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방울 May 20. 2024

김밥에 밥이 없어?

이름하여 난단백 김밥

운동을 시작한 지 7일 차.


처음으로 시작하는 헬스는 고등학교 때 친구와 방학 때 한 달 해 본 기억 말고는 없다. 최근에는 땀 흘리며 운동해 본 기억도 없다. 엠블런스에 실려 갈 정도로 허리 통증을 겪고도 치료 후에 운동해야지 하는 마음만 5년 넘게 배부르게 먹었다.

요가 말고는 격렬하게 운동해 본 기억이 없어서일까?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이제야 피트니스 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것도 3번이나 상담만 받고 '생각해 볼게요!' 하며 돌아섰던 5개월의 시간.

남편과 서로의 손을 이끌고 반강제적으로 갔고 PT를 받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루면 나이들어 서서 걸어 다닐 힘이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재활 운동이 병행되니, 근육이 다치지 않으려면 정말 잘 먹어야 합니다."

아침 계란 3개, 바나나, 오렌지

점심 밥양만 조금 덜어내고 단백질 많이 먹기

저녁 정상적인 식사+난단백100g

운동 후 아몬드 10개, 딸기 15개, 바나나 1개,오렌지 1개


"선생, 난단백이 뭔가요?"

"저녁에 노른자까지 넣어서 먹으면 단백질량이 많을 수 있으니 흰자만 들어있는 제품을 드시는 게 좋아요."

계란을 먹어온 지 어언 40 하고도 N년째 인생. 흰자만 모아진 난단백은 처음 들어보았다. 말 잘 듣는 학생은 남편에게 난단백을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출처 쿠팡이미지

흰자만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노른자 없는 흰자는 앙꼬 없는 찐빵이고, 팥 없는 팥빙수, 김 빠진 콜라, 날개 없는 비행기... 또 뭐가 없을꼬. 이렇게 식상한 표현밖에 할 수가 없지만 난단백으로만 만든 스크램블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비리기도 하고 밍밍했다. 계란에서 노른자가 빠진 흰자라니!


남편은 유통기한도 짧은 난단백 1kg짜리를  우유팩처럼 생긴 난단백을 3통이나 시켰다. 내일까지 남은 2통을 어찌 다 먹나? 맛도 맛이고 저 많은 양을 아깝게 쏟아버릴 수도 없고. 

남편대신 애꿎은 난단백을 노려보았다.

"넌 단백이냐? 난 주부다!"


야심차게 한 통을 꺼냈다. 아이들은 이 시간까지 한밤 중이고, 일어나면 아침 식사로 이것을 주리라.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머리엔 다 해치우겠다는 의지를 두른다. 달궈진 펜에 투명한 흰자를 두르니 금세 둥근달이 떠오른다.

'오우!'

7장을 다 만드니, 난단백은 거의 소진되었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한 통 남았어. 그건 내일 운동이 끝난 후, 처리하기로 하고! 1통을 이렇게 쓴 것에 대해 기쁜 탄성을 질렀다.


김에 하얀 보름달을 얹어 넣고, 시금치, 크래미, 어묵, 구운 파, 단무지를 넣고 둘둘 말아낸다. 밥을 넣지 않아도 멀리서 보면 흰색 계란이 밥처럼 제법 그럴싸하다. 난단백으로 계란을 두껍게 부쳐내길 잘했다. 감쪽같다. 먹으면 금세 탄로 날 맛이겠지만!

난단백 김밥 들어봤어요?


자르다가 툭 터진 김밥 꼬다리를 얼른 집어서 입에 넣어보니, 맛도 괜찮다. 입안에 탄수화물이 감칠 맛나게 붙어 탄수화물 씹는 식감이 다르지만 단백질도 섭취하고 탄수화물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밥 재료가 들어가서 영양도 맛도 괜찮으니 대만족!

그보다 고민스러웠던 난단백 1kg을 소진했으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1kg의 무게만큼 내 마음을 누르더니 이렇게 쉽게 먹어치우게 되어서 날아갈 듯했다.


"엄마, 김밥에 왜 밥이 없어?"

"그냥 먹어."

"어? 뭐야? 맛있는데?"


일요일 아침.

"밥 솥에 뚜뚜 밥이 다 되었습니다. 밥을 저어주세요!"

"밥은 저어주겠으나 오늘 아침밥은 되었다, 쿠쿠! 넣어 둬, 넣어 둬."


난단백, 이제 사지 않으리. 노른자를 따로 분리해 두었다가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내일은 난단백 하얀 계란찜은 어때신지요?

아직 저에겐 1kg의 난단백이 남아 있사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두둑 빗소리, 후루룩 라면 브런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