이 다녀온다고 해 버린 것이다.


남편이 서운할 만하다. 우선순위가 당신의 약속이 아닌 것에. 남편의 지인은 나와 연결되어 새로운 관계를 맺은 좋은 분들이지만 마음이 그리 가깝지 않다.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이들에게 기울 수밖에.


다행히 남편 앞에서 꼬리를 바짝 내리고 미안한 표정을 한껏 지었다.

"이번엔 미안해. 제대로 말도 없이 당신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나만 생각했어. 다음에 같이 만나자. 다녀올게."

맘이 풀렸는지 등을 토닥안아주며, 잘 다녀오라고 쿨하게 보내주는 남편 반응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차를 타고 달려가는 길,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주유소에서 틀어주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내 안에도 에너지를 담뿍 채웠다.


신기하기도 하다. 어젯밤 피곤에 절어 뻗어있던 내가 이리도 가벼운 몸이 되어 날아다니다니!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마음은 내 몸 어딘가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이는지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약속 날짜를 미루게 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굳이 그런 이들과 인연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멀리 있어도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달려가고 싶은 이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그곳에 있다면 멀리 있어도 멀지 않은 거리에 마음이 닿아 있다.



2시간 달려 도착한 채원 언니네 근처에서 상봉한 우리. 폴짝폴짝 뛰며 셋이 손을 잡고 빙빙 돌았다. 스무 살 갓 넘은 그때의 우리로 돌아갔다가 우여곡절 많았던 40대를 넘나들며 서로의 고갯길을 지나 함께 울고 웃었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해 우리는 더 진한 국물을 우려냈다.

나눌수록 더 단단해지는 연결된 마음. 서로 인정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위로는 다음에 만날 마음 체력에 보태질 예정. 어느 날 보고싶으면 훌쩍 달려갈 수 있는 다져진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짧지만 찐한 여운을 갖고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서로 멀리 있지만 각자의 떨림으로 멀리 가 닿아 울림을 함께 전하고 나누는 우리가 되길!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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