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지도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오늘 아침도 출근길에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가방 종류나 명칭을 정확히 모르겠으나, 바퀴 달린 이동식 쇼핑카트를 혼자 옮기시지 못해서 직접 도움을 요청하셨다. 계단 길이 3번에 걸쳐 지하역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3번 다 들어드렸다. 뭔 가방 안에 쇳덩이가 들었나 아침부터 그냥 진땀 빼듯 옮겨드렸는데, 이벤트 성으로 괜찮았다. 갑자기 들었던 생각은 이곳에 내가 없어도 여기 사람들은 서로 각자 역할 할 것이라는 것이 생각되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동네이다. 중국인과 베트남인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데, 트램을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이따금씩 독일사람과 새치기 문제로 서로 다툰다. 나는 그 옆 빈 공간에서 조용히 벽 보고 노래 들으며 내 갈길 간다. 이곳에 와서 신기했던 점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서로 주먹이 먼저 나가는데, 감정 조절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법의식이 없는 건지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으나, 괜히 오지랖 부렸다가 껴들어서 휘말리면 골치 아파진다는 건 알겠다. 주먹질만 열댓 번을 넘게 목격했는데, 그때마다 그 자리를 조용히 피했다.
그렇다고 독일 사람들도 그렇게 질서 있기만 한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반려 동물, 자전거가 있다면 빨리 탑승해야 하기 때문에 민처 들어오거나 마음 바삐 서두를 수밖에 없다.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유럽의 리더 역할을 하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삶의 차이가 있다.
2달 전, 스위스에 출발하는 날 새벽 공항에 가던 길에 생긴 일이다. 교차역에 가려고 집 근처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 역 내에서 소리 지르며 고성방가 하던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한테 관심을 끄려는 듯 여기저기 인사하며 본인을 니거라고 소개했었다. 나는 최대한 피해서 지하철 칸 벽을 보고 갔는데, 그 아재가 말을 걸어왔다. 기차 칸에는 5명도 없었는데, 굳이 칸 끝에서 여기까지 와서 나한테 말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그 흑인 아저씨의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이 먼저 눈에 띄었다. 소매치기나 강도를 염려하며 대하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가 본인을 계속 니거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하더니 무슨 운동을 하냐는 둥의 각종 질문들이 악의를 가지진 않아 보였다.
그런데 세 정거장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본인이 내게 한 질문보다 본인 이야기가 더 많았다. 돈 문제, 딸들, 힘든 인생. 계속해서 life is difficult라고 외쳐대는 이 아저씨. 간다니까 피스트 범프를 하자고 그러길래 안아드렸다. 그렇게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이 아재의 눈에 눈물이 크게 맺혔었는데, 인생의 드라마를 경험 중인 것 같은 이 사람에게 드라마 같은 인생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연인도, 자식도 아직 없어서 이 아재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도 그런 순간이 온다면 마음 강하게 먹고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적이 예전에도 있었다. 으으 그때 생각하면 인생에 꼭 해봐야 할 경험은 아니지만, 그때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그 사람에게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잘 되었다. 내가 응원하는 사람들은 다 잘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응원해 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