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도 바뀌는 거지
정신없이 일에 치여 벌써 4개월이 흘렀다. 올해는 무엇에 씌었는지 하는 일마다 막힘이 많다.
정신머리 없는 아들이 이런 촉박함 속에도 전화를 걸 때면 혼자 사는 다 큰 어린이를 안타까워하듯 아쉬움에 가득 찬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겉머리가 새하얗게 변해갈수록, 이들은 나를 대견하면서도 본인들의 욕심에 의한 결과를 알고 있다.
이곳에 와서 하는 일마다 벅찼다. 점점 재능 없는 티를 내는 것 같다. 박사까지 했는데 지금 다 때려치우고 그만둘까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끝까지 하면 뭐라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이라며 다시 또 해가 뜨는 내일을 기약하면 결국 극복해 산을 이룰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지나가는 시간이 참 답답하다. 이전에는 빠르게 지났으면 했지만, 지금은 나를 믿어주는 이들이 떠날까 봐 싫다.
한국에서 학생들이 견학 왔었다. 이제는 띠동갑의 나이대를 상대하게 됐다. 싫으면 싫다 아닌 건 아니다 라며 할 말은 하면서도 할 일도 곧대로 하는 그런 유형들 같다. 잠깐 본 2주의 기간 동안 그 새 정이 들었는지 이들이 떠난 뒤에 마음 한 편에 씁쓸함이 남았다. 또 언젠가 지구상에 어디선가 만나게 되겠다.
짧은 기간이라도 연구를 해보겠다는 이들의 눈빛이 빛나보였다. 이들을 가르치지만, 내가 더 많이 배우게 됐다. 나도 이들처럼 아직 빛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부족한 재능은 이들을 보고 빛바랜 색만을 띄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지 4개월, 친가족, 집주인 할아버지, 캐내디언, 영주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나에게 국적을 바꾸길 권한다. 내 인생을 멀리 내다봤을 때, 국적 변경이 더 득이 되며 인생 설계에 유리하다는 견해였다.
가족들도 그러길 원한다. 독일로 떠났을 때부터, 아니면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름을 바꿔버린 순간부터인지, 당신의 아들이 더욱더 멀리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나는 나를 믿어준 이들의 간절함을 저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인가라고 물어보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한 질문이겠다. 학생이 학생답게, 자식이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처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한국인스러워야 한다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할 것 같다.
훗날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진실로 이 먼 이국 땅에 오롯이 혼자가 된 느낌이겠다.
하나하나씩 하자. 안 풀리는 연구든, 복잡한 사람관계든. 그럼에도 끝에는 좋을 것이다.