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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May 15. 2024

스승의 날에 찾아가는 카네이션

1학년은 이벤트 전문입니다.


장미꽃 한 송이!

학교에 가자마자 한 선생님이 스승의 날 기념이라며 꽃 한 송이를 전해주신다. 행복한 아침이다. 손에 들려진 꽃은 계단을 오르며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게 했다.


최근 들어 내내 저학년이나 1학년 아이들을 도맡아 해 온 나로서는 늘 다 큰 제자가 찾아오길 바라는 건 쉽지 않다. 예쁜 아이들을 반짝 키워서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금세 나를 잊고 커간다. 같은 학교에 있다면 교실로 찾아오거나 교실밖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학교로 가면 간혹 학부모님들이 연락을 주시곤 했지만 지역을 옮겨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도 끊어진다.


뭔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6학년을 주로 맡았던 교사들을 보면, 특별한 날 교복을 입고 찾아오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속상하지 않다. 초임 시절 아이들이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가슴 가득 달았던 기억이나, 칠판 가득 아이들이 꾸며놓은 스승의 날 편지들에 가슴이 먹먹했던 행복했던 추억들도 내 안에 소중하게 담겨있다. 지난해 만났던 아이들이 정성껏 들고 온 편지들은 사진으로 내 보물상자 안에 담겨있다. 한글을 겨우 깨치고 엉뚱한 받침이 있는 글씨에 안에 담긴 정성스러움과 귀여움을 덤으로 받은 기쁜 감정이 편지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럼에도 스승의 날은 유쾌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가끔 보내온 선물을 돌려보내야 하는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 보내온 선물에 더하여 받을 없다는 거절 편지에 담은 죄송함.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샀다는 작은 선물도 아이 손에 도로 들려 보내야 하는 난처함.



'선물'이란 타인에게 고마운 뜻으로 주는 것이다. 인정을 담아 주는 물건이나 그것에 상응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촌지나 뇌물이 될 수 있으니 선물이 독이 되는 순간이다. 그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기에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고마움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받기보다는 부드러운 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죄송해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요즘에는 다행히 학부모님들도 잘 알고 계셔서 선물을 학교로 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스승의 날'. 언제부터인가 내 맘 속으로 가르치는 대상에게 축하를 받는 날이기보다 우리들의 축제처럼 서로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날로 정했다. 주로 1학년을 맡았기에 초등학교의 꽃들인 1학년을 대동하여 이벤트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학급을 맡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감사 편지를 받기도 하며, 스승의 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학교 안에 계시는 전담 선생님, 보건 선생님, 영양 선생님, 도움반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은 편지를 받는 일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그런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되었다.


5월 15일은 석가탄신일과 겹치는 휴일이기에 이틀 전부터 자르고 오리고 붙여서 카네이션을 만들기도 하고,편지지를 꾸며 편지를 썼다. 미리 준비해 둔 비타**에 우리만의 재료를 넣어 스승의 날 기념 음료로 둔갑시켰다. 마지막 선물은 카네이션 머리띠로 마무리.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갔다.


아이들이 만든 사랑 음료

1학년들의 손은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기에 카네이션은 하나하나 잘라주어야 하고, 잎도 마찬가지. 캘리그래피로 꾸미는 엽서는 물감을 쓰느라 책상이 난장판이 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몇 번이고 설명해 주며 완성해 나갔다. 여전히 글씨 쓰기에 서툰 아이들이 엽서 뒷장에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들을 보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이들은 하루에 이 많은 것들을 완성해 내는 과정을 겪으며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밀스럽게 전달할 생각에 들떠서 진심으로 열심히 참여했다.

'이런 천사들이 다 있나!' 할 정도.

교장선생님께 힘들지만 쪼끔 노력해보라는 1학년 조언


교장실, 교무실, 유치원, 보건실, 도서관, 과학실, 도움반 교실, 급식실, 2학년에서 6학년 교실까지. 아이들 수만큼 모든 교실을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는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얘들아, 준비됐지?"

"네네 선생님!"

"좋아, 가는 길에는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소곤소곤! 알지?"

"네에!"


똑똑똑!

영문도 모른 채, 교실을 향해 바라보는 선생님.

"선생님,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네? 네, 들어오세요."

나 혼자 들어가는 줄 알고 바라보다가 카네이션 군단 스무 명이 교실로 와르르 쏟아지는 걸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 진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얘들아, 시작!"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각 교실을 맡은 대표 카네이션 군단은 카드를 전하고, 스승의 날 음료를 전한다.

사진기를 찾아 아이들을 찍어대는 선생님, 입을 가린 채 감동을 드신 선생님, 허허허 웃기만 하는 선생님, 흐뭇하게 미소를 띠는 선생님, 아이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하트를 날려주시는 선생님.

"세상에, 생각도 못했어요.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요?"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기뻐하시는 모습에 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은 감동 한가득. 상기된 얼굴로 교실에 도착. 다음 코스를 위한 준비.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드리니 어때?"

"왠지 신나요, 기분이 좋아요, 기뻐요,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시니까 너무 좋았어요. 선물을 드리니까 뿌듯해요."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이다. 나눔의 기쁨을 느끼는 것.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얘들아, 신기하지? 우리가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드렸는데 우리가 더 기쁜 마음이 들지? 사실은 우리가 선물을 드렸지만 그동안 학교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들을 받아왔단다. 그리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오히려 주는 기쁨을 선물 받은 거야."


"자, 이제 다시 가야 해! 준비됐니?"

"네네, 선생님!"

"출동!"


이 땅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가르침의 보람을 느끼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그 자리에 계셔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매 순간 애써주시는 우리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본다.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하지 못하는 마음을  아이들의 힘을 빌어 함께 전해본다.  



오늘은 당신의 날!

스승의 날입니다.


늘 함께 있으면서

제가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들께

오늘이 가기 전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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