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변한 게 없다는 말

본인 이야기임

by 폐관수련인

막상 들어보니 한편으로는 기분 좋고 다른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에 따라 저 말들이 해석되는 방향이 달라진다. 나를 언제나 좋게 봐주던 사람이 있다. 대학시절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인연이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사이 나쁘지도 않은, 길 가다가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의 관계. 내가 sns를 업데이트할 때면, 가끔 찾아와 조용히 하트를 눌러준다. 그렇게 안부를 물어보는 건 1년에 2~3번뿐이 관계이다.


나를 너무 좋게 본 나머지 극도로 칭찬을 섞인 말을 해준다. 이 사람이 보는 변함이 없다는 내 모습은 적어도 욕은 아닌 것 같다. 가끔씩 연락 오는 안부의 말들에서는 언제나 내가 도전하는 모습과 꾸준히 성실하다는 게 부럽다며 말을 건네온다.


좋은 말을 해주는데 부정하면 그것만큼 꼬인 사람이 없겠지만, 그렇게 뭐 하나 잘난 사람이 아닌데 무지성으로 치켜세워 올려주는 건 방어적이게 된다. 그래서 내 주변인들은 내가 깊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느껴지는 건 누구나 다 똑같은 것 같다.


다 보여주기 식이다. 성실해 보이려고 갖은 방법을 써서 노력하는 거고, 내가 내뱉은 말 지켜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 밖에 없다. 보여주는 대상은 가족이 되지만, 막상 악을 쓰고 달려들어도 실 속을 보면 껍데기밖에 없다. 친구들과의 교류 없이 나 혼자 공부하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경쟁자라고만 생각한 10대를 보내다가 보다 유하고 개방적인 20대 대학생의 생활을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사람 관계에 녹아들어 보려고 안간힘 쓴 것 같다. 그렇게 선배들에게 지목받아 과 대표를 맡게 되었어지만, 사실 과에서 제일 귀찮은 일 하는 게 학생회 집부 사람들 같다.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막상 맡고 나서는 사람들을 챙기고 도와주며 웃음판을 만들려고 애쓴 것 같다. 그래야 내 부족한 사회성이 개선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학기가 끝날 때마다 회식자리에 술이 들어가며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오면, 하나같이 나에게 다가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사실, 나부터가 사람을 도와주는 게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각종 제약들과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만 죽어라 한 10대와는 달리 처음으로 성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 1학년들의 주 관심사는 일반적으로 공부가 아니라 이성관계에 더 치중해져 있다. 동기들끼리 사귀든 말든, 누가 누구를 좋아하든 말든 그런 것에 초점 맞춰지지 않은 내 대학생활은 그들의 눈에는 참 차가워 보였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 관계의 유지는 오로지 계산적인 것으로만 남아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성 없는 사람이 사회성 없다는 걸 숨기기는 어렵다는 걸까. 그들이 나를 보는 눈도, 몇 년이 지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국 모든 원인은 나로부터 이루어진 것 같다. 그렇게 이런 모습을 내가 바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 같다.


나를 알고 지내며 가장 가까이에서 봐주던 사람들도 나의 이런 모습에 안타까워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보면, 내가 나 하나 좋자고 계속 내 모습을 밀고 나가는 것보다 변화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하게 되면 이런저런 모습도 될 수 있는 내가 되는 거겠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로 가족들에게조차 보여주기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한 번에 다 바꾸라는 소리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내 주체성은 유지해야 되는데, 정말 이쪽에는 유능하지 못하다.


언제나 결국 자기 비하할 거면 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나 싶다. 매번 반복하는 거지만, 내가 이 상황과 주제를 즐기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좋아해 주면 한없이 멍청해지고 게을러지는 게 나다. 긍정에 빠져 정신 놓고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언제나 긴장하며 숨 막히는 게 낫다. 적어도 목표는 이룰 것 아닌가.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된 걸까, 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그때부터인가, 아니면 그날 그 친구한테 들은 말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결국 나로 인한 것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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