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먼저 온 사람으로부터

스승님의 의미

by 폐관수련인

누군가로부터 인생을 헤처 나갈 조언을 얻는다는 건 좋은 기회임에 분명하다. 특히나 유년기에는 더욱이 작은 말 한마디가 크게 와닿을 수 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그랬었다. 부모님 이외에 가장 많이 보는 연장자이고, 그들이 먼저 겪은 경험들은 흥미를 이끌고 미래의 나를 그리게끔 하였다. 그들이 배운 사람이고, 학식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존경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배웠다는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학생에게 주먹질을 해대지는 않을 거니.


나는 내가 혼자 해보려는 경향 때문에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들의 질문에 말 한마디 대답을 할 때도, 예의를 갖추든 안 갖추든 주먹이 날아오는 건 똑같았다. 본인들보다 덩치 큰 사람을 패서 본인들이 얻는 게 우월감일까, 아니면 공포감으로 권위성을 보여주고 싶은 건가. 부모, 가족, 친척들을 들먹이며 인신공격을 하는 그들에게 삐딱선으로만 대답했다. 내가 먼저 이런 사람들을 선생님 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허튼짓 없이 공부해서 얻은 성적인 건데, 단지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나는 부모님을 소환하게 되었다. 애초에 내 말을 믿어줄 생각도 없고, 이 꼴통 학교에 하향지원해서 온 범생이 학생들만을 위한 강사들 같았다. 황당한 건 아무도 내가 잘했다는 말은 없이 모두가 의심하고 있었고 그 범생이들의 학부모회 회장이라는 아줌마가 커닝을 운운하며 위원회를 소집하겠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황당했던 거는 학교에 공부를 하는 애들이 얼마나 없으면 공부해 본 적 없는 내가 조금 공부했다고 400등이 오르냐는 거였다.


나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그다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다른 반 선생님들이 의심하고 들 때는 그렇다 쳐도, 담임은 나를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한 학기 성적만으로도 이 지경인데, 학교 수준이 알만하다. 매번 학교에 불려 오셨던 부모님에게 그 자리는 그동안의 상황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보이셨다. 그 많은 연장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는 내 편이었다.


그렇게 다음 학기 그리고 학년이 넘어가면서도 성적이 올라가니 의심들의 언성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바뀐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부모님을 다시 또 모셔오라고 하셨다. 별 터치 없이 조용히 지켜보는 것 같더니 이 늙은이도 별 다를 바 없구나 했었다.


학교에 다녀오시던 날, 웬일로 가게를 일찍 마치시고 오시더니 집 식탁에 앉아 케이크에 초를 켜셨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입시 설명회를 하셨다고 한다. 그 설명회에서 내 담임 선생님은 나의 성적표를 학부모들에게 돌려놓고 노력하는 학생의 좋은 표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덤으로 부모님도 박수받고 오셨다고 한다. 자식이 공부할 수 있게 부모로서 좋은 지도를 해 주셨다고.


처음 받아보는 인정, 존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그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나는 걸 참은 적도 있다. 말 수가 적고 차갑기도 한 이 선생님은 내게는 다시없을 스승님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순수함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