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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r 31. 2024

여기저기 꽃으로 피어나세요

있을 때 잘하기

며칠 전에 새로 가입한 연구회 첫 모임이 있는 날이라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흥분된 나를 보며 남편은 남자 친구 만나러 가냐고 묻는다.


"오늘 이거 입을까?"

"어때? 괜찮아?  춥겠지?"

생일에 J언니에게 선물 받은 검정치마를 입고(그동안 풀리지 않던 쌀쌀한 봄날씨로 못 입었더랬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모임에 가면서 나를 뽐내고 싶어서는 아니다. 내겐 명품백도 없고 비싼 옷도 없다. 다만 좋은 인상으로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건 사람 심리 아닌가! 


어떤 분들이 모일지 모른다.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서 오신다는 사실 밖에 없다. 리고 연구회 회원 중에는 내가 인스타 팔로우를 하며 애정하는 내겐 연예인 같은 선생님이 몇 분 계시다는 것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착한 지하철 역에서 다시 한번 약속장소를 확인하다가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확인하다가 노래도 나도 멈추고 말았다.

문자로 받기에 너무 무거웠던 소식

소희 아버님은 늘 건강하셨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아버님은 어머니와 여행을 즐겨하셨고, 은퇴 후에도 택시 운전을 하시며 일하셨다. 쉬시는 날에도 언제나 어머님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할 정도로 활동적이셨다. 가장 최근에 직접 뵌 건 소희 아들 돌잔치니까 10년도 훌쩍 넘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 부모님을 뵌 지가 꽤 되었다. 학창 시절엔 친구네 놀러 가는 일이 잦았으니 자연스레 뵈었는데 결혼하고 따로 사니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들리는 이야기로 부모님의 안부를 전할 뿐이었다.


문자로 받은 부고 소식은 낯설었다. 그 사이 아버님께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통화했을 때에도 아버님 건강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던 터였다. 올해 초에는 가족들과 어머니 칠순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10여 년 전 뵈었던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늘 그 모습일 거라 기억에 박제되어 있었나 보다.


주책맞게 지하철을 기다리며 눈물이 터져버렸는데 그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진다. 여기저기 친구에게 전화가 오니 내 눈물은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눈물을  겨우 삼키고 진정시키려는데,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 다시 터진 눈물은 친구의 눈물과 뒤섞이고 떨리는 목소리를 더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오히려 나를 다독이며 나를 위로하는 친구. 플랫폼 어둔 유리창에 누가 봐도 울었는지 알 정도로 발개진 눈이 비쳤다.


입고 온 검정치마. 이대로 친구에게 달려가야 할까. 생각이 스쳤다. 친구들도 급작스럽게 받은 연락이라 당장 달려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길 떠나오거나, 일 때문에 제주도에 출장 가 있다고 했다. 오늘 저녁 되는 친구들은 가기로 하고, 일부는 내일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눈물이 잦아들자, 마음을 잡고 친구에게 문자를 남겼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오히려 소희가 가진 아픔을 더 건드릴까 봐 조심스러웠다. 내일 가서 손 꼭 잡아주고 안아줘야겠다. 아버님 가시는 길에 함께 해야겠다.


시간이 흐른다. 그 누구도 세월을, 청춘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우리도 나이가 드나 보다. 결혼식, 돌잔치처럼 축하할 일보다 위로할 일이 훨씬 많아진다. 아파서 병문안을 가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장례식을 가는 일이. 지인들의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말에 진심으로 걱정되고 마음이 아프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남 일 같지 않다. 부모님은 내 곁에 영원히 계시지 않다는 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음을 안다.


얼마 전 진이가 생일날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식사하러 간다고 연락이 왔다.

"진아, 나도 너희 부모님께 널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다.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어."

"그럴까? 그럼 우리 양쪽 부모님 모시고 상견례 한번 할까?"

"우리 무슨 사이?"

"우린 사랑하는 사이. 흐흐흐"


나의 부모님도 잘 챙기는 동시에 내 지인들의 부모님께 생전에 인사드리고 싶다. 오래 뵙지 못하고 장려식장에서 사진으로만 면 너무 슬프고 죄송할 것만 같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낳아주신 감사한 분이 아니던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로 힘들어할 소희에게 지금은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부모님을 잃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소희를 만나러 갔다. 아니,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길을 나섰다. 소희 앞에서는 많이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장례식장 입구에서 어머니와 먼저 마주쳤다. 어쩌나. 어머님이 따뜻한 손을 맞잡고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인사를 제대로 못했어. 그게 너무 불쌍해."

"어머니..."

난 어떤 대꾸도 못하고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소희는 슬퍼 보였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아 보였다. 마음은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안다. 내가 알던 초등시절 여린 친구가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작은 체구의 소희 아이들이 어깨 빵빵한 양복을 입고 어색하게 나를 맞았다. 소희와 달리 아들 형제는 둘이서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였다 . 아버님이 보시고 슬프지만은 않으실 것 같았다.


기억 속에 그대 로이신 아버님 사진을 보니, 마음이 저리도록 아팠다. 평소 건강하셨기에 가족들은 더 슬픔이 클 것이었다.   


혜정이가 먼저 와서 소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식사도 할 수 있어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우리는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라고 휴지를 건네줄 뿐이었다.


"일본에 가시면서 아버지가 두바이도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거긴 못 가겠구나 하면서 장례식장을 왔어."

"어떤 순간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아쉽고 미안한 일만 생각날 거야."

"그래도 이번에 가족이랑 같이 잘 다녀왔다 싶어."

쌍둥이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은 혜정이도 이야기를 덧붙인다.

"잘해드려야 하는데, 난 언제 효도하지? 나 때문에 맨날 고생하시고, 쌍둥이 키우시느라 나이 드셔도 쉬지도 못하시고."


누구에게나 이별의 순간이 온다. 부모님을 잃는 슬픔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언제나 슬프고 앞으로도 내내 그리울 것이라는 것 밖에.


"소희야, 아버님, 좋은 곳으로 가실 거야. 너무 잘 살아오셨으니 편안하게 가실 거야. 기도할게."

"고마워, 정말."

"네가 좀 괜찮아졌을 때 아무 때고 놀러 와. 어머님도 꼭 모시고 와.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고 싶어."

검은 상복을 입은 내 친구 소희를 꼭 안아주고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잠시 머물렀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차도 한 잔 마시고, 햇살 드는 의자에 앉아서 하늘도 쳐다봤다.


꽃들이 가득 모인 곳에 봄이 활짝 폈다.

아버님을 보내드리며 새 생명을 심었다.

어딘가에 피어나실 거라고 믿으며.


내게 딱 들어온 데이지. 가격으로 네 가치를 정하지 않을게.
다 데려오고 싶을만큼 넘 예뻤다
안타깝게도 그린썸이 아니기에 감당할만큼만 데려오기로

아버님, 집 앞마당에도, 소희 집 앞에도, 가시고 싶었던 두바이에도 훨훨 날아가 피어나세요.


"우리 소희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어머님도 뵈러 올게요.

걱정 마시고 좋은 곳으로 편히 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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