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절실한 사람

유학과 생활 그리고 성과

by 폐관수련인

오늘도 하루를 마치고 전철을 탔다. 집에 가는 길, 동쪽으로. 항상 똑같은 칸, 똑같은 자리 구석에 박혀 베를린의 시내를 바라보면 갖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철에 앉은 횟수가 손에 꼽는다. 1 시간에 가까운 출퇴근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편히 가는 나를 스스로가 볼 수가 없다. 그 시간에도 무언가 해야 한다. 단어 하나라도 더, 다음 날의 일정들을 짜야한다.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내 일 처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가도 숨통이 좀 트일듯한다면 이제는 여유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한 번은 너무 극적인 이 성격을 유하게 풀어보자고 그런 여유를 나를 위해서 써보려 했다. 그렇게 평소 해보고 싶은 보드게임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가 먹을 마시멜로를 저장하듯 앱만 설치해 놓고 다음을 기약하니 6개월이 훌쩍 넘었다. 한번 상황이 와서 하게 되니, 크게 몰두한다. 그러다가도 그 시간에 빼앗겨 정신 쏙 빠진듯한 내 상태가 보기 싫어 다시는 못하게 만든다.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걸 제쳐두고 그것에만 직성이 풀릴 때까지 몰두하는 내 성격이 그동안 중요한 것들을 놓쳤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놈과는 달리 여유 있고 생각의 폭이 넓다. 차분하고 이만 아득바득 갈아가며 목적 달성이라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에서부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런 차분한 행동은 그들의 스타일이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차분할 수 없는 건가 스스로를 미워한다.

그들이 절실하지 않은 게 아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절실함을 가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 실력으로 보여줘야만 하는 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따금씩 이메일을 자주 받는다. 유학 관련 질문 사항이나, 진로상담이 주제이다. 내가 유학을 절실히 바랐던 걸 생각하면, 그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스스로 조사해 보지도 않고 남이 떠먹여 주는 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 소수는 내 카톡 아이디를 어떻게 알았는지, 너무도 절실하다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얼마나 절실하면 카톡 아이디까지 찾아봐서 연락이 올까 생각했다.


그런데 연락이 온 목적은 스스로가 CV를 작성해 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이전에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CV를 달라는 요구였다. 나는 사람의 신상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줄 수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집요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예시안을 보고 싶다는 의도겠지만, 독어로 작성할 거니 저작권법에 안 걸린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그 사람에게, 알면서도 내 CV를 전달하였다.


그렇게 돌아오는 답변은 한국에서 학, 석사를 졸업했기 때문에 도움이 별로 될 것 같지 않다였다. 그 학생은 해외에서 학사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몇 만나보니 사람을 돕지 않는 게 나에게 더 유익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들 중에는 나처럼 절실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게 좋은 거이니 그들도, 나도, 서로가 바라는 유형의 사람이 있듯 내가 그들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 중에 유학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러려니 했다.


한 번 도와주면 그다음은 더 큰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유학은 대학, 대학원만 포함된 게 아니다. 워킹 홀리데이, 어학연수 등 다양하다. 그러나 내가 본 사람들 중에는 술과 클럽, 유흥에 빠져 수업은 나 몰라라 1 년도 안되어 짐 싸고 귀국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놀고먹는 게 잘못되거나 나쁜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소수가 아니다.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게 문제라는 거다.


내가 스스로 화가 났던 이유는 나는 폐관 수련만 해대며 사는데, 그들의 능력에 웃돌지 못한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내 절실함이 부족했거나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해 빠진 놈은 남을 도와줄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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