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슬기로운 자취 생활

폐관수련을 할 수 있는 게 불행한 걸까?

by 폐관수련인

베를린에 있으면서도 집에 꼭 박혀 있는 내 모습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나가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나를 데리고 처음으로 독일 레스토랑에서 학세를 먹여주었는데, 그때가 타지 생활 1년 반이 되어서였고, 우버 이츠를 통해 시켜 먹어본 건 2년 반이 되는 날이었다. 판데믹이 그렇기도 했지만, 그냥 돈 쓰는 게 싫어서였다. 물론 가족들처럼 나도 맛을 내기 위해 요리 실력을 올리고 싶었던 것도 이유였다.


가족들은 내가 혼자 먹고사는 것보다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걱정을 크게 했었다. 가족들이 신경 쓰지 못하게끔 내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미국이 아닌 독일에 온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한국 사람들을 가까이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려 했었을 것 같다. 언어 또한 그러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형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하셨었다. 친 가족들 중에 공부든 인생의 방향이든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헤쳐나가는 것에 도움 되지 못해 항상 미안함을 느끼셨는데, 나는 내 부모님이 넌지시 보여주신 행동들에서 오히려 공부가 많이 되었었다. 가끔 부모님께서 내가 조금이나마 조언받고 자랐다면 더 좋은 학교나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답안이 있다고 해서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틀렸던 문제들은 내가 당시에 답안을 보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시간을 앞당겨 경험치를 제외하기에는 내 능력에 맞지 않은 방법이었다. 직접 겪어봐야만 이해할 정도로 경험들이 부족했다. 이 자취생활도 그렇다. 만약 내가 편법으로 이해했다면 보다 적응하는데 오래도 헤매었을 것 같다. 그나마 준비했다는 것이 이 정도인데, 하지 않았다면 더욱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긴장을 놓지 말고 사람들과 멀어져야만 한다. 잘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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