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자마자 한 선생님이 스승의 날 기념이라며 꽃 한 송이를 전해주신다. 행복한 아침이다. 손에 들려진 꽃은 계단을 오르며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게 했다.
최근 들어 내내 저학년이나 1학년 아이들을 도맡아 해 온 나로서는 늘 다 큰 제자가 찾아오길 바라는 건 쉽지 않다. 예쁜 아이들을 반짝 키워서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금세 나를 잊고 커간다. 같은 학교에 있다면 교실로 찾아오거나 교실밖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학교로 가면 간혹 학부모님들이 연락을 주시곤 했지만 지역을 옮겨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도 끊어진다.
뭔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6학년을 주로 맡았던 교사들을 보면, 특별한 날 교복을 입고 찾아오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속상하지 않다. 초임 시절 아이들이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가슴 가득 달았던 기억이나, 칠판 가득 아이들이 꾸며놓은 스승의 날 편지들에 가슴이 먹먹했던 행복했던 추억들도 내 안에 소중하게 담겨있다. 지난해 만났던 아이들이 정성껏 들고 온 편지들은 사진으로 내 보물상자 안에 담겨있다. 한글을 겨우 깨치고 엉뚱한 받침이 있는 글씨에 안에 담긴 정성스러움과 귀여움을 덤으로 받은 기쁜 감정이 편지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럼에도 스승의 날은썩 유쾌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가끔 보내온 선물을 돌려보내야 하는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보내온 선물에 더하여 받을 수 없다는 거절 편지에 담은 죄송함.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샀다는 작은 선물도 아이 손에 도로 들려 보내야 하는 난처함.
'선물'이란 타인에게 고마운 뜻으로 주는 것이다. 인정을 담아 주는 물건이나 그것에 상응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촌지나 뇌물이 될 수 있으니 선물이 독이 되는 순간이다. 그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기에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고마움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받기보다는 부드러운 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죄송해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요즘에는 다행히 학부모님들도 잘 알고 계셔서 선물을 학교로 보내는 일은 거의 없다.
'스승의 날'. 언제부터인가 내 맘 속으로 가르치는 대상에게 축하를 받는 날이기보다 우리들의 축제처럼 서로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날로 정했다. 주로 1학년을 맡았기에 초등학교의 꽃들인 1학년을 대동하여 이벤트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학급을 맡은 선생님은 아이들의 감사 편지를 받기도 하며, 스승의 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학교 안에 계시는 전담 선생님, 보건 선생님, 영양 선생님, 도움반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은 편지를 받는 일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그런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되었다.
5월 15일은 석가탄신일과 겹치는 휴일이기에 이틀 전부터 자르고 오리고 붙여서 카네이션을 만들기도 하고,편지지를 꾸며 편지를 썼다. 미리 준비해 둔 비타**에 우리만의 재료를 넣어 스승의 날 기념 음료로 둔갑시켰다. 마지막 선물은 카네이션 머리띠로 마무리.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갔다.
아이들이 만든 사랑 음료
1학년들의 손은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기에 카네이션은 하나하나 잘라주어야 하고, 잎도 마찬가지. 캘리그래피로 꾸미는 엽서는 물감을 쓰느라 책상이 난장판이 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몇 번이고 설명해 주며 완성해 나갔다. 여전히 글씨 쓰기에 서툰 아이들이 엽서 뒷장에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들을 보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이들은 하루에 이 많은 것들을 완성해 내는 과정을 겪으며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밀스럽게 전달할 생각에 들떠서 진심으로 열심히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