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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Oct 11. 2024

말과 오해

풋맷돌아, 내 말 좀 들어보렴.

1월 11일 철수의 낙서



일은 하면 할수록 몽글어지고 말은 하면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딸을 시집 보낼 때 봉사 삼년, 귀먹어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 했다. 

그것도 마음이 안 놓여 쌀을 갈때 쓰는 풋맷돌을 넣어주며 딸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도 풋맷돌에 대고 말을 하라고 부탁을 했을 정도였다. 


사회 생활에서 조금 친하다고 무심코 던진 말이 와전되어 돌아오는 것은 오해와 때론 지울 수 없는 누명을 입고 신의가 파기되어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같이 대화하고 상대적으로 해놓고 뒷북치는 비겁한 인간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이중인격자라고 한다. 


침묵은 금. 하지만 매사에 조심을 하려해도 인간이기에 실수는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을 생각해서 해 준 말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법이다. 조금 깊이 이해하고 성찰했으면 좋겠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조금만 방심하며 스파이니 간신이니 좁쌀이니 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한 자락 깔고 노는 놈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병주고 약주는 놈 말이다. 말만 잘해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다.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아버지의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해 차별받은 조선 시대의 여인들. 오히려 고려 시대에는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재혼도 자유롭게 하고 재산도 아들과 구별없이 균등하게 상속 받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여성의 지위. 결혼하면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림을 도맡아 해야 했고, 남편이 죽어도 재혼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교육의 시회도 사회 생활도 하지 못했고, 시집살이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가사와 육아는 물론 하루 종일 일을 해야했던 고달픈 삶. 출가외인이라 하여 결혼을 하면 마치 남이 되는 것처럼 남의 집 사람으로 여기고 언제나 할말도 하지 못하게 했던 조선의 여인. 그 시대의 배경으로 여전히 어느 집에서는 공존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아버지 글에서처럼 시집을 보내면서도 딸의 마음이나 상황보다 시집에 잘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며 엄격한 통제와 억압적인 사회상이 묻어난다. 세상에 답답하고 답답한지고. 속이 얼마나 답답했을고. 맷돌에 갈아 넣고 꼭꼭 숨겨야하는 여인의 한스러운 사연들.


시집가는 딸에게 풋맷돌을 넣어주었다는 말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여든 노인의 글을 읽는 것이 재미있다. 덕분에 시대별로 달랐던 여인들의 삶도 생각해보고 말이다. 아버지 글 속에는 처음 보는 낱말도 종종 보인다. 경상도에서만 쓰이는 사투리도 섞인 채. 시대가 다른 소설, 고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처럼 아버지의 글도 그러하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말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또는 낯선 공간에서 별 뜻없이 했던 말 한마디로 오해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로 인해 사람들과 갈등을 겪게 된 여러 사연이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일들 말이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기만 하셨던 분이 아니라 입바른 소리를 잘하셨던 아버지에게 왠지 그런 일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에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말하는 이는 최대한 적절한 어휘를 사용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언어의 크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각과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테니 말이다. 


아버지가 쓰신 마지막 문장에 물음표가 붙었다. 무슨 뜻일까?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하게 되고 오해를 쌓게 되니 말이 많아서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된다는 의미이려나.

아버지의 표현도 그저 재미난다. 아버지가 직접 쓴 글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 몇 장이고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짧게나마 짐작해 본다. 


요즘 분이 아니시니 당신만의 단단한 사고의 틀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정치 이야기는 그러하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쩌다 각자의 정치색이 드러나면 한발 물러나 서로에게 예민하게 굴게 되기도 한다. 아부지한테 국수도 한 그릇 못 얻어먹고 쫒겨날 수도 있다. 되도록이면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어야 한다. 대신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에는 귀기울여 듣고 그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아버지가 옆에 계셨다면 아버지가 쓰신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아부지, 침묵이 꼭 금인 것은 아니지 않나요? 오히려 침묵은 불통의 원인이 되고 오해를 더 깊게 만드는 화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남편과 다투고 서로 마음도 표현하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지나치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되지만 말이에요. 아유 말이 많아도 적어도 문제예요. 그러고 보니 말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적당한 중도를 지키는 것은 참말로 중요해요. "





"아부지, 어릴 때도 그렇고 서로 만나서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 글을 마주하고 대화다하 보니 아버지와 마주하고 대화가 하고 싶어져요."


"죄송해요, 아부지. 아부지가 쓰신 글보다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셨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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