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렸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엄마 품에 푹 싸여 사랑받을 새없이 고사리 손으로 일손이 되었다.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어 젊은 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고생하시며 살아오셨다. 그렇게 떠나 타향살이 하던 젊은 날은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리운 고향, 보고픈 친구들, 나고 자라 익숙한 동네 어귀, 흙냄새,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밤하늘, 마을을 지키는 나무들. 당신을 온몸으로 안아주던 고향의 향기가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을까.
고된 하루를 접으며 좁은 방에 몸을 누이고 서러운 눈물을 떨구며 잠이 드셨을 것이다. 뜨끈한 밥 한 그릇도 식당에서 급히 먹어치우고 시간을 재촉하며 몸을 움직이셨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쓰신 아버지의 노래는 쓰디쓰고 아프지만 아름답고도 귀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별이 되어 떠나가실 때마다 아버지의 어깨는 점점 더 힘없이 내려간다. 사는 게 덧없다고 그 친구가 어땠는지 아냐며 추억을 꺼내 놓으시다가 아롱아롱 떠오르는 그리운 고향 친구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아버지의 한숨이 땅에 닿는다.
#별이 된 친구
수일 전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소식이 왔다. 가는 길에 수없이 보았지만 그저 불쌍하다, 안 됐다. 인생이 그런 거지 애원한 마음에 눈시울만 젖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묘하다. 그런 기분이 아니다.
'나도.'라는 생각. '나도 정리하고 준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
어떤 위험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기백과 용기 있게 자신만만했던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젊은 시절.
만약 두 사람이 한 시에 벼락을 맞아 죽으면 '한 사람은 잘 갔다' 혹은 '그 사람은 아까운 사람이야 살아야 하는데'라고 했다면 후자를 택하고 살고 싶었다. 한점 부끄럽 없이 양심을 속이고 살지는 않았는지 깊게 반성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고 했던가. 죽음은 무섭지 않다. 마지막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을 뿐이다. 당당하게 열심히 살았노라고 구천에 고하고 싶다.
문득 천상병의 귀천이란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2023년 아침 창보 철수 씀. (심우와 창보는 아버지가 만드신 호인가보다. 어떤 뜻이 있는 호일까?)
점점 죽음이라는 단어가 아버지에겐 다르게 다가오시나 보다. 젊은 내가 주변의 죽음을 접하며 느끼는 것과는 다른 마음이 느껴진다. 당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당신. 내게는 늘 영원할 것 같은 당신. 그렇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알아서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시큰하게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