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읽으면 지금 느끼는 이 공간의 느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이어지면 참 멋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도 남자이고 세월이 가는 소리에 쓸쓸해지고, 특히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마음이 가을가을 하셨나 보다. 아버지가 찬바람에 쓰신 노래를 자판 위에서 연주해 본다. 아버지의 노래 가사는 당신의 노래였을까? 열여덟의순수한 청년에게, 스무 살의 젊은이에게 왔던 잊지 못할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을까? 그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가을에 쓰는 아버지의 사랑 노래(1)
무등산 산허리에 안개비 내리고
뒷동산 꾀꼬리는 사랑놀이 하는데
실버들 바람안고 하소연 한다
여울 건너 떠난 사랑 언제오냐고
바람아 구름아 말좀 해다오.
실개천 굽이굽이 아지랑이 춤을 추고
휘어져 흐르는강 실개천 끼고 돌아
진달래 몽울몽울 봄소식 알려 주고
내꿈을 보았는지 원앙이 춤을 춘다
스르르 잠든 영혼 신선이 울고 가네
안개속 추억으로 사라져가네
#가을에 쓰는 아버지의 사랑 노래(2)
사랑했던 그사람 약속했던 그 사람 멀리 떠나고
멀리서 바라보며 서산해지고
그리움에 지쳐우는 애달픈 사랑이여
이것이 내 인생에 전부입니까?
까치야, 까치야 우지를 마라.
새벽마다 나를 나를 울리지 마라.
#가을에 쓰는 아버지의 사랑 노래(3)
사랑은 한 줄기 해바라기 같은 것
내 가슴에 못 박아 상처만 남겨놓고 떠난 사람아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이 난다
내 잘못이 너무 많아 원망 못하고
흐르는 세월 속에 잊어야지 하면서도
서산에 낙조지고 뭉개구름 피어나듯 그사람이 생각난다
아~ 아~ 가슴이 우네 가슴이 운다
살지 못할 운명이라 헤어지던 곳
옛 추억이 그리워서 찾아왔지요
차라리 못살바엔 죽어버리지
둘이서 울며불며 헤어지든 곳
지금도 밝은 달은 물을 비추네
달그림자 석바위는 변함없네
#가을에 쓰는 아버지의 사랑 노래(4)
<세월가도 내 사랑은 영원하리>
비오고 바람불면 낙엽지고 쓸쓸하네
그사람 나와같이 외로움을 달래겠지
옛추억 그리면서 미움미움 삼키면서
그옛날 같이같이 사랑사랑 나눈시절
행복을 꿈꾸면서 눈을감고 맹세했지
사랑이 미움되어 강물되어 흘러가네
세월이 약이되어 아픈상처 봄눈일까
서러운 눈망울이 가물가물 생각나네
오솔길 두손잡고 뭉게구름 바라보며
영원히 변치말고 오래오래 살자든님
모두가 꿈이였네 맹세맹세 하였는데
뒷동산 바위에서 눈을감고 맹세했지
아쉬운 우리사랑 너와나의 잘못인가
쓸쓸히 낙엽밟고 미련두고 간사랑아
2005년 10월 21일 저녁에
심우 씀.
아버지에게도 젊은 시절 사랑이 있었겠지?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젊은 날 아팠던 사랑은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어서 시로 노래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당신의 젊은 날에 떠난 사랑에 가슴아파 울던 가슴 시린 이야기는 여든 노인의 가슴에도 살아있으리라. 직접 들어보지 못한 당신의 사랑이를 언젠가 들어볼 날이 있을까. 딸냄이가 아버지의 오랜 일기장을 들춰보고, 당신 대신 이 가을에 사랑 노래에 빠져있다는 것을 당신을 알지 못하겠지. 그러고보니 나도 아버지에게 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없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공주, 밥 묵었나. 학교 잘 댕겨왔나. 고마 자라.' 이런 이야기들을 가장 많이 나누지 않았던가.
그렇지, 우리 아버지는 경상도 사나이. 이렇게라도 아버지의 작은 조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듯 아버지의 글을 마주하며 당신을 생각하는 지금의 시간이 내겐 벅찬 시간이고 소중한 시간이다. 당신이 떠올렸던 그 시절로 찾아가 아버지 몰래 젊은 날의 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